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보존, 과연 무엇이 옳을까
며칠 전, 청량리 경동시장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에 다녀왔다.
SNS 등지에서 꽤나 핫한 곳이라고 한다.
과거 극장이었던 곳을 전면 리모델링 한 이 매장은
그러고 보니 영화관과 구조가 똑같이 돼있어서 신기했다.
스크린이 있었을 장소에는 카운터와 Bar가 있고
테이블은 영화관 객석처럼 층층이 이루어져 있다.
전통시장에 위치한 폐 영화관이었던 이곳에
현시대 가장 유명한 커피 브랜드의 매장이 들어선 게 참 이채롭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보니,
외국인 관광객들도 꽤 많이 찾아오는 듯하다.
정말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관할 당국이나 시장 상인회 쪽에서는 폐점한 영화관이
골칫덩이었을 것이다. 쓸데없이 부지는 많이 차지하고,
망해서 나간 자리라는 인식 때문에 누가 여기서 사업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러나 대기업과의 협업으로 이곳은
당당히 청량리의 핫플로 자리 잡았다.
'저런 곳에 무슨 카페를'이라는 생각을 역으로 이용한
기업과 관계당국이 만들어낸 엄청난 결과물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 주변을 둘러봤다.
옛날의 청량리가 아니다. 이곳은 시장만 그대로지
과거 집창촌이라 불리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성공적인 개발의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른 곳의 사정은 어떨지 한번 생각해 보면
마냥 개발이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야구팬인 내가 제일 먼저 떠 올린 건 동대문 야구장이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동대문 야구장이 철거됐다.
당시 수많은 야구인들이 철거에 반대하는 성명은 물론
기자회견도 했었고 스포츠 신문, 종합 일간지에서도
신중을 기하자는 사설을 내곤 했었다.
하지만 디자인과 패션의 성지를 만들겠다는 계획하에
철거가 진행됐고 그곳엔 DDP가 자리를 잡았다.
결과적으로 그 계획은 대성공을 거뒀다.
DDP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다녀간 서울의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 잡았으며,
개장 이래로 꾸준히 전시회나 각종 행사들이 펼쳐졌다.
과감히 개발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누리지 못했을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동대문 운동장과 야구장이 갖고 있던
역사성에 대한 아쉬움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울 수 없다.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의 장례식이 치러진 장소였으며
각종 마라톤 대회의 출발점이나 도착점이었고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비롯한 주요 야구경기가
모두 펼쳐진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 의미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더 혀를 차게 만드는 것은 철거한답시고
모든 걸 다 치워버려 지금은 동대문 운동장을 기념하거나
상징할만한 그 어떤 흔적도 없단 점이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은
건립된 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수만 관중을 수용하고 경기를 진행한다.
뉴욕 메츠는 옛 경기장 셰이 스타디움의 상징이었던
'빅애플'을 잘 보관해두고 있다.
반면에 동대문은 아무것도 없다.
개발로 인해 우리가 얻은 것이 있다면 잃은 것도
분명하다는 자명한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
대한민국은 단기간에 전 국토가 개발된 매우 드문 국가다.
그렇다면 재건축과 재개발 또한 동시다발적으로 수요가 생길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것을 통해 잃는 것들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잃더라도 최소한으로, 물리적인 공간은 사라지더라도
우리 머릿속에 기억을 생생하게 이어 나가 줄 교보재라도 남겨야 한다.
추억이 아무리 아름답고 구전되며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것만 못하다.
우리 후손들에게 전설을 들려줄 것인가
보여줘야 할 것인가, 생각해봤으면 한다.
2025년, 올해는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 완공 100년이 되는 해다.
살아남아 버텼다면 성대한 생일파티를 했을 경기장을 추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