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의 나라 걱정

지방이 사라진다

by 레지널드

나는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사랑한다.

나 스스로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중에서 우리만큼

성공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부침도 있었지만

민주주의도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

흔히들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로 나누어

서로 자기네들이 역사에

더 공헌을 많이 했다고 싸우는데

점잖은 척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난 그 두 세대가 다 고생해 준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산다고 생각한다.

영화로 치면 '국제시장'의 황정민들도 존경하고

'1987'의 강동원들도 존경한다.


이런 애국자인 나에게 누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이요'

라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지방 소멸'을 이야기하고 싶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고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도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젠 정말 심각해졌고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명절이 끝나면 친구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자신들의 고생담을 늘여놓았다.

"나 광주 내려가는데 10시간 걸렸어"

누가 그러면 다른 한쪽에선

"거제도는 12 시간 걸리거든?" 이러면서 말이다.

충청도와 강원도의 대여섯 시간은 끼지도 못했다.


그때 우리네 부모님들은 다 고향이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지방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직장인이 된 요즘

명절계획을 이야기하다 보면 대부분이

"어차피 고향이 서울이고,

지방에 있는 어른들은 다 돌아가셔서 어디 안 간다"

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 세대가 4,50대가 되면 과연 지방에 누가 있을까.

이뿐만 아니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을 포함한

친구들 중에서 열에 아홉은

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에서 일하는 게

마음 편하고 좋지 않나라는 생각이었지만

내막을 들어보니 나 같아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단 청년들을 채용할만한 회사가 없다.

중소기업들 입장에선

'채용공고를 내도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은 중소기업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 입장은 다르다.

그 정도의 노동강도에

그 돈을 받고 일할 거면

돈 더 주는 서울이나 수도권회사에 간다는 입장이다.

일단 회사 개수부터

서울과 경기도가 압도적인 게 사실이다.

bhahn0-ktx-3668473_1920.jpg 출처: 픽사 베이

지방 소멸화로 발생하는 의료격차도 큰 문제다.

우리나라 각 지방에는 국립대병원이 잘 형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부산/경남의 부산대병원,

광주/전남에 전남대병원 등등.

그런데 얼마 전 한 다큐멘터리에서

광주에 사는 한 노부부의

서울 원정 진료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부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 SRT를 타고

서울 수서역에 내린 뒤 서울아산병원으로 가서

오전에 진료를 보고 점심도 먹고

다시 기차에 올라 광주로 돌아간다.

저녁은 광주 집에서 여유 있게 즐긴다.

지방 사람들이 상경해서

서울의 종합병원 진료를 받는 게

예전처럼 고된 일정이 아닌 세상이 됐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지방 병원입장에선 다르다.

안 그래도 서울의 병원보다

투자나 기반시설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지방 병원들은 환자수 급감 또한 고민해야 한다.

일반 직종보다 취업 걱정을

조금 덜해도 되는 편인

의료 전문직들도 지방을 떠나

서울로 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지방의료가 붕괴되면

그곳의 산모들은 예정일이 다가오면 목숨을 걸어야 하고

응급환자들은 구급차뺑뺑이만 돌다가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숨질 수도 있다.


어느 통계를 보니

미국인들의 57%는 자신이 태어난 주를

떠나지 않고 평생 그곳에서 산다고 한다.

우리나라상식이라면 상당수가

뉴욕이나 LA, 시카고 같은

대도시로 떠났겠지만 저들은 아니다.

그곳을 떠나지 않더라도 충분히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 사람들이 왜 지방을 떠나

서울로 오는지 자세한 내막을 몰랐던 시절,

나는 서울에서만 나고 자랐기에

지방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대전이나 광주에 살면 왠지 한적하고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부산이나 대구에서 살면

하루하루가 다이내믹한 재미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지역 출신의 사람들의

고충을 듣고는 내가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이 문제만큼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막연한 대책조차 서지 않는다.

역대 정부 모두 부동산, 집값을 화두로 삼고

해결을 위해 노력했는데도

해결이 안 된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살기 좋은 지방 도시를 만들면

자연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울과 수도권 집값도

안정화될 것인데 참 어려운 문제다.


그래도 외면하지 말고

국가기관들이 나서서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표 얻을 궁리, 의석수 지킬 궁리로

지역 나누고 묶을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자기네들 밥줄 신경 쓰듯

지방 사람들 신경 좀 썼으면 좋겠다.


어차피 인구가 줄어들지 않으면 의석수도 안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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