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 피할 수 없다면 최소화라도..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서울 노원구에는
백사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겨울이면 연예인들을 비롯한 각종단체에서
연탄 봉사활동을 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자기가 사는 곳이 그런 식으로 언론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누가 좋아하겠나.
안타깝게도 이곳은 여름에도 언론에 오르내린다.
장마철이 되면 노원구의 두 곳이 조명을 받는데
한 곳은 툭하면 범람됐던 중랑천,
그리고 또 한 곳은 백사마을이다.
불암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온통 아파트만
빼곡히 들어선 이 노원에 유일하게 있는
판자촌. 흔히들 달동네라고 표현하는
백사마을의 주민들은 장마철이 끝나면
이재민이라는 타이틀까지 받는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뉴스와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프로그램에서
그 동네를 보면 어린 나도
'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라고 생각하며 막막함을 느꼈다.
파내도 파내도 끝없이 들이치는 물,
물이 다 빠지고 나간 집에는
온갖 진흙과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나뭇가지들이 가득이다.
비가 그친 하늘은
안 그래도 복구하느라 막막하고
눈물 나게 힘든 그들에게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햇살과 함께
무더위를 선사한다. 야속하기 그지없다.
가슴 아픈 건 아무리 완벽하게
복구를 했어도 내년 장마철에도
또 이런 사고가 발생할 것이며
더 가슴 아픈 건 높은 확률로
피해자는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선을 지켜라, 적당히 해라,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등등 '분위기 파악'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말은 참 많다.
하지만 그건 인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이 무심한 하늘에게도 해주고 싶다.
적당히 내려주는 비는 축복이다.
농부들 입장에서 가끔씩 내리는 비는
말 그대로 단비 같은 존재이며
그 비 덕택에 양질의 농작물이 탄생된다.
비가 적게 온다면 농작물의 양과 질은 떨어지고
이는 국가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준다.
농부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비는 메마른 감정을 적셔주어
감성적으로 만들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러나 짧으면 나흘, 길면 열흘 넘게 지속되는 장마는 다르다.
사람을 울게 하고 지치게 만든다.
'물멍'을 좋아하는 나는, 비가 와서 수위가 올라온
중랑천이 좋다. 그러나 그렇게도 운치 있는
중랑천은 장마가 지나면
수위가 올라온 수준이 아니라
아예 산책로와 운동 시설을 집어삼킨다.
뉴스에 나오는 농부들은 자식 같이 애지중지
키워온 농작물들이 떠내려가는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하고
가축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자연재해는 야속하게도
사회의 가장 약자들에게 먼저 타격을 준다.
이번 장마철도 참 걱정스럽다.
어디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지구 온난화는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다.
온도 상승의 폭을 줄이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
그 말이 맞다면 올해 장마는 작년보다 셀 것이고
앞으로 점점 더 세게, 혹은 자주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랴 라는 말이 있는데
우린 이미 너무나도 많은 소를 잃어봤다.
사람은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난 인정 한다.
장마도 지구 온난화와 마찬가지다.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으로'
장마를 피할 수 없다면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이재민들에게 어떤 지원책을 해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재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움직였으면 한다.
피해를 막기 위한 구슬땀이
취약계층의 피눈물을 막아준다.
아울러 하늘에 작은 바람이 있다면
비뿐만 아니라 더위도 적당히 해줬으면 한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켜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실외 작업이 필수인 산업역군과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들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더위만 왔으면 좋겠다.
일과 스트레스에 치인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웠을 때만이라도 질 높은 수면을
취할 수 있게 열대야는 아예 오질 않았으면 한다.
올여름, 날씨로 인해 불행해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