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가치는 내가 만든다

내가 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 가치

by 레지널드

한번 잠들면 깊게 잠드는 편이었다.

잠귀가 밝아 작은 소리에도 잘 깨긴 해도

바로 잠드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서른 중반에 접어들자

한번 깨면 쉽사리 다시 잠을 청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예전처럼

'잠 못 자서 어쩌지. 내일 일할 때 피곤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잠이 안 오는 밤은 그냥 있는 그대로 즐겼다.

주로 휴대폰을 하거나

각종 상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자리가 사나워서 중간에 한번 깼다.

시간을 보니 잠든 지 1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수 분 내로 잠을 잘 수 있는지 없는지.

그날은 딱 느낌이 왔다. '몇 시간짜리'라는 걸.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랬듯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각종 글들을 읽다가

정말 문득

'잠이랑 바꾼 이 귀중한 시간을 이렇게 날려버릴 수 있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서 태블릿을 켜고, 독서 앱에 들어갔다.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심산이었다.

평상시 책을 읽을 때처럼

정신이 맑진 않았지만 일단 읽어 내려갔다.

house-6314147_1280.jpg 출처: 픽사 베이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이 돌아오고 책도 눈에 들어왔다.

10대 때도, 20대 때도 이 시간까지

공부를 하거나 심지어 놀아본 적도 별로 없다.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정확히 자정 조금 지나서 시작된 독서는

2시 30분 즈음 끝을 냈다.


두 시간 남짓의 그 독서시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선 고요함에 놀랐다.

새벽시간은 고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경험해 본 적 없던 나는

고요함이 선사해 준 집중력 향상에 감탄했다.

낮에 읽었을 때보다 더 몰입하기 쉬웠고

시간도 금방 갔다.

다시금 잠이 와서 중단한 것일 뿐

잠이 오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독서를 했을 것이다.


낮의 고요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예를 들자면 낮에는 차가 지나가는 소리부터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들린다.

하지만 새벽엔 차 소리도 뜨문뜨문 나고

사람들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제일 큰 차이는 휴대폰 알림이다.

스팸 문자부터 시작해서 별 중요하지도 않은

각종 알림들이 울어대던 내 휴대폰은

새벽엔 전혀 울리지 않는다.


일부러 새벽시간까지 깨있으려고 하진 않겠지만,

앞으로 나에게 가끔씩 이런 새벽시간이 발생한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책을 읽을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평상시에는

생각도 않던 시간이 주어지면

새로운 시도를 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아니 무조건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몰랐던 세상을 반드시 알아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침엔 무조건 뉴스를 봐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TV가 안 나온다.

그땐 휴대폰이나 태블릿등 다른 수단을

동원해서 뉴스를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해봐야 한다.


나가서 걷는다던지, 아니면

책을 읽거나 영단어를 외우던가.

그 행위 중 하나가 그 사람에게 있어

아침이 최적 타이밍일 수도 있다.

단지 몰랐을 뿐.


난 언제부턴가 약속시간 늦는 사람을 싫어한다.

특히 나와 단 둘이 만나기로 했는데

늦는 사람은 더 싫다.

(누가 들어도 특별한 사정이 있던 경우 제외)


내 시간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중시해야 한다.

지나친 비약일수도 있으나,

누군가로 인해 내 시간이 허투루 쓰인다면

그건 그 사람이 날 무시하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시간은 가치 있게 써야 한다.

일론 머스크도, 트럼프도 나도 똑같이 하루는 24시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고 누적되면 삶이 바뀐다.


이 당연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그날도 잠들 때까지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며 있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내가 택한 그 행동이 벌써 나를 바꿔놓지 않았나.


새벽 독서를 했던 그날,

잠들기 직전 먼발치에서 트럭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둔탁하게 탑차의 문이 열리고

물건이 툭툭 내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시간부터 택배는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그 시각에도 땀을 흘리는 그 사람의 새벽은

흥청망청 놀고, 휴대폰 바라보며

희희낙락 거리는 사람들의

새벽과는 전혀 다른 가치인 것이다.

택배 기사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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