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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쁘게 Aug 21. 2024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었다.

남자들이 먼저 결혼하자 하지 않으면 결혼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알았었다.


유튜브에 많이 뜨는 것이 연애컨설팅들이다. '이렇게 남자를 꼬셔라. 이런 여자를 못 잊는다. 결혼은 남자가 얘기하지 않으면 여자가 아무리 결혼하자 해도 남자들은 결혼하지 않고 오히려 헤어지자고 한다.'

 즉, 결혼은 남자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것이다.  참 많은 내용들이 있고, 나도 한 번씩 2배속으로 봤던 얘기들이다. 하지만 이런 연애컨설팅 내용을 아무리 들어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내 전남편의 마음이었다. 연애기간동안 하는 행동들은  내게 전혀 관심도 없고,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과 행동으로는 결혼을 추진하였고, 그래서 난 그의 행동에 대한 모순을 느끼며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래도 그가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니, '나를 사랑하니 결혼을 추진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나를 속여가며 그와 결혼했다.


그와 사귀게 된 것도 두 번째 만남부터 휴가를 물으며 '날짜를 맞춰서 같이 지내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 휴가 날짜를 알려줬다. 하지만 세 번째, 네 번째 만남에서도 계속 묻기에, ' 이 사람은 정말 내게 관심이 없구나,  다시 만나자고 약속은 하지만 내 휴가날을 이렇게 기억도 안 하고 매번 묻기만 하고 휴가 날이 다 되어가도 만나자고 하지도, 어딜 가자고도 하지 않는구나. 내게 관심도 없는 사람이 왜 계속 만나자고 하는 것일까? 나를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내게 토요일에 정확히 딱 한 시간 반만 쓰는 사람이고 ,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인데.'

 내게 조금의 마음도 없으면서 의무적으로 만나자고 하고, 관심 있는 척하며 질문해도 어차피 기억조차 하지 않는 그의 무례한 행동들에 화가 났다. 도대체 나와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 네 번째 만남 때 또다시 휴가날짜를 묻기에  처음 답해주는 척 끝까지 친절히 답하며 내 휴가 날에 맞춰서 만나자고 먼저 제의했다. 그랬더니 당황해하며 나의 휴가 첫날인 목요일 저녁에 시간이 가능하다고 하기에 그날은 평일이니 이번엔 내가 밥살 차례니 내가 정한 곳으로 오라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의 만남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더니 고기엔 술이 있어야 한다며 소주를 시켰다. 나는 당연히 종교적 문제와 내가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기에 술은 못 먹는다고 거절했다.  기독교 결혼정보업체에서 소개해서 만났기에 내가 종교를 믿고 있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이 종교결혼 정보업체에 대해서 낱낱이 다뤄보겠다. 곧 글을 쓰고 링크를 걸어두련다.)

나는 조금은 신실한 사람을 원했고, 그도 신을 믿는 척하며 자신의 엄마가 전도사님이라기에, 술을 마시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에게 조금 실망했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 만남의 끝자락에서도 그는 내게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보통 소개팅에서도 4번째쯤에는 만나고 나서 사귈지 아닐지를 정하기에 기다렸으나 그는 내게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이 관계를 확실히 묻고, 사귀지 않을 거면 이 관계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갔기에 그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저랑 다섯 번째 만나시는데 우리는 도대체 무슨 사이인가요?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밥 먹는 친구인가요?" 그가 술에 취해 살짝 얼굴이 붉어져 있었는데 (소주 한 병과 맥주까지 시켜 먹었으니 말이다.) 갑자기 당황해하더니 말을 얼버무리며 별로 좋지 않은 표정으로 허허 웃는 소리만 내더니, "사귄다는 말은 좀 가벼운 것 같은데,  미래를 생각하고 교제하는 사이?"라고 답했다. 그의 답에 나는 안도하며 '그가 아마도 나를 좋아했지만 이전의 연애로 상처받아 표현을 잘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소설을 썼다. 그러고서는 그에게 직설적으로 다시 한번 물었다. "보통은 마음이 있다면 네 번째 만남에 사귀자고 말하지 않나요? 오늘도 차를 다 마시고 헤어지기 직전인데도 말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사귀자는 말을 전혀 하려고 생각한 것 같지 않은데요? 계속 이런 식으로 밥만 먹는 흐지부지한 관계는 성격상 맞지 않아서 참다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먼저 물어봤어요.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능청스럽게  "내가 먼저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선수를 놓친 것이다. " 말하기에 내가 "표정이 이상 야릇하던데요? 뻘게지면서?"라고 물으니 그는 "오늘은 제가 사귀자고 얘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관계를 묻기에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진 거예요."라고 했다. 이때부터 나는 그냥 콩깍지가 씌워졌던 것 같다. 오랫 만에 연애를 하게 돼서 기뻤던 것일까? 그가 목, 금, 토, 일요일이 내 휴가이니, 오늘 만났으니 내일은 출근해서 자신의 퇴근길에 오기는 벅찬 거리니 토요일에 만나자고 했다. 나름 남자친구가 생겨서 기쁘다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다음날 아침, 그는 내게 토요일에 갑자기 출근해야 해서 약속을 취소하자고 했다. 사귀자고 말한 지 하루가 채 지나가기도 전이었다. 결혼정보업체의 매니저가 연락이 와서 묻기에  "그와의 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무슨 관계인지 물었고 어제 사귀기로 얘기를 했고, 토요일에 만남을 약속했으나, 아침에 연락이 와서는 회사일을 핑계로 약속을 깨니 어제 못한 거절을 하는 것 같다. 요즘 토요일에 일이 있어서 나가는 회사가 어디에 있나?"라 말하니 매니저는 내게 " 정말 회사일이 바쁘신 걸 거예요. 제가 아는 그분은 함부로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 매우 진중하고 책임감 있는 분이에요."라며 다음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보라고 했다. 결혼 후에야 나는 그가 나와 사귀기로 한 목요일 저녁에 집에 가며 친구에게 전화하여 금요일에 연차를 내고 갑자기 제주도행 여행을 잡고 제주도에 가서는 윤락업등을 거치고서 일요일에 돌아온 것을 알았다.

 그때도 그는 친구에게조차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얘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을 결정하고 친구를 소개해준다던 날 그의 친구와의 대화 중에 이를 알게 되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는 그날 내 약속을 취소하고 제주도에 놀러 다녀온 것을 내게 얘기한 줄 알고서 내게 그때의 얘기를 꺼냈었다. 얘기를 했다고 우기는 것을 보니 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얘기를 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사귀자고 한 직후이고, 결혼까지 다 정했으니 그냥 신경 쓰지 말자하고 지나갔던 것이 내 실수였다.

 내가 결혼 후에나 알게 된 그의 성격상 그는 내가 묻지 않았으면 끝까지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책임감이 없고, 그에게 약속이란 뇌를 거치지 않고 입을 스쳐가는 소리니 말이다.


지금도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가 나와 사귀고 결혼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그에게 정확한 이유를 듣고 싶고, 아니면 누군가가 그의 정신감정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을 정도이다. 다만 나를 좋아하는 마음조차 없었고 그저 떠밀리듯이 자신의 체면과 나이, 부모님을 위한 여러 가지 이유들로 내가 너무나 순진했기에 와이프로서는 너무 좋은 (내 남편과 결혼해 줘 드라마 나쁜 남편의 대사였던 살림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학력도 좋고, 집안도 좋고, 재산도 있고, 자기가 성매매하고 다른 여자들과 외도해도 자기 휴대폰이나 자신의 스케줄을 뒤지거나 묻고 따지지도 않는) 속이기 좋은 나쁜 남자들이 속되게 말하는 '최고의 (병신 같은) 와이프 감.'이었기에  나와 결혼했다고 추측할 뿐이다. 그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유린당하며 버려진 내가 불쌍할 뿐이다. 그가 나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사람의 저열함과 더러움이 이 정도라는 것을 모른 채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다면 나의 삶이 훨씬 희망적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더러움은 나이가 몇이던 모를수록 좋은 것 같다. 지금 70대와 80대를 바라보는 나의 부모님 조차 이렇게 음란하고 더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내 전 남편을 통해 처음 아셨으니 말이다.


사귀는 내내

1) 그는 나를 데리러 오지도 데려다주지도 않았다. 그는 사귀는 극초기에도 만나러 오라고 하고서 1시간 안에 밥을 먹고서는 반주로 소주를 꼭 먹고 알아서 집에 잘 가라고 했다. 그것도 일주일에 딱 한번 토요일에만 만나는데, 그 토요일도 가끔은 회사일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며 다른 여자를 만나 성관계를 하고 있었다. 둘이 주고받은 내용을 보면 섹스 파트너라기보다는 사랑하여 사귀는 커플들의 일상적 대화였다. 나와는 단 한 번도 그런 대화나 만남을 하지 않았다.

 2) 그는 밥값 외에는 내게 어떠한 돈도 쓰지 않았고, 밥값도 그가 한번 내면 커피 값은 내가 내고, 다음번엔 내가 밥을 사던가 번갈아 냈지 자기가 온전히 다 데이트 비용을 내지는 않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묻지도 않고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점으로 데려갔다. 내가 싫어하고 먹지 못하는 곳에 데려가서도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만 먹으면 다였다. 내가 한수저조차 뜨지 못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는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도 관심조차 없고 나에 대해 내 이름, 성별, 직업 밖에 전혀 모른다. 내 생일, 결혼기념일, 내 부모님 성함이나 내 동생들 이름조차 모르니 말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부모 생일도 몰라 내게 직접 물어서 챙기라 했다.  그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꽃을 받고 싶었다. 한송이라도 좋았다. 아니면 손편지나 쪽지라도 좋다고 얘기했지만 단 한 번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오히려 꽃다발을 가진 여자들을 부러워 조용히 쳐다볼 때면 갑자기 화를 내며 나를 내버려 두고 혼자 담배를 피우며 가버렸다. 이혼할 때도 내가 모아둔 돈을 내놓으라기에 못준다 하니 '남과 비교하고 사치스럽게 사고 싶은 게 많아서 어떻게 세상을 사냐.'라며 내가 사치스러워 그 많은 돈을 다 썼냐는 말도 안 되는 정성스러운 개소리를 했다. 내게 준 돈은 자신의 급여의 5분의 1이나 되었을까? 내가 회사생활을 하지 않아 상여금이나 보너스도 묻지 않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안 준다며 속이기에 싸우기 싫어 속아주니 그저 제가 번 돈이라고 주색잡기를 즐기며 탕진하기 바빴다. 제 부모조차 내가 아끼고 쓰지 않아 네 건강을 위해서는 아끼지 말고 챙기라고 얘기할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내가 명품백을 처음 가지게 된 것은 그가 결혼선물로 사준다며 예물로 사준 것이 처음이었다. 이모가 쓰시던 구찌 크로스백을 물려받아 구찌표시는 안에 쓰여있는 구찌라는 글자를 봐야 지나 알 수 있는, 하도 들어서 다 삭아 더 이상 들 수 없는 고쳐야 하는 크로스백이 하나 있기는 하다. (고치는 비용이 비싸 고치길 포기하고 있지만.)

 

하지만 나는 나의 허영심을 채우기보단 생존이 먼저라 생각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돈을 벌면서도 내게 쓰지 못하고 그저 아끼기에 급급했고, 그가 결혼 약속과는 달리 경제권을 맡기지 않고 자신의 급여가 얼마인지도 속인 채 내게 급여의 일부를 형식상 보냈다가 이자돈과 공과금 등으로 다시 부쳐달라 하면 그저 내 통장에 들어왔다 며칠간만 내 통장을 스쳐서 다시 그에게 나가는 구조였다. 카드값이며 대출이며 주식이며 코인이며 나는 그가 무엇을 어디에 얼마나 쓰고 벌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오히려 내가 아는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담배와 술, 좋아하는 음식이나 명품등의 물건이 있으면 아끼지 않고 그냥 다 써댄다는 것이다. 면세점에 가서 몇십만 원 치의 담배를 걸리지 않으면 사서 쟁여두고, 쌓인 담배만 백여만 원이 넘는 것으로 안다.

반면 나는 일을 쉬고 있었기에 약간의 돈이 모이면 그가 힘들게 번 돈이니 모아서 그의 대출을 조금이라도 빨리 갚자는 마음으로 추운 날에는 보일러도 안 틀고, 더운 날에는 에어컨도 안키며, 안 먹고 안 쓰며 미련스럽게 악착같이 모았다. 그렇게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더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냥 맘 편히 돈 쓰지 않은 내가 한심스럽다. 그는 집옆에 슈퍼와 편의점이 있어도 항상 편의점에서 물건을 산다. 그까짓 몇백 원에서 몇천 원 구질구질하게 아끼지 말고 도 자산이니 대출이라도 받아서 돈을 투자하여 버는 게 훨씬 낫다며 나를 항상 구질구질하다고 치부하던 그였다.  


그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1초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관심도 없었으며, 오히려 내가 좋아서 그를 쳐다보면 왜 쳐다보냐며 쓱 가방이나 휴대폰을 숨기곤 했다. 이때부터 이상한 인간이란 것을 눈치챘어야 했다. 아니 이미 나는 만나는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다는 눈치 아닌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가 어딘가 가자고 해서 놀러 가도 항상 휴대폰을 숨기고 보면서 안절부절못해했고, 연락을 기다리며 계속 휴대폰만 보며 왔다 갔다 산만하게 굴었다. 계속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1~2주 간격으로 토요일만 만났고, 데이트날 데리러 와달라고 몇십 번의 부탁 끝에 어쩌다 한 번 와서는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쓰다가 갑자기 쓱 휴대폰을 거치대에서 빼서 뒤집어 두기에  "왜 그러냐?"라고 물으면 "여기부터는 길을 알기에 그런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를 만나고 있던 그 시간에도 안팎과 낮밤을 가리지 않고 스릴 있게 관계를 즐기던 그녀와 내가 있는 옆에서 문자를 주고받으며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있었기에 그녀를 만나러 가기 위해, 항상 나와의 데이트를 한 시간 만에 끝내려 난리 법석을 떨었던 것이었다. 평일에 반차를 내거나 일찍 끝나면 그녀에게 연락하여 신혼집으로 처음 살던 곳까지 끌어들였던 그였다. 왜 하필 송도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냐는 말에는 회사에 가는 지하철노선이 편해서 옮긴 것이라 하였으나 결혼 후 내게 했던 말이 있다. 송도에 살 때는 회사까지 가는 직통 버스도 많고, 지하철이며 다 편했는데 이곳에서는 지하철을 한 번 놓치면 지하철도 자주 오지 않고 버스도 없고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그가 (서울의 부촌인 지명과 같은 인천의) 그곳으로 옮긴 이유는 그녀가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한 번도 언제 만나자 매달리며 칭얼댄 적이 없었고, 무작정 직장이나 집 앞으로도 찾아온 적도 없었다.  그냥 다음 주 토요일에 보자며 헤어지고 나서는 연락도 없고 내가 잘 도착했는지 따위는 궁금해하지도 않았으며, 내가 도착했다고 톡을 보내거나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마치 10년을 산 부부보다 더 무심하다고 느꼈었다. 스킨십은커녕 내 손조차 잡고 싶어 하질 않았다. 휴대폰은 항상 무음으로 해뒀는데, 하도 답답하여 물으니 "회사에서 2018년에 전화와 문자가 900통 정도가 온 적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트라우마로 무음으로 항상 해두는 거야."라는 개소리를 했다.


 그에게 나 말고 또 다른 그녀가 있다는 것은 결혼 후 2달쯤에 알게 됐다. 8월의 새벽에 이를 알고 미쳐 날뛰는 마음에 가족에게 전화를 했지만 가족들의 전화기가 꺼져있거나 무음이라 연락이 되질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새벽 내내 울면서 발을 동동거리며 왔다 갔다 했었다. 다음 날 그 집에서 내 짐을 다 챙겨서 나왔고,  가족들은 모두 헤어지라고 했다. 처음 해본 놈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놈은 없다고. 계속 그렇게 나를 속이며 만나왔으니, 지금은 걸렸기에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와 계속 만나고 있을 것이고, 그녀가 아니라도 다른 여자들과 계속될 것이며, 다시 그와 살면 이제 그의 이러한 취향을 알게 되었기에 지옥을 살게 될 것이라 했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고, 그렇게 바라던 결혼 두 달 만에 헤어졌다는 소리를 하기에 너무 창피하고 치욕스러워 잘못을 빌며 잘하겠다는 그의 말을 믿으며 그와 살겠다고 말리는 가족을 뿌리치고 친정을 나왔다. 연을 끊는다고 하는데도 끊으라며 그에게 돌아갔다. 그때 끝냈으면 돌아오지 않을 내 인생의 3년을 이렇게 비참하게, 외로움에 치를 떨며 고통 속에서 허송세월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 있어서 결혼은 항상 가족의 말이 옳았다. 결혼을 반대했을 때부터 청개구리처럼 내가 알아서 한다고 소리 지르며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이런 진창까지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와 결혼해서 같이 산 날이 실제로는 1년도 안되고 연애기간도 말로만 11개월이지 한 달에 서너 번 만났으니 최대치로 잡아도 겨우 44번 만났을 뿐이다. 대략 년수로는 3년 차에 헤어졌고, 이혼 전 작년 12월에 필리핀에 가서도 무음을 소리로 바꿔달라고 회사 상사분 앞에서도 호소했었다. 오죽하면 회사 상사조차도 그에게 카톡을 남기면 너무 늦게 확인해서 답답하다고 진동으로라도 바꿔두라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는데, 갑자기 24년 2월 24일 필리핀에 들어간 이후로 그가 휴대폰을 소리로 바꿔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 한국에 있을 때도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두던 사람이 그의 필리핀인 내연녀가 답답해했는지, 소리로 바꿨고, 내가 보이스톡을 하니 처음으로 내 전화를 바로 받고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 진동으로 해둔다는 것을 그냥 소리로 해뒀네.' 그 중얼거림에 나는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다. 그를 안 이후 최초로 내 전화를 바로 받은 그날 밤 11시가 아직도 생생하다. 왜냐하면 그는 나와 사귀고 결혼해서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 항상 저녁 9시~10시부터 다음날 출근을 위해 일찍 자느라 연락을 못한다며 내 모든 연락을 씹던 그였다. 그 통화로 내연녀가 생겼음을 확신하고 그날따라 더욱 긴 겨울밤을 나 홀로 고통 속에 울부짖으며 찢어지게 아픈 마음을 달래려 내 가슴을 몇십 번씩 쿵쿵 내리치며 내가 예민해서 오해하는 것이길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던 날이었다. 사람은 그 누구도 배우자의 외도를 겪지 않으면 그 아픔을 짐작만 하지 정말 알지는 못할 것이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통스러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내 아버지의 외도로 엄마가 고통스러워할 때 나도 엄마와 동일시하며 배신감에 아파하였지만 엄마의 고통과는 빗댈 수 없었겠구나 깨달았다. 너무 늦은 깨달음 아닌가? 20년 후에야 깨닫다니 엄마는 20년간 지금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걸 생각하니 엄마에게 화내고 짜증 부리며, 결혼을 반대한다고 미쳐서 날뛰던 내가 너무 죄스럽고 죄송하다. 내가 겪어야만 당사자의 고통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어디선가 나와 같거나 비슷한 이유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실히 통감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고, 겨우 3년 동안 그의 외도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외에도 더 많은 아픔들이 있었으니 나를 위로 삼아 조금이나 덜 슬퍼하고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길 바란다. 나는 아직 공황장애와 우울증, 불면증으로 고통받고 약도 먹고 있다. 그와의 나머지 얘기들은 뒤에 더 자세히 다루려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른 사람들이 아직은 내 글을 읽지는 못할 테지만 하루빨리 공개되어 위로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글에 대해 악플이 달리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지금 고통만으로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기에 참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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