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시트콤을 보며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나와 아내는 요즘 밥친구 삼아 옛날에,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에 방영됐던
시트콤을 시청한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지금과는 사뭇 다른 서울시내 모습과
사람들의 패션, 가전기기들을 보며
어렸을 적 각자의 추억을 꺼내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내비게이션 없이 지도와 감으로만
길을 찾다가 낭패 보는 에피소드,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으로
요금이 엄청 부과된 에피소드 등을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삼대가 어울려 살면서 할아버지를 모시며 사는 모습과
이웃집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왕래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을 보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회상을 느낌과 동시에 지금의 세태에
조금의 아쉬움도 느낀다.
식당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 저 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빠져들 때도 종종 있다.
이렇게 사회가 변했다는 것을 여러모로 느낄 수 있지만
가장 크게 느끼는 에피소드나 소재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다.
제일 흔하게 나오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갈등.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반찬 구성은 물론이고
음식솜씨 또한 형편없다고 타박을 한다.
며느리가 뭐라고 반박이라도 할라치면,
버릇없이 대든다고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살이 찐 큰아들에게도
사랑의 잔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뭔 실수만 했다 하면
'저 자식이 뚱뚱해서' , '네가 그렇게 뚱뚱하니까'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다른 남자 조연은 같은 집에 사는
집주인의 딸과 연인관계이면서 옆집 사는 여자와
양다리를 걸친다.
또 다른 남자 출연진들은 모였다 하면
여자들의 외모를 소재로 품평회를 연다.
여대생들이 축제 기간,
잘생긴 남자 출연자를 대상으로 '노예팅'이라는 행사도 벌이고
학교성적이 꼴등인 큰아들과
늘 1등만 하는 막내아들의 차별은 당연하다.
지금이면 PD나 작가 모두 직을 걸었어야 할 일이다.
심하면 방송은 그날로 조기 종영의 칼날을 피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이 예전만큼 재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나친 표현의 규제, 더 정확히 터놓고 이야기하면
뭐만 했다 하면 불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라고 생각했었다.
세상 살면서 웃자고 보는 프로그램인데
이런저런 이야기나 소재는
어느 정도 감안해줘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막상 잊고 지냈던 20년 전 프로그램을 보니 경악스러웠다.
뭐 적당히 그런저런 소재였으면
'당시 사회가 굉장히 보수적이었구나' 하는데 이건 뭐
그런 수준이 아니라 '아 방송계가 많이 발전했구나' 싶을 정도니 말이다.
소신발언을 하자면 난 지나친 PC주의를 싫어한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꼭 지켜야 하는 선은 그것과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인간이하의 취급을 한다거나
외모를 가지고 등급을 매기고 사람을 돈으로 평가하는
사회 풍토는 PC주의를 떠나서
사람끼리 결코 해서는 안될 행동이다.
누군가를 비하해서 웃기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웃음은 절대 오래가지 못하고 뒷맛은 쓰다.
그리고 그런 농담을 하는 사람은
재밌는 사람이 아니라 '웃긴 놈'이 되어버린다.
건전한 소재로 유머를 자아내는 사람이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좋은 시도들이 늘어나야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 콘텐츠의 수명도 길게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