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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

by 레지널드

얼마 전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봤다.

극 중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헌트릭스의 공연장으로

잠실올림픽 주 경기장의 모습을

본뜬 건물이 등장한다. 반가웠다.


나는 해방 이후 완공된 우리나라의 건축물 중에서

잠실올림픽 주 경기장을 가장 멋있는 작품으로 꼽는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 경기장이 대번에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7호선 자양역과 청담역 사이를 지날 때

청담대교를 건너게 되는데 그때 나는 항상 주 경기장에

먼저 눈길이 간다. 특히 해가 질 때의 풍경은 참으로 멋지다.

그리고 아예 밤이 되었을 때 조명이 들어온 모습은

설레기까지 한다.


유려함과 단단함이 공존하는 외관은

70년대에 설계 됐다고 보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됨을 자랑한다.


이름 그대로 88 서울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이었으며

한강의 기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기도 한 이곳에선

서울월드컵 경기장이 개장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도 열렸다.

한일전 연패를 끊은 황선홍 선수의 발리슛과,

김도훈 선수의 골로 브라질을 처음으로 꺾었던 경기 등

한국 축구사의 굵직한 장면도 이곳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축구 경기장으로서의 기능은 상암동으로 많이 옮겨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공연장으로서의 기능과 상징성이다.


단순히 크기가 커서만은 아니다.


이곳에서 공연한다는 건 그 가수가

상당한 티켓파워가 있다는 뜻이고

국내가수라면 '국민가수'로 불려도 될 정도의 클래스라는 뜻이다.


제일 먼저 생각이 나는 건 마이클 잭슨이다.

어렸을 적이라 본 적은 없지만

나중에 유튜브를 통해 본 공연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그 수많은 인파가 뿜어내는 열기가

컴퓨터 화면을 뚫고 나오는 기분이었고

가장 백미는 한 관객이 잭슨이 타고 있는 무대 장치에 올라탄 일이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 속에서도 의연하게 노래를 부르는

잭슨의 모습에서 '정말 신(神)인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마이클 잭슨뿐 아니라 웬만한 급이 있는

외국가수들은 전부 여기서 공연했다.

엘튼존, 메탈리카, 레이디 가가, 콜드플레이, 폴 매카트니 등등..

그중 폴 매카트니의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이 거의 한 풀이하듯이

'Hey Jude'를 불렀던 장면은 전율이라는 말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다.

영국의 웸블리 스타디움과 정확히 포지션이 일치하다고 본다.


그리고, H.O.T.

잭슨과 마찬가지로 직접 보진 않았으나

당시만 해도 각 방송사별로 하나씩 방송되던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본

하얀색 풍선의 물결은 실로 장관이었다.

9시 뉴스와 신문에도 당연히 보도 됐다.

바로 국내가수 최초였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경기장임에도 개장 이후 15년도 더 지나서야

한국 가수의 단독 공연이 치러졌다는 점에서

이 경기장의 콧대가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이 간다.

H.O.T 공연의 성공 이후 조용필, 이승철, 이문세 등

국내 가수들의 콘서트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가수 나훈아 씨가 한 번도 이곳에서

공연을 하지 않은 게 의외다.

공연했다면 아마 주 경기장 공연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을 텐데.


이렇게 대한민국의 스포츠 사(史), 대중문화와 공연계에

큰 족적을 남긴 올림픽 주 경기장이 지금은 리모델링 중에 있다.

40년 가까이 변변한 보수 공사 하나 없었음에도

잘 버텨줘서 고맙고 동대문 운동장처럼

아예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새로 개장한 경기장에선 과연 어떤 경기들이 펼쳐지고

어떤 가수가 가장 먼저 공연할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잠실올림픽 주 경기장이라는 이름답게

올림픽이 한번 더 개최됐으면 한다.

88 서울 올림픽 이후에 태어난 나는, 어른들에게

그 당시 이야기를 들으면 괜스레 마음 한편이 설레어진다.

월드컵은 생생히 기억나고, 내가 겪어봤지만

올림픽은 그렇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대한민국, 그리고 서울의 위상이 40여 년 전보다는 훨씬

업그레이드 됐기 때문에 조그만 희망을 품어봐도 되지 않을까.


리모델링이 끝난 이후에도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어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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