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분을 항상 '있어 보이게 포장해 준' 고마운 스파게티
(*스파게티는 파스타의 여러 종류 중 하나입니다. 이 글에선 편의상 스파게티를 파스타 전체로 통칭하여 표현하겠습니다)
"기름을 두른 팬에 마늘을 넣고 볶는다.
삶은 면과 소스를 넣고, 기호에 따라 약간의 채소나
다진 고기와 함께 한번 더 볶는다.
마지막엔 치즈를 위에 뿌려 약간 녹을 때까지 기다린다"
아주 간단한 나만의 스파게티 요리법이다.
집에서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나는 스파게티를 해 먹는다.
스파게티는 요리하는 시간도, 먹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 '간편 식품'이다.
하지만 요리하는 그 짧은 시간에 우리 집 주방은 이탈리아의 가정집이 되고
먹는 순간, 나는 영화나 드라마 속 댄디한 남성이 된다.
그래서 나는 스파게티를 좋아한다.
나의 '스파게티 환상'은 어렸을 적부터 시작한다.
드라마에서 청춘남녀들이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아 스파게티를 먹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스파게티 먹으며 데이트해야지'라고 다짐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스파게티 전문점이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많이
대중화되지 않았었다. 어린 내가 스파게티를 접할 수 있었던 길은
프랜차이즈 피자집에서만 가능했다.
피자 한판을 주문하면 얼른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엄마의 기분이 좀 좋아 보이면 스파게티도 시켜도 되냐고 물어보고
허락해 주면 그날은 내 생일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행복했다.
알루미늄 용기에 담겨온 그 스파게티가 어쩜 그리 맛있던지..
그러나 드라마에서 본 스파게티와는 비주얼이 전혀 달랐기에
내 로망을 완전히 실현시켜주진 못했다.
그 로망은 스무 살이 되어 드디어 실현했다.
당시에 꽤 유행이었던 스파게티 전문점에 처음 갔던 날.
토마토소스가 얹어진 '피자집 스파게티'만 먹어봤던 나로선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까르보나라의 충격은 잊으라고 해도 잊을 수가 없다.
꾸덕꾸덕한 흰색 크림, 다 먹고 나면 입술은 텁텁하고
입안은 느끼한데 전혀 거북하지 않고 고소했던 그 맛..
한때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스파게티를 먹던 적도 있었다.
파스타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먹은 스파게티도 기억에 생생하다.
토스카나의 넓은 올리브 밭을 바라보며 먹었던 펜네와 뇨끼.
콜로세움 인근에 위치해 있어 먹으면서 '아 성공했다'는 기분을 안겨준 페투치네.
모두 나에게 소중한 추억을 안겨준 스파게티였지만 그래도 나는
소스 흥건히 있는 '한국식 스파게티'가 좋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요리에 요 자도 모르는 내가 종종 해먹을 정도로
간편식으로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은 스파게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해도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됐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 내가 갖고 있는 '스파게티 환상'은 깨지지 않고 있다.
함께 먹는 사람이 누구인지, 점심이든 저녁이든 언제 먹더라도
나를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음식.
여러분들은 혹시 영화, 드라마, 책에서 스파게티를 먹다가
다투는 장면을 보신 적 있으신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과 스파게티를 먹는 사람도 난 본 적이 없다.
스파게티는 냄새와 외형만으로도 사람을 차분하게 해주는 좋은 음식이다.
얼마 전 SNS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소개팅 때 가장 선호하는 음식을 묻는 질문에 1위 답변이 파스타, 스파게티였다.
내가 스무 살이던 시절에도 남, 녀가 큰 비용 들이지 않고
분위기 내는 데는 그게 최고였는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존재라니, 스파게티 애호가로서 기분이 좋다.
여러분들은 스파게티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