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을 수 없는 장벽도 있다

by 레지널드

어린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덕담 삼아 늘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야"

아주 좋은 말이다.

아이들은 많은 꿈을 꾸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잘 알았다.

'무엇이든'할 수 있는 아이는 아니란 걸.

성인이 된 지금도

그때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잘 안다.


그래서 내가 죽었다 깨도 못하는,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분야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볼 때면 연령 불문하고 존경심이 생긴다.


제일 먼저 느낀 벽은 바로 미술.

초, 중학교 시절의 미술시간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도화지에 그린 그림이든, 찰흙이나 지점토,

기타 등등 재료로 만든 작품이든

만들고 나면 다음 시간엔 자신이 만든 걸

설명하는 식으로 미술수업이 진행되었는데

남들 앞에서 말하기 좋아하는 내가

유일하게 말하기 싫어했던 시간이

바로 저 시간이었다.

내가 봐도 엉망인 걸 남들 앞에서 설명하려니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잘 아시겠지만 학창 시절,

반마다 한 명씩 그림 잘 그리는

친구가 항상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아는 미술책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도 있었고,

남학생들 중에선 무협지에 나오는

그림을 똑같이 그리는,

이른바 만화책 형 친구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쟤는 어떤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길래

저렇게 잘 그리는 거지?'라는 경외감이 생겼다.

질투심이 아니다.

어느 정도 내가 해볼 만한 분야에서 밀리면

질투심을 느끼겠지만 미술은 그런 분야가 아니었다.

질투심은 언감생심이다.

brushes-2927793_1920.jpg 출처: 픽사 베이

몇 년 전부터는 나도 미술에 관심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사(史)에 관심이 많아져서

전시회도 종종 다녀온다.

미술 잘하는 친구에게 느낀 감정은

이젠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더 발전했다.

나와 같은 종(種)이, 나와 똑같이 팔 두 개, 눈 두 개인

사람이 이런 걸작품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면 절로 입이 벌어지고

눈은 고정되며 사고는 깊어진다.

중세유럽의 작품들을 볼 때면

최첨단 과학기술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저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미술 잘하는 친구 못지않게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던 친구는

바로 춤 잘 추는 친구들이다.


사실 이 친구들은 어떤 점에서 보면

'미술친구'보다 더 대단한 게

예술적인 감각도 있어야 하며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춤출수 있는

대범함까지 갖춰야 한다.


춤 잘 추는 친구들도 매년,

반마다 항상 있었다.

주로 여자애들이었는데

그때의 초등학생들이 대개 그러듯

그 애들도 가수를 꿈꾸며

그렇게도 열심히, 잘 춤을 소화해 냈다.

장기자랑 시간은 그 애들의 뮤직뱅크였으며

그 애들의 몸속엔 이미 BOA가 들어와 있었다.

사실,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만 해도

댄서들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좋게 말해줘 봤자 뒤에서 춤춘다는 의미의 백댄서,

나쁘게 이야기하면 정말 나쁘게 표현하는

어른들이 많았고 그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난 맹세코 살면서

댄서들을 안 좋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왜냐,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들을 비하한단 말인가.

특히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고 나서부터는

춤 또한 예술이며 시쳇말로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예능프로그램 '스우파'를 보고서는

전율이 끼칠 정도로 그녀들이 위대해 보였다.

춤, 이 또한 내가 절대 범접할 수 없는 분야다.

engineer-4915799_1920.jpg 출처: 픽사 베이

'남자애들은 조립을 잘하고

블록 장난감이나 미니카를 잘 갖고 논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설명서를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해마다 과학의 달 4월이면

고무동력기, 물로켓 경연대회를 했었는데

난 단 한 번도 참가해 본 적이 없다.

손재주가 없는 나는 형광등 교체하는 것도

큰맘 먹고 해야 하는 일이었으며

가끔씩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일 일이 있으면

뭉그적거리며 차일피일 미뤘다.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조립식 가구를 전문으로 파는 매장은

나에겐 그냥 구경하러 가는 곳일 뿐이며

거기서 파는 가구를 살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다른 남자들은 뭔가 고장 나면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는데

나는 괜히 손댔다가 더 고장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AS센터 전화번호 먼저 찾는다.


그래서 나는 목수, 건축가, 과학자들을 존경한다.


복잡한 회로판 속에서 문제를 찾아내어

고치는 전기 기사들,

거대한 나무를 정확한 치수로 분해하여

멋진 가구를 만드는 사람들,

가늠하기도 힘든 먼 행성으로

우주선을 만들어 보내는 사람들,

그들은 나에게 있어 신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다.

soldering-7897827_1920.jpg 출처: 픽사 베이

세상을 바꾸는 건

그들의 손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엔 다양한 직업들이 있다.

과거엔 직업의 귀천을 나누고 비하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직업들이 인간의 삶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성장시켰다.


세상에 쓸모없는 재능은 없다.

재능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는 게

그 때문이며, 발견한 사람이 부러운 게

바로 그 점 때문이다.


각자가 갖고 있는 그 재능을

십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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