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뭘 먹어야 하는 거죠?

by 레지널드

초중고 학창 시절,

엄마는 항상 아침식사를 마련해 줬다.

회사를 다니기 전에는 직접 차려주셨고

회사생활을 할 때는

꺼내먹으면 되는 수준으로 준비해 주셨다.

거의 대부분이 밥이었다.

어린 마음에 빵과 우유, 시리얼이 있는

서양식 스타일의 아침식사를 낭만으로 생각했었다.


대학생 때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

그냥 커피 한잔으로 대체했고

직장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문득 아침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차려준 대로만 먹어야 하는

나이도 진작에 지났겠다,

어렸을 때부터 '아침 빵'에 대한

낭만도 있었으니 실현해 보기로 했다.


그 후로 몇 년간은 계속 빵 위주의 아침식사를 했다.

poached-eggs-on-toast-739401_1920.jpg 출처: 픽사 베이

식빵을 구운 다음 딸기잼을 발라먹는

전형적인 한국식 토스트가 대부분이었고

지겹다 싶으면 크림치즈나

땅콩버터를 발라 먹었다.

가끔은 식빵이 아닌 다른 종류의 빵도 먹었다.


잠시나마 '아침은 밥이지'라는

생각으로 밥을 시도해 봤으나

일주일 만에 다시 빵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여자친구(현 아내)는 그런 나에게

아침에 빵을 먹으면 안 된다는 논조가 담긴

기사링크를 보내며 만류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혼 후 알게 됐다.

아내가 정말 아침에 진심이라는 걸.

아내는 빵을 먹지 않는다.

가끔 내가 강력히 요청하면

토스트를 해주긴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양배추나 당근, 과일 등을 먼저 먹고 먹어야 한다.

살면서 먹었던 생당근을 다 합친 것보다

결혼 후 몇 달간 먹은 생당근이 더 많았다.

(익힌 당근은 먹지만 생당근은 싫어한다)

물론 먹어보니까

이런 채소류 위주의 식단도 나쁘지 않았다.

vegetables-3386212_1920.jpg 출처: 픽사 베이

아침식사의 정답은 대체 뭘까.


인류가 삼시 세 끼를 다 챙겨 먹은 건

의외로 역사가 짧다.

농경사회에서는

적당히 쉬는 시간도 갖고 일했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오전 내내 일을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아침을 꼭 먹어야만

힘을 쓸 수 있기에 아침식사가

정례화되었다는 설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아침식사의 이점이 많기에

'반드시'는 아니어도 먹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누구도 뭘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안 내놓으면서 뭘 먹지 말란 말은 엄청 해댄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나는

건강 관련 기사를 많이 찾아보는데 아주 가관이다.

어느 연예인이 아침에 뭘 먹고 나서

몇 킬로 감량에 성공했다는 식의 기사는

올드한 방식이다.


요새는 내가 기사를 보는 건지

초보 유튜버의 썸네일을 보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충격! 아침에 이거 먹는 사람 사망 위험증가',

'몇 년간 아침에 OO 먹었더니 결국엔..'

식의 기사가 많다.


더 짜증이 나는 건 항상 기사의 끝은

'적당량 섭취하면 문제없다'는 뻔한 소리다.

뭐든지 많이 먹으면 안 좋고

적당히 먹으면 좋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언제부턴가는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라는 사람이 정말 전문가가 맞는지,

그리고 이 기사가 기자에 의해서

작성이 됐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예외겠지만

아침식사를 정갈하게, 영양을 고려해 가며

준비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에 나만 해도 새벽 5시부터

일과를 시작하지만

아침식사만큼은 간단하게 준비하고 싶다.


대한민국에 사는 현대인들이

아침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인 것이다.


아침부터 튀김, 떡볶이 같은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메뉴를 먹는 것일 뿐인데

언론에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며 호들갑 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실체가 불분명한 그 전문가들은

아마도 전통식이라 할 수 있는

밥과 반찬을 먹어도

'아침부터 염분덩어리 드시는 겁니다'

라며 훈계할 것이다.

lunch-box-726744_1920.jpg 출처: 픽사 베이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나서 시작되었다는

아침식사와 세끼문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일터에 나가

쏟을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을 먹는 사람들에게

아침식사는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닌 충전이다.

아침이라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도록

그런 짜깁기, 양산형 기사는 그만 냈으면 한다.

그런 식으로 알려주지 않아도

어차피 알아서 건강관리하는 요즘 사람들이다.


나는 예전처럼 무언가 하나를 정해놓고 먹지 않는다.

그날 기분에 따라먹고 싶은 걸 먹는다.

빵을 먹고 싶을 땐 빵을,

과일만 먹고 싶을 땐 과일만 먹고

어쩔 땐 양배추와 고구마도 먹는다.

아, 당근은 아직도 친해지지 못했다.


좋은 아침식사와 더 좋은 아침식사만 있을 뿐,

나쁜 아침식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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