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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감각을 동원하여 만끽하자

튀김에 대하여

by 레지널드

이른 새벽, 엄청난 빗소리에 잠을 깼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사방이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귀는 열려있다.

귀를 통해 들려오는 생생한 빗소리.

마치, 튀김을 할 때와 똑같은 소리다.


튀김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건강관리를 위해

안 먹는 사람은 있어도 맛없어서 안 먹는 사람은 못 봤다.


튀김은 모든 감각을 일깨우는 완벽한 작품이다.


튀김옷을 묻혀 기름에 넣을 때 들리는 그 소리.

촤아악 하는 그 소리에 귀가 행복해진다.


곧이어 코가 반응한다. 실내든 야외든 튀김을 하면

그 근처의 사람들이 괴로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튀김기에서 건져내 '탁탁' 털어낸다.

기대치가 점점, 더 치솟는다.

deep-fryer-6993379_1280.jpg 출처: 픽사베이

조리가 끝나고 시각적 평가가 먼저 이루어진다.

어떤 기름을 썼느냐, 몇 번째 튀겼느냐에 따라 색은 조금씩 다르다.

옅은 베이지색에서부터 노란색, 그리고 아주 연한 파스텔 톤 까지 다양하다.


이제 미각이 등판할 차례다.

입에 넣어 씹는 순간 다시 한번 청각을 자극한다

조리할 때 듣던 소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바사삭'

맛은 말해 무엇하랴, 당연히 맛있는 음식인 것을.


다 먹고 난 뒤, 번들거리는 입술,

그리고 그 입술을 붙였다 뗄 때 '쩍' 하는 느낌 또한 좋다.


오죽하면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말이 있을까.

이렇게 우리 몸의 모든 감각을 만족시켜 주니 완벽하다고 할 수밖에.


튀김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아마 동네 분식점일 것이다.


나도 내 기억에 남는 첫 튀김은

떡볶이와 함께 먹은 오징어튀김과 야채튀김이었다


야채를 유독 싫어했던 나는 야채 튀김을 먹고

'야채도 이렇게 요리하면 맛있구나'라고 느꼈다.

뭘 튀겨도 맛있다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체득한 것이다.


오징어 튀김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튀김이다.

기다란 튀김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오징어만 쑥 빠져나오고 튀김옷만 남은 경험 있으신지.

나는 의도치 않게 그런 경우가 너무 많았아서

오히려 그 남은 튀김옷의 매력에 빠졌다.

간장,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어도 좋고 그냥 먹어도 고소하니 맛있다.


그리고 꼭 떡볶이와 함께 먹어야 하는 튀김도 있다.

그건 바로 김말이. 나는 겉모습만 보고 '저걸 왜 먹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난 김말이를 꽤 늦은 나이(?)인 12살 즈음 처음 먹었다.

누나가 계속해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걸 보고 한번 따라 해 봤는데

그때 실감했다. 김말이는 꼭 찍어 먹어야 되는구나 라는걸.

떡볶이 국물은 약간 뻣뻣한 당면 사이로 촉촉하게 스며들어가

맛과 식감 모두 증진시킨다.

간장에도 찍어먹어 봤는데 임팩트가 굉장히 약하다. 반드시 떡볶이 국물이어야 한다.


같은 음식이어도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나에겐 새우튀김이 그중 하나다.

동네 분식점에서 먹는 새우튀김, 횟집에서 나오는 새우튀김,

조금 비싼 일식 전문점에서 먹는 새우튀김. 이 세 가지 모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그중 No.1은 분식점이다. 깨끗한 새 기름이라고 다 좋을까?

물론 건강을 생각하면 그게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튀김요리를 먹기로 한 이상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맛있으면 된다.


분식점 새우튀김은 깨끗한 새 기름이 아닌

몇 번 튀겼던 기름으로 튀겨서 그런가 진한 고소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옷색깔도 묘하게 진하다.

횟집과 일식집의 새우튀김이 새우 본연의 맛에 집중했다면

분식점 새우튀김은 '새우 <튀김'인 셈이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튀김의 가짓수도 굉장히 늘어났다.

주점이나 튀김 전문점에 가면 굴, 조개 같은 어패류에서부터

아스파라거스나 가지 같은 야채류와 두부까지 가지 각색이다.


따지고 보면 치킨도, 돈가스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튀김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도 고유의 튀김 음식이 있고.

그러나 나에게 있어 '튀김'이라 함은

분식점 한 구석을 지키고 있는, 진한 갈색의 옷을

입고 있는 음식들이 1 선발이다.


단독으로 빛나기보다는 옆에 있는 누군가와 합을 맞춰야

빛을 발휘하는 그 분식점 튀김들.


바삭하게 튀겨지는 소리가 새벽 방 안을 가득 메운다.

내일은 꼭 튀김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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