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머리만 자른다는 편견을 버려라
(장모님께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저의 경험을 한데 섞어 쓴 글입니다)
장모님은 몇십 년째 같은 미용실을 다니신다.
고급 인테리어 장식과는 거리가 먼 형광등,
커피머신 대신 정수기와 믹스커피만 덩그러니 있는
허름한 미용실이지만 그곳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일단, 호칭부터가 남다르다.
'실장님', '원장님' 같이 있어 보이는 단어 대신
'언니', '형님', '(누구)네', '(누구) 엄마' 등 가지각색이다.
그리고 손님이 들어오면 버선발로 뛰어나오기는커녕
슬쩍 쳐다보면서 "왔어?"라고만 말한다.
하지만 손님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 TV를 보거나 잡지를 읽는다.
그렇게 하나, 둘씩 모이면 서로만의 고급 정보를 주고받는다.
어떻게 하면 살이 빠지는지, 어느 가게가 가격이 저렴한지,
어디 식당을 가니까 서비스가 잘 나온다 등의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부터 시작해서
집안의 각종 고민과 자랑거리는 빠질 수 없고
시사 문제를 다룰 때는 관훈클럽 못지않게
진지하고 열기를 띤다.
연예인들의 가십거리가 주제로 올라오면
다 어디서 그렇게 인맥이 있는지
"내가 아는 사람이 (누구) 가족이잖아"
"우리 딸 친구가 방송국에서 일하잖아"라는 말이 나온다.
분명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들만 나오는데
이상하게 여기서는 유독 설득력 있게 들린다.
각자 다른 견해가 막 터져 나오던 그때,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그나저나, 그때 아팠던데는 좀 어때?"
아팠던 당사자는 자신의 투병일지를 말한다.
"사실 아픈지는 꽤 됐었는데 참고 살았잖아" 혹은
"갑자기 그러더라고"로 시작해서
병원 입성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를 빠르게 말해준다.
이후 다시 불꽃이 인다.
"그 운동해 봐, 나도 한때 아팠는데 그 운동하니까 안 아파"
"거기에는 이게 좋지. 사서 꾸준히 먹어봐"
"거기 말고 다른 병원 가보지" 등등.
그러다
"그래도 괜찮아져서 다행이네"로 대화가 끝이 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유대감, 결속력이 흐른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와 더불어
그들은 그렇게 격려와 위로 또한 주고받는다.
며칠 안 보이면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을 하고
머리를 할 때가 됐는데 오지 않으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미용실 사장이 장기간 문을 닫으면
아무리 머리가 답답하더라도 그때까지 참고
기다렸다가 손질을 하지, 다른 미용실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들 근처에 살면서 가끔씩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자신이 취합한 정보를
나누는 저 모습들이 정감 있다.
이 미용실을 다니는 동안
어렸던 딸은 시집을 가고,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은 군대를 가고
누군가는 떠나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에피소드를 함께 나눈 그들은
또 한 번 미용실에 모여 자신들의 정보를
업데이트한다.
낯선 동네에 이사를 오면 그 동네에 대해 잘 알고 싶고
마음 맞는 동네 친구 한 명쯤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그런 소모임이나 만남을 주선하는
어플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부담을 갖는 분,
혹은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 분들에게
나는 미용실을 권해드리고 싶다.
가장 빠르게 이 동네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이며
로컬 맛집, 핫플이 어디인지 습득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가식 없이 이야기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
쉽게 동화되어 본인 스스로 자연스레 마음을 열 것이다.
그렇게 정보가 오고 가던 그때,
차례가 되어 자리에 앉는 한 아주머니.
어떻게 해달라는 말을 하지도, 묻지도 않고
미용이 진행된다.
모든 게 다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