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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길이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

by 레지널드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강가나 해안에 조성된 자전거길을

따라 라이딩할 때 불어오는 바람의 맛을 아시리라.

드라이브할 때보다는 느리지만

그것이 주는 쾌감은 자동차보다 더 크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보조바퀴를 떼고

처음으로 두 발 자전거를 타던 때도 기억이 나실 것이다.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자전거를 타고 마지막 내리는 과정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낸 그때

그 짜릿한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나 또한 그 순간이 30여 년이 다 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지금처럼 공유 자전거 시스템이 없던 그때,

처음으로 자전거 가게에 들러

자전거를 샀을 때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집에서 내가 다닌 중학교까지의 거리는

자전거로 왕복 40분이었다.

자전거 타는 걸 좋아했던 나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그 덕분에 학교 가는 걸 싫어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중랑천에서 자전거 타는 취미가 생겼다.

주말에 그곳에서 자전거 탔을 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봄이면 개나리와 철쭉, 장미 등 꽃 향기가 내 코에 스며들었고

가을엔 따스한 햇살과 푸른 하늘이 내 온몸을 감싸 안아줬다.


고등학교 때는 왕복 20분 거리로 조금 짧아졌다.

자전거 타는 시간은 짧아졌지만 그 시기에

나의 자전거 생활을 더 윤택하게 해주는 장비가 생겼다.

바로, MP3 플레이어. 그것만 귀에 꽂고 달리면 전국 어디든

갈 자신이 있었다. MP3를 처음 샀을 때 즈음

난 자전거로 한강까지 가기도 했었다.

그때 들었던 음악들을 아직도 즐겨 듣는다.

그리고 그 음악들을 지금 들으면

고등학생 때 나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모든 길 또한 또렷하게 떠오른다.

정서적 취향은 어렸을 때 형성 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가끔씩 비를 맞기도 한다.

조금씩 내리는 비는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가 점점 많이 내리면 조금 곤란해진다.

일단 옷이 다 젖는다.

고장 날까 봐 MP3는 가방 안주머니 깊숙이 넣는다.

그러나 교과서가 젖는 건 피할 수 없다.

학기가 끝나고 교과서를 버릴 때 보면

비에 젖은 윗부분이 울퉁불퉁했다.

그렇지만 여가 생활로 자전거를 탈 때는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기분이 좋았다.

특히, 정말 무더운 여름에

갑자기 엄청난 양으로 내리는 소나기를

맞았을 때, 옷 젖는 건 개의치 않는다.

그냥 내 몸을 감싸는 그 시원함이 너무 좋았다.


성인이 돼서는 지하철을 타고 등하교를 했고,

주말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자전거와 멀어졌다.

그렇게 몇 년간 방치되어

녹슬어 쓰지 못하게 된 자전거를

버릴 때 참 기분이 묘했다.

나와 함께 수많은 추억을 쌓은 녀석인데

내가 너무 관리를 안 했구나 라는 미안함,

그리고 단 한 번의 사고도 나지 않고

안전하게 태워줬음에 대한 고마움이 교차했다.

사진 한 장 안 찍어놓은 게 못내 아쉽다.


군대에 있을 때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간부가 있었다.

그 간부가 주말 당직을 서는 날엔 조심스럽게

한번 타봐도 되냐고 부탁했다.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자전거는 남들에게 자동차 같은 존재다.

남에게 빌려주는 건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일이다)


고맙게도 그 간부는 허락을 해줬고

나는 그때마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며

그 큰 영내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언제 한번 그 모습을 본 중대장이

"나랑 자전거 타러 나가자"라고 해서

근처 월운저수지를 돌았던 적이 있다.

가을이었는데 그 울긋불긋했던 양구 대암산의 단풍,

그리고 정말 따스했던 햇살과 대기 오염 하나 없는,

서울의 하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푸른 하늘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1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먹은

막국수의 맛 또한 강렬했다.

내 인생에서 지금껏

그보다 더 맛있는 막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따릉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고 다른 지자체들도

공유 자전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아주 좋은 정책이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좋고

출퇴근이나 통학용으로 타는 자전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으로도 장점이 크다.

무엇보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공공 서비스를 이용했으면 좋겠다.

이용자가 증가할수록 당국에서는

더 안전한 자전거를 도입할 것이고

더 다양한 자전거 길을 만드는데 노력할 테니 말이다.


30대 중반인 지금, 자전거를 타지는 않는다.

요즘엔 그냥 러닝을 한다.

러닝을 하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

강바람을 누비며 달리는 그 쾌감이 얼마나 좋은지 잘 알기에

자전거로 다시 갈아탈까 하는 욕구가 샘솟는다.

그래서 좀 진지하게 고민해볼까 한다.

bicycle-path-3444914_640.jpg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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