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이 한 방송에
사연을 보내 당첨됐다고 자랑하는 걸 들었다.
행복해하는 그 모습을 보며
라디오를 끼고 살던 옛 시절이 떠올랐다.
사연이 채택되거나 퀴즈를 맞힌 청취자들에게는
소정의 상품이 제공됐는데
나는 이 분야에서 은근히 운이 있던 편이었다.
생애 첫 상품은 농구장 무료티켓이었다.
스포츠를 좋아했던 나는
당시 유일한 스포츠 전문프로그램이었던
'이은하의 아이러브 스포츠' 애청자였다.
상품소개에 프로농구 티켓교환권이 있는 걸 듣고
홈페이지에 글을 썼다.
사연을 거창하게 적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그냥 달라고 했다.
홈페이지 신청란에 아무 글도 올라오지 않아서
며칠 고민하다가
'신청글이 없어서 민망한데,
티켓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쓴 걸로 기억하는데
며칠뒤 집으로 배송되어 왔다.
제작진들은 중학생이 글을 쓴 게 귀여워서 준 듯하다.
이 프로그램은 스포츠 프로그램답게
관련된 상품들이 많았다.
스포츠 경기 티켓은 물론
다양한 운동 용품들이 많았다.
그다음 기억은 좀 강렬하다.
팝송 전문 프로그램
'김기덕의 골든디스크'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는지 모르겠다.
오전에 방송했던 관계로
학생인 나는 휴일이나 방학 때에만 들었다.
그날도 아마 방학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룹 카디건스(Cardigans)의 노래
'Kiss Me'가 나오는데 김기덕 DJ가
"이 음악의 가수와 제목을 아시는 분은
지금 OOOO로 전화 주십시오" 하길래 바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었는데 신호음이 가는 게 아닌가.
아시겠지만 이런 건 원래 경쟁률이 세서
전화하면 '통화 중입니다'라는 멘트가
나오는데 이번엔 신호음이었다.
'뭐지?'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휴대폰 너머로 김기덕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어디 사시는 누구십니까"
나는 침착하게
"서울 노원구에 사는 OOO라고 합니다"라고 했고,
김기덕 씨는 "네, OOO 씨 정답은요?"
라고 했고 내가 알고 있는 걸 이야기하자 그분은
"정답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그다음 몇 분 간은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던 것 같다.
'내가 김기덕이랑 통화를 하다니'
이 썰은 한동안 내 자랑거리였으며,
특히 'DJ 김기덕'을 아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윗세대분들과 대화할 때
이 이야기가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다.
이때 받은 상품은 전기담요였다.
추운 겨울, 아주 유용하게 썼다.
나는 그 후로 몇 개의 전기담요를
구매할 일이 있었는데 꼭 그 회사의 제품만 샀다.
방송 협찬의 아주 성공적인 사례가
나 같은 경우라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지금껏 받은 이런 경품 중에서
가장 가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는 경품은
'빌리조엘 내한공연 티켓'이다.
오전에 김기덕이 있다면, 오후엔 배철수가 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던 중
빌리조엘의 노래 'Tell Her About It'이 흘러나오는데
이번에도 DJ가 제목을 알고 계신 분은
전화 주시라고 말했다.
바로 전화를 걸었고 이번에도 전화연결은 성공이었다.
다만 DJ와 직접 통화하지는 않았고
제작진과 통화를 했고 나는 내한공연 티켓을 받았다.
그 공연은 그의 첫 내한공연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 공연인데
그 한 번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무척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재밌는 건 공연 때 이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색 상품인 것도 받아 봤는데
'지석진의 굿모닝 FM'에서 돼지갈비세트를 받았었다.
그가 진행하는 마지막 날이었고
'등굣길 아침을 함께 해줘서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바로 내 문자를 읽어줬다.
아직도 방송에서 지석진 씨가 나올 때
그 돼지갈비가 떠오른다.
20대에는 라디오와 떨어져 지내다가
30대가 되어서 다시 듣기 시작했는데 재작년 어느 날,
'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을 들으며 출근하던 중
문득 신청곡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내 짧은 사연과 신청곡이 흘러나왔고
내 휴대폰으로는 커피 교환권이 도착했다.
시대가 달라지니 상품을 받는 방식이
확 달라졌다는 걸 체감했다.
다른 건 다 아껴 쓰는 편이지만
기프티콘은 바로 쓰는 편이라
지하철역에서 나와 인근 매장으로 가
바로 교환해서 커피를 마셨다.
유독 더 진하고 깊은 풍미가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상품이 주는 기쁨보다는
내가 즐겨 듣는 프로의 DJ가
내 사연과 이름을 불러줬다는 것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상품이야 뭐 주면 감사한 것이고.
모든 상품이 유용했으며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누군가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신다면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보낼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하시라'는 것뿐이다.
청취하는 사람들보다 응모하는 사람이 훨씬 적다.
그러니 고민 마시고 바로 도전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