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 가치
한번 잠들면 깊게 잠드는 편이었다.
잠귀가 밝아 작은 소리에도 잘 깨긴 해도
바로 잠드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서른 중반에 접어들자
한번 깨면 쉽사리 다시 잠을 청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예전처럼
'잠 못 자서 어쩌지. 내일 일할 때 피곤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잠이 안 오는 밤은 그냥 있는 그대로 즐겼다.
주로 휴대폰을 하거나
각종 상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자리가 사나워서 중간에 한번 깼다.
시간을 보니 잠든 지 1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수 분 내로 잠을 잘 수 있는지 없는지.
그날은 딱 느낌이 왔다. '몇 시간짜리'라는 걸.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랬듯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각종 글들을 읽다가
정말 문득
'잠이랑 바꾼 이 귀중한 시간을 이렇게 날려버릴 수 있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서 태블릿을 켜고, 독서 앱에 들어갔다.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심산이었다.
평상시 책을 읽을 때처럼
정신이 맑진 않았지만 일단 읽어 내려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이 돌아오고 책도 눈에 들어왔다.
10대 때도, 20대 때도 이 시간까지
공부를 하거나 심지어 놀아본 적도 별로 없다.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정확히 자정 조금 지나서 시작된 독서는
2시 30분 즈음 끝을 냈다.
두 시간 남짓의 그 독서시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선 고요함에 놀랐다.
새벽시간은 고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경험해 본 적 없던 나는
그 고요함이 선사해 준 집중력 향상에 감탄했다.
낮에 읽었을 때보다 더 몰입하기 쉬웠고
시간도 금방 갔다.
다시금 잠이 와서 중단한 것일 뿐
잠이 오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독서를 했을 것이다.
낮의 고요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예를 들자면 낮에는 차가 지나가는 소리부터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들린다.
하지만 새벽엔 차 소리도 뜨문뜨문 나고
사람들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제일 큰 차이는 휴대폰 알림이다.
스팸 문자부터 시작해서 별 중요하지도 않은
각종 알림들이 울어대던 내 휴대폰은
새벽엔 전혀 울리지 않는다.
일부러 새벽시간까지 깨있으려고 하진 않겠지만,
앞으로 나에게 가끔씩 이런 새벽시간이 발생한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책을 읽을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평상시에는
생각도 않던 시간이 주어지면
새로운 시도를 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아니 무조건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몰랐던 세상을 반드시 알아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침엔 무조건 뉴스를 봐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TV가 안 나온다.
그땐 휴대폰이나 태블릿등 다른 수단을
동원해서 뉴스를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해봐야 한다.
나가서 걷는다던지, 아니면
책을 읽거나 영단어를 외우던가.
그 행위 중 하나가 그 사람에게 있어
아침이 최적 타이밍일 수도 있다.
단지 몰랐을 뿐.
난 언제부턴가 약속시간 늦는 사람을 싫어한다.
특히 나와 단 둘이 만나기로 했는데
늦는 사람은 더 싫다.
(누가 들어도 특별한 사정이 있던 경우 제외)
내 시간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중시해야 한다.
지나친 비약일수도 있으나,
누군가로 인해 내 시간이 허투루 쓰인다면
그건 그 사람이 날 무시하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시간은 가치 있게 써야 한다.
일론 머스크도, 트럼프도 나도 똑같이 하루는 24시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고 누적되면 삶이 바뀐다.
이 당연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그날도 잠들 때까지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며 있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내가 택한 그 행동이 벌써 나를 바꿔놓지 않았나.
새벽 독서를 했던 그날,
잠들기 직전 먼발치에서 트럭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둔탁하게 탑차의 문이 열리고
물건이 툭툭 내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시간부터 택배는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그 시각에도 땀을 흘리는 그 사람의 새벽은
흥청망청 놀고, 휴대폰 바라보며
희희낙락 거리는 사람들의
새벽과는 전혀 다른 가치인 것이다.
택배 기사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