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아마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라는 야구단은
들어봐서 알 것이다.
북한 사람들도 뉴욕 양키스는 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뉴욕 양키스,
한국 선수들과 유독 연이 깊은 LA 다저스.
이 두 팀은 미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인기팀이자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팀이다.
이 두 팀의 공통점은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경기장 이름에
회사나 인물의 이름이 아닌
구단명을 사용한다는 점.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 이름은 양키 스타디움이고
다저스의 홈구장은 다저 스타디움이다.
경기장 명명권 장사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구단을 운영해 나갈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종목 불문하고 많은 스포츠구단들이
명명권으로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인다.
한국 KBO리그도 대다수의 경기장이
그 홈팀의 모회사 이름을 붙여 운영 중이다.
그런데 얼마 전, LA 다저스가
유니클로와 공식계약을 맺고 경기장 이름에
유니클로를 붙일 것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경기장 티켓수입은 물론이고,
중계권료나 각종 광고, 부대수익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는 부자구단인 다저스가
경기장 명명권을 판매했다는 점이
충격이면서도 아쉬웠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자본주의의 나라다.
경제성이 우선이지만 재밌게도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어떤 가치에 대해서는
한치의 타협도 없는, 아주 매력적인 나라다.
다저스 구단 내부에서도
엄청난 고민과 격론이 일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다저스타디움'은 지켜야 할 가치였을 테니까.
물론, 경기장 이름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처음엔 우세했을 것이고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어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를 쭉 보니 최근 몇 년간
다저스 선수들의 연봉은 크게 상승했고
특히나 오타니 영입에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
당연히 다저스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그것도 엄청난 사치세를 지급해 왔다.
(적정 금액 이상을 썼을 경우 사무국에 내야 하는 돈)
얼마 전만 해도 '사치세 따위는 두렵지 않다'며
선수영입에 적극적이었던 구단이 이제는
그 사치세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해보면
많이 아쉬운 선택이지만 이게 마냥
안타까운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이들이 사치세를 많이 낸 이유는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영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다저스는 지난 10년간 포스트시즌엔 항상 진출했고
2020년대에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세 번이나 차지했다.
막대한 돈을 투자했음에도
성적이 시원치 않은 구단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에 비하면 다저스는 투자에 성공한 것이다.
이번 계약을 통해서도 다저스는 상당한 규모의 수익을 얻었다.
그 돈으로 구단에 필요한 선수를 영입하고,
팬들을 위한 인프라 개선 등에 투자할 수 있다.
전통을 고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짙게 남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봤을 땐 부채도 해결하고
더 좋은 팀이 되기 위한 초석도 다질 수 있게 됐다.
전통과 자존심 지키겠다고 점잔 빼다가
진짜 재정적 문제를 만나게 되면
그때부터는 더 초라해질 수 있다.
주축선수들은 다른 구단으로 팔아야지,
인프라에는 투자를 못하니 팬들은 빠져나가지
성적은 곤두박질치니까
광고/스폰서, 중계권료도 시원찮아진다.
그렇게 되면 다저스는 한때 잘 나갔던 과거를
회상만 하는 팀이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선택이
'돈만 보고 내린 결정'이 아닌
'미래를 위한 장기적 포석',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전통을 깨트린건 아쉬운 일이다.
그러니 그 아쉬운 일을 정말 아쉬운 일로만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을, 앞으로를 잘 살아야 한다.
다저스로 계속 예를 들자면 구장 명까지
팔아가며 번 돈으로 효율적 경영을 해야 한다.
그 돈 믿고 방만한 경영을 하게 되면
전통도, 실리도 놓친 구단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지켜야 할 올곧은 신념이 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그것을 놓치게 된다면 반드시 손에 뭐라도 남겨야 하고
그 남긴 것을 더 키워야 한다.
적어도 놓친 것보다는 배로 키워놔야 한다.
남들 다 놀고 있는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자기 계발을 한다면 이왕시작한 거
좋은 결과를 얻을 때까지 해야 한다.
심지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들 다 공부하고 일할 때 놀 거라면
이왕 노는 거 한치의 후회도, 미련도 없이
제대로 원 없이 놀아야 한다.
뭔가를 결정할 때 신중해야 하고
내린 결정에 후회 없이
올인해야 하는 게 이 때문이다.
그래도 야구팬으로서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양키스타디움만큼은 결코 이름 바꾸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