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투수

그들은 외롭고 힘들다

by 레지널드

야구는 포지션이 다양하다.

타자의 경우, 1번 타자에게 부여되는 역할 다르고

4번 타자에게 기대되는 결과가 다르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다 같은 투수지만

어느 시점에 나오느냐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


크게 보면 1회부터 등판해

경기 전반을 책임지는 선발투수,

경기 중반 이후에 등판하는 중간계투,

그리고 근소한 리드를 맞이한 상황에서 경기 최후반

평균 1이닝 정도를 던져 팀의 승리를

지켜내야 하는 구원투수로 나눌 수 있다.


어렸을 적, 야구를 보면 마무리 투수가 참 편해 보였다.

운 좋으면 2점이나 3점,

운 없어도 1점 차 상황에서 투입 돼,

다른 투수들에 비하면

매우 적은 이닝만 잘 막으면 끝나기 때문이다.

던지는 이닝은 선발투수에 비해 턱없이 적은데

언론의 주목은 그와 거의 비슷한 급으로 받는다.


그래서 가끔 팀의 승리를 날려버리는 블론 세이브,

시쳇말로 불 질러 버리는 마무리 투수들을 볼 때면

이해가 안 됐고 내가 응원하는 팀 투수가

그러면 내 마음에도 불이 난다.


초등학생이던 2001년,

김병현 선수가 월드시리즈에서

연속 블론 세이브

기록한 게 기억에 생생하다.

타자가 공을 친 순간, 그는 느낌이 왔는지

마운드에 쭈그려 앉았는데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그 후 지금까지 야구를 보면서 어렸을 적,

내 생각과 달리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이 결코

쉬운 보직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마무리 투수는 힘들고, 외로운 보직이다.


모 해설위원이 해설 도중,

"야구는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 없다. 마지막에 이기면 된다"

라는 명언 아닌 명언을 남겼는데

이게 참 마무리 투수 입장에서 보면

잔인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결국 마무리 투수가 승리를 지키지 못하면

과정이 어쨌든지 간에 모든 건 허사가 된다는 뜻이다.

선발투수가 아무리 잘 던지고, 타자들이 잘 치고

감독과 코치가 기가 막힌 작전을 내더라도

마무리 투수가 불을 지르는 순간 끝이다.


그의 어깨에 그 경기의 모든 희비가 엇갈린다.

공격하는 입장에서 마무리 투수 공략을 잘한다면

그간 지고 있으면서 저지른 실수나 작전 실패를

한 번에 만회할 수 있기에 그들 또한 집요하게 달려든다.


전설적인 포수 요기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특히나 마무리투수가 등판하는 상황을 보면

점수차가 크게 나지 않는 상황이기에

상대가 포기하길 바라는 건 있을 수 없다.


마무리 투수는 그 싸움을

오롯이 혼자 이겨내야 한다.

수비의 도움 같은 요행 따위는 바라면 안 된다.

내가 던진 공으로 이 경기를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던진다.

그래서 더 외롭다.


타자들은 본인이 못하더라도 다른 타자들이 있고

선발투수나 중간계투들도 못하더라도

다음 이닝을 기약할 수 있다.

하지만 마무리 투수는 다음이 없고, 대체할 선수도 없다.

타자와의 승부에 앞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끝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격언들이 많다.

우리 모두 다 안다. 그 끝이 얼마나 중요하고

제대로 된 끝마무리가 참 힘들다는 걸.


훌륭한 마무리 투수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어떤 게 있을까

우선, 강인한 정신력이라고 본다.

위기상황에 등판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강철 멘털을 소유해야 한다.

바스러지기 쉬운 유리멘털로는

좋은 끝은 고사하고 마무리 자체를 못한다.

첫 타자와의 승부에서 출루를 허용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막중한 임무를 갖고 올라온 그가

흔들리거나 힘들어하는 내색을 하면

경기장에 있는 다른 선수들도 흔들린다.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 이 상황에서 선장은

감독이 아니라 나다 라는 결연함도 있어야 한다.


야구선수가 아닌 우리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을 하든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오히려 갖춰야 할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지구력이다.


마무리투수는 경기 마지막 즈음에 투입되지만

나의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내 소관이다.

시작부터 일관되게 일에 몰두하고

그 에너지를 잃지 않아야 한다.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는 그때까지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그 지구력이 중요하다.


앞서 잠시 언급한 2001 월드시리즈 이듬해,

김병현 선수는 자신에게 큰 시련을 준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세이브를 기록하고

보란 듯이 담장너머로 공을 던져버렸다.

울분을 털어버리듯 던지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더 마무리 투수의 외로움을,

어린 나이에 받았을 그의 고통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대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