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사실은 무엇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지만

by 전유니
7월 10일 오후 7시 창원, 혼자 떠 있는 구름이 예뻐서 펜슬을 들었다.





베란다 창으로 너무나 마음에 드는 구름이 들어왔다.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 얼른 아이패드를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새삼 아이패드를 들고 베란다에 나갔다는 말을 되뇐다.

종이와 펜을 들고 나갔다는 말보다 낭만이 옅다.

시간은 흐르고 어떤 날의 당연함은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한 낭만이 되는가.


얼핏 가만한 것처럼 보였지만, 구름은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빠른 줄은 몰랐는데.

집중해 보고서야 속도를 체감했다.

애플펜슬을 빠르게 움직여 보지만, 구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북서로 북서로 밀려나더니 이내 시야를 벗어나 버렸다.

처음의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며 움직이지도 않았다.

바람은 구름을 하늘에 옅게 펴 발라 버렸다.


사실 구름뿐일까.

무엇도 나를 기다려 주지도, 앞서가지도 않는다.

내 마음에 난 창으로, 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아 그렇지,

사실 모든 것들은 그냥 나름의 속도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터무니없이 길어 변화를 관측할 수 없는 것들이 있지만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그것들조차 언젠가는 변한다.

우리의 행성에서 통용되는 물리 법칙조차,

전부를 놓고 보았을 때 변방 소수 민족의 언어가 아닌가.


유기체의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소중한 나의 친구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은

그가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한 것이 없다고 낙심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것들이 각자의 궤도나 불규칙을 따라 이동하는

불확실한 순간들이 모여 세상이 되고 세상이 쌓여 역사가 된다.

얼마나 찬란한가.

전자조차 원자핵 주위 어딘가에서 늘 자유한다.

모든 것이 흐르기 때문에 세상이다.


변하는 것들을 잡아 두고자 떼를 쓰면

손으로 물을 잡으려 하는 아이처럼 괴로워진다.

변하는 것들을 변하는 그대로 두면 편안해진다.


이제 하늘을 그림으로 남기는 일은 끝났고

나는 아이패드를 덮는다.

새삼 아이패드를 덮었다는 말을 되뇐다.

스케치북을 덮었다는 말에 비해 낭만이 옅다.

그러나 또 세상이 흐르다 보면

아이패드를 덮는 이 순간이 향수 짙게 묻어나는 그리운 시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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