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천루 예찬론
나는 도시를 좋아한다.
여행지를 고르더라도 휴양지보다는 도심을 선호한다.
휴양지를 가면 여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도시는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
출퇴근할 때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무엇인지,
직장인들의 아침 메뉴는 무엇이지 등등.
일상적인 아침풍경을 보면서 나의 여유로움을 더 진하게 느낀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건 도심에 우뚝 솟은 마천루들이다.
어딜 가든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전망대에 올라 경치를 즐긴다.
내가 어렸을 적, 고층건물의 상징은 여의도 63 빌딩이었다.
유치원 때도, 초등학교 때도 그곳으로 소풍을 갔다.
가족들이랑도 종종 갔었는데 전망대에 부착된 안내문에
'날씨가 좋으면 인천 앞바다까지 보인다'라고 쓰여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무척이나 놀랬다. 그 먼 곳까지 보인다니..
경이로움을 느끼며 우리 집도 보이려나 하고 막 찾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20대 초반즈음, 개포동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처음 타워팰리스를 봤던 기억도 생생하다.
당시 서울에 위치한 주거용 건물 중에서 가장 높은 높이를
기록했던 타워팰리스. 내 집 거실과 안방이 그렇게 높은 층에
위치하면 뷰가 얼마나 좋을지 상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곳의 위치가 강남이라서, 집값이 비싸고 부의 상징인 동네라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높은 건물이라서 살고 싶었다.
잠실 롯데타워 전망대에 갔을 때는 전날부터 설렜다.
엘리베이터 속도도 정말 빨랐다.
그 높은 층을 단숨에 올라가는 걸 보고
'역시 건축가들은 예술가다'라고 느꼈다.
문이 열리고 통유리를 통해 바라본 하늘,
내가 대한민국에서 하늘과 가장 맞닿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올림픽 공원은 그냥 동네 공원처럼 느껴졌고
잠실야구장은 빛이 환하게 들어온 잔디밭으로만 보였다.
거기서 먹은 아이스크림도 유난히 달콤했다.
1910년대, 20년대 외국의 사진을 보면 놀라움의 연속이다.
특히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건설 당시 노동자들을 촬영한 사진,
당시 타임스퀘어의 사진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선진국의 위엄과 동시에 인간의 위대함을 느낀다.
그때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떠올리고
지금의 서울 도심을 비교해 보면, 기적 이란 말만 나온다.
뉴욕 여행은 나의 소박한 버킷 리스트 중 하나다.
메이저리그 경기는 다른 도시에도 있고
스테이크는 텍사스도 맛있고, 예술가는 LA에도 많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가치 있고 보는 이를 압도하는 건축물들은
뉴욕에만 있다.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이용해
이 건물, 저 건물 날아다니는 도시도 뉴욕이다.
건물 높이가 낮았으면 별로였을 텐데
고층건물들이라 더 멋있는 것이다.
언젠가 뉴욕에 가서 주요 건물들의 전망대를 모두 둘러보고 싶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크라이슬러, WTC, Met Life, 트럼프 타워 등등..
흔히 사람들은 '빌딩숲'이라고 하면 삭막함, 업무에 찌든 사람들,
삶의 전쟁터 등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노래 가사에도 '빌딩숲 속을 벗어나봐요'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뭐.
하지만 난 빌딩숲을 좋아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내뿜는 꿈을 향한 열기,
그곳에서 거래되는 엄청난 양의 재화,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역동성..
이 모든 것을 사랑한다.
서울의 청계천, 뉴욕의 센트럴 파크처럼
도심에 위치한 공원이나 친환경 시설이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빌딩숲 속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희소한 가치를 갖고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이지, 평범한 도시에 위치했으면
마찬가지로 평범했거나 심하면 우범지역화 됐을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고층 건물에 오를 때마다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건축가들을 향한
진심 어린 존경심이 샘솟는다.
아무것도 없는 땅 위에 높은 건물을 구상하고 만들어 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축가들은 예술가다.
그들 손에 있는 굳은살은 영광스러운 훈장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미 수많은 땅이 개발 됐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몰려드는
수도권에서 건물의 높이가 올라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안전성이다.
아무리 높고 화려한 건축물이라도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몇 년 전, 몇몇 건설업체에서 건축 자재를 속이고
부실공사를 시행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는데
그런 점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이번생은 늦었다.
하지만 다음 생에는 꼭 이과형 두뇌를 가진
노력하는 천재로 태어나 건축을 전공하고 싶다.
그래서 역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을 만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