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했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 간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극장영화'는
'나 홀로 집에 3'다.
백화점 내부에 위치한 영화관이었는데
전날부터 굉장히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가자마자 팸플릿을 챙겼고,
팝콘과 콜라를 사고 신나게 입장했다.
사실, 영화는 그다지 재미없었으나
그때의 추억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 후로 정확히 27년이 지났다.
그 사이 영화관 시스템은 많이 변했다.
시설은 말할 수 없이 쾌적해졌고,
스크린의 크기와 화질/음향 등 기술력 또한
나날이 발전해 갔다.
팝콘과 음료수만 판매했던 매점도
다양한 메뉴들을 무기 삼아
변신을 거듭해 나갔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변한 방식은
티켓 구매가 아닐까 한다.
인터넷/모바일 예매는 없던 그 시절.
우리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기다란 줄을 서야만 했다.
어떤 영화가 어떤 시간대에 하는지,
그리고 남은 티켓은 얼마인지
매표소 위에 설치된 화면을 보면서
초조해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당시 비닐 파일에 영화표를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던 사람들도 많았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막 도입되던 시절
코엑스에 위치한 영화관은
촬영장소로 큰 인기였다.
드라마에서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면
항상 그 영화관을 갔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홀린 나는
그 영화관을 처음 갔던 때도 또렷이 기억한다.
거기선 장동건 주연의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봤다.
꽤 재밌게 봤는데 흥행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고 기술이 발전한다는 게
영화관 입장에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대세가 되면서
서울극장, 대한극장 등 2000년대 초반까지 호황이었던
일반 영화관들의 대다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여전히 잘 나가느냐? 그것 또한 아니다.
최근의 기사들을 보면 OTT 시장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고
이로 인해 관련 업체들의 실적이
크게 악화 됐다고 한다.
참고로 이런 유의 기사는 몇 년 전부터 나왔다.
그만큼 지금의 영화관은 큰 위기에 직면했다.
그래도, 정말 다행히 영화관의 순기능은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영화관은 사람들을 한데 모여주고,
그들의 유대감을 돈독히 해준다.
특히나 어색한 사이일수록 나는 더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걸 추천한다.
그곳에 가서 영화만 보고 각자 헤어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영화 보기 전 혹은 보고 나서
같이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대화도 더 많이 나누게 된다.
어색한 사이여도 영화를 주제로
대화할 수 있으니 이야깃거리야 당연히 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영화관이 데이트 코스 1순위 아니겠는가.
영화관은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갖기에도
여전히 좋은 장소다.
집에서 영화를 본다고 가정해 보자.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2시간짜리 영화를 보진 않을 것이다.
중간에 핸드폰도 보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관에서는 쉽게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모든 가족들이 같은 곳을 본다.
다 끝나면 그제야 움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후 함께 본 영화를 주제로 여러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이들 학업이나 집안의 대소사가 아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게 영화관이다.
아무리 편안한 소파가 있고, 맛있는 간식거리가 있어도
영화를 볼 때만큼은 각진 영화관 의자, 고소한 팝콘과 콜라가 더 있어 보인다.
TV가 스마트 해졌다고 해도 압도적 크기의 스크린과
가슴까지 울리는 음향을 따라잡을 순 없다.
무엇보다 다른 곳에서 영화를 볼 때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의 소중한 기억이 새겨진다.
그래서 나는 영화관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