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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풍선을 추억하며

응원 도구의 상징, 이젠 반입조차 안된다

by 레지널드

다들 막대풍선 한 번씩은 두드려 보셨을 것이다.

원래는 기다란 하나의 풍선을 반으로 접어 사용했었는데

우리나라의 모 야구단 마케팅팀 직원과 기업인이 협력해

길이를 대폭 줄여 한 손에 하나씩 잡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다른 나라보다 유독

우리나라 응원문화에서

막대풍선은 빠질 수 없는 도구다.


나도 막대풍선에 대한 추억이 많다.


어렸을 적부터 야구장에 자주 갔었는데

종합운동장역에서 내려 야구장까지 올라가는 길,

땅땅 거리며 역 안을 가득 울리는

막대풍선의 소리가 BGM이었다.


관중석에 앉아 똑같은 색의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응원을 하고 있으면 강한 연대감이 형성된다.


응원단장의 주도하에 일사불란하게

풍선을 움직이고 두들기며 소리를 지르면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응원하는 팀이 이긴 날, 내가 들고 있는 막대풍선과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사람을 지하철에서 보면

왠지 반갑고, 지는 날엔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중, 고등학교 시절 체육대회 때도

막대풍선은 필수였다.


더 이상 어린이라고 할 수 없는 나이임에도

친구들은 항상 그걸로 서로 머리를 치고

귀에다 대고 세게 치는 등 철없는 장난을 쳤다.

이상하게 그것만 들고 있으면 그렇게 된다.


내가 커가면서

비닐봉지 재질과 다름없었던 막대풍선도

수영 튜브 재질로 퀄리티가 향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장에서든, 체육대회에서든

막대풍선의 엔딩은 항상 쓰레기통이었다.


질 좋은 비닐이 쓰레기장에 쌓이는 건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옳지 않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명분이 그렇게 쌓이고 있었다.


시대가 변한 만큼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달라졌고

규제의 칼날도 예리 해졌다.


그 칼날은 식당, 카페뿐만 아니라 야구장까지 찾아왔다.


일회용품 사용규제로 인해 더 이상 응원도구로써

막대풍선을 판매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몇몇 야구장에선 아예 기존의 풍선 반입조차 안된다고 한다.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을 막아 환경을 지키자는

취지는 100% 공감한다.


그리고 막대풍선으로 인해 엄청난 쓰레기가 생긴 걸

봤던 경험이 있기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내 추억이 사라진 게 아쉽다.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 구단의 디자인과 로고 때문에

기념 삼아 모았던 적도 있었고,


대규모 매스게임을 방불케 하는 상대팀의

막대풍선 퍼포먼스를 보고 괜스레 주눅 들었던 기억,


응원팀의 끝내기 승리 때 풍선이 터질 듯이 두드리다

옆에 아저씨 머리를 쳤던 웃지 못할 기억까지.


야구장은 물론, 체육대회 때 찍은 사진에서도

전부 막대풍선이 함께 했었다.


하지만 이젠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 되어버린 막대풍선.


그래도 눈치 빠른 야구단들은

재빠르게 후속 작품을 만들어 낸다.


다회용 응원도구, 쉽게 말해 플라스틱 봉이 그것인데

일본야구에서 쓰던 응원도구가 우리나라에도 도입이 된 것이다.

그것도 제법 두드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지난 20년 넘게 마주치던 막대풍선의 맛은 안 난다.

소리가 작게 나서 좋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잠실야구장에서 좀 떨어진 강남경찰서 인근까지

쩌렁쩌렁 울리던 막대풍선의 소리가 더 좋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처럼

역동적이었던 풍선 물결 또한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마음을 다시 고쳐 잡아본다.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과거의 추억 때문에

미래세대가 살아야 할 지구를 더 이상 망가트리지 말자고.


시대와 환경이 달라지는 만큼 응원도구도 달라져야 하기에,

막대풍선은 좋은 추억으로만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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