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정보도 없이 떨어진 그곳,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강연에 다녀왔다.
최초의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그곳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했으며
그러면서도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지금의 한인사회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보여줌으로써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자'는 좋은 강의였다.
강사가 이민자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인간에게 제일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아무런 정보 없이
모르는 장소에 던져지는 것'이라고.
최초 이민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 하면서 이야기 한 대목이다.
강의 내용도 물론 훌륭했으나 나는 집에 오는 내내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나는 하와이나 낯선 나라가 아닌
아예 무인도로 가정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무인도에 떨어지면 어떻게 살까?'
그렇다. 내가 생각해도 그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당장에 여행을 가더라도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당황하기 마련인 게 사람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혼자 덩그러니 놓이면 얼마나 무서울까.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학습만화가 있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시리즈'가 그것인데
교실마다 한 권 이상씩 꽂혀있었고
아이들에게 참 인기가 많았다.
나도 그 책을 읽어봤는데 주된 내용은 생존법이다.
어떻게 하면 식수를 얻을 수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불을 지펴야 하고
안전한 잠자리는 어떻게 마련하는지 등등.
그런데 나는 단순한 생존법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보고 싶다.
과연 인간은 무인도에서 정말 살아갈 수 있을까?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떤 환경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
무엇보다도 그 답답하고 무서운 심정을
털어놓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그곳에서 사람은 과연 얼마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보면 남자 주인공이 배구공 하나에
사람얼굴을 그려놓고 '윌슨'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그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기상 악화로 윌슨이 바닷가로 떠내려 가버리자
그는 정말로 친구하나를 잃은 것처럼 윌슨을 부르며 절규한다.
이젠 그가 오롯이 이해가 된다.
다 큰 성인 남성인 그도 무서웠던 것이다.
마음을 나눌 사람 하나 없다는 그 현실이.
그리고 그것 또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내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고,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것을 끊임없이
자각하기 위한 그런 행동.
누군가와 대화를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는 그런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생존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배구공에 감정이입이 되고
그것이 표류 됐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 그리고 또 한 번
외로움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그를 절규하게 만든 것이라고 본다.
처음엔 갈증을 해결해 줄 물,
배고픔을 달래줄 식량, 편안한 잠자리가 그립겠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적응기를 거쳐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면
육신의 명줄은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해결되고 나면 잊었던, 혹은
모른척했던 심리적 고통이 엄습해 올 것이다.
해결할 수 없는 그 강한 외로움 말이다.
어린아이들이 학습만화책을 통해
육체적인 생존법을 익혔다면
나이가 들어서는 심리적인 생존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딱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모든지 이겨낼 수 있고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는
긍정적 사고방식,
또 하나는 지금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기.
이 두 가지만 탑재한다면 무인도에서도
거뜬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긍정과 감사,
이것은 외로움과의 싸움에서 큰 무기가 될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 들면서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민 1세대에게 존경심을 표한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