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그래서 역사와 관련된 책도 좋아하고,
TV프로도 챙겨보는 편이다.
몇 년 사이에 역사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많이 나왔는데
아주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지금 보다 더
역사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콘텐츠들을 접할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에 만약은 없다'라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에 가정을 부여해서
왜곡 혹은 미화하지 말 것,
지나간 것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라는 뜻이
담겨있는 말일 것이다.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분야가 있는데
그건 바로 스포츠.
전직 프로야구 선수가 한 방송에서 한
"야구에 만약은 없습니다.
만약이란 걸 갖다 붙이면 다 우승하죠"
라는 말이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유명해졌고
오히려 이를 계기로 팬들은
더 많은 '가정'을 하며 스포츠를 즐긴다.
내 생각도 일반 팬들과 다르지 않다.
이런 가정, 상상이야 말로
역사, 스포츠와 친해지고 더 폭넓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 글에선 스포츠 역사에
기억 남는 몇 장면, 경기에 만약을 대입해서
글을 쓰고자 한다.
자 첫 번째, 98 프랑스월드컵 때로 가보자.
조별예선 1차전, 멕시코와의 경기.
전반 27분 한국의 하석주 선수가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선취골이었고,
이 말인즉슨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리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영광스러운 순간은 얼마가지 않았다.
3분 뒤, 선취골의 주인공이
거친 반칙으로 퇴장 판정을 받은 것이다.
수적 열세, 갑자기 식어버린 분위기 등등으로
결과는 아시다시피 역전패였고,
그다음 경기는 참사였다.
만약, 이 경기에서 하석주선수가
퇴장을 당하지 않았다면
경기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그래도 졌을 것이다.
우리 축구는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었다.
해외 어느 나라도 우리를
16강 후보로 뽑지 않았으며 약체로 평가했다.
그런데 우리만 당연히 16강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심지어
강호인 멕시코를 첫승 제물로 생각했다.
전력차는 현격했다.
그런데 하석주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쏟아냈다.
그의 퇴장이 분위기를 침체시킨 건 맞지만
당시의 리드를 후반 막판까지 가져가기엔
체력도, 실력도 부족했다.
하석주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몰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의
마녀사냥 습성은 현재도 우리 정서에 남아있다.
이번 월드컵에선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이번엔 야구로 넘어가 보자.
때는 2009년 WBC 결승전,
9회 말 2 아웃에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고 돌입한 연장전.
10회 초 2 아웃 주자는 2,3루.
한국의 투수 임창용, 일본의 타자 이치로는
8구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고
결과는 이치로의 깨끗한 안타로 주자 모두 득점,
일본의 우승이었다.
투수 임창용이 벤치의 사인을 무시하고
타자와 무리한 승부를 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힘들게 올라온 결승, 특히나 상대가
일본이었다는 점 때문에 비판 여론은
오랜 시간 그를 따라다녔다.
만약에, 임창용 투수가 정면승부를 하지 않고
이치로를 볼넷으로 내보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이것도 냉정히 이야기해서 '아니다'라고 말씀드린다.
그렇게 내보냈다면 상황은 2 아웃,
주자는 만루.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은
방금 전에 비해서 무궁무진하게 많아졌으며
타자는 앞선 타자를 거르고
자신을 선택한 것에 대해 자존심 상해 덤벼들 것이다.
반면에 임창용 선수는
만루라는 압박감에 흔들렸을 것이다.
무엇보다 임 투수는 대회 내내
많은 공을 던졌기에 힘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다른 거 다 떠나서 어찌해서 막아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주축선수들이 많이 교체된 상황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겠지만
선수층을 고려했을 때
일본의 지구력을 이길순 없었을 것이다.
고로, 이 결승전 결과도
한 선수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다만 당시의 분위기상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어쨌든 기록상 패전투수로 남아있는
임창용 선수에게 책임을 씌웠을 뿐이다.
여러분들의 '만약'은 어떠하실지 궁금하다.
내 '상상'에 동의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동의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확실한 건 내가 언급한 두 경기에 대한
여러분들 각자의 생각, 견해가 있으실 것이다.
우리 모두의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서
서사로 이어지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의식 수준은 고양된다고 본다.
물론 역사 속에 누군가를 마냥
헐뜯고 비난하기 위해서
'만약'을 집어넣으면 안 될 일이다.
생각은 앞으로 나아가는 도구로 작용해야
쓸모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