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프라이어 사용하시나요?

by 레지널드

몇 년 전이었다.

엄마가 느닷없이 에어프라이어를 구입하자고 했다.

엄마의 소비 및 사용 패턴을 잘 아는 나로서는

얼마 안 있다가 창고로 사라질 그 물건을 구입하는 것에 반대했다.

하지만 엄마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에어프라이어가 우리 집 주방 한편을 차지하게 됐다.


구매 초기, 엄마는 열렬한 에어프라이어 예찬론자였다.

'치킨 시켜 먹고 남은 거 데워 먹기엔 이게 최고다,

이거 봐봐 기름 쫙 빠진 거. 이거 우리가 먹는다고 생각해 봐'


하지만 엄마는 언제부턴가 설거지하기가 까다롭다는 말을 하시면서

치킨 남은 걸 덥혀줄 때 다시 프라이팬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홈쇼핑에서 나오는 에어프라이어 활용 요리는 그냥

요리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걸로 보였고,

나는 앞으로 살면서 에어프라이어를 쓸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두고 또 한 번 에어프라이어와 만나게 됐다.

가전제품 구매 목록을 작성하면서 다른 건 전혀 이견이 없었지만

이 에어 프라이어는 의견 대립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사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어차피 얼마 안 있다가 쓰지 않을 것이다, 자리만 차지한다'

아내는 '있는데 왜 안 쓰겠냐. 우리는 자주 쓸 거다'라고 주장했다.

나에게 이미 많은 양보를 해줬기에 그냥 내가 한발 물러섰고

고맙게도 내 지인이 신혼 선물로 장만해 줬다.


에어프라이어가 도착한 후 맞이 한 첫 주말.

아내는 통삼겹 구이를 해줬다.

불판에 구워 먹는 것과 달리 연기도 덜나고 간편해서 좋았다.

잘 먹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뿌듯해했고

나는 속으로 '그 마음이 언제까지 가나 보자' 했다.


내 조롱 섞인 예상과는 달리 아내는 나에게 꾸준히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한 요리를 해줬다.

바스크 치즈케이크, 누네띠네, 생선구이, 군고구마 등등.

(엄마도 생선과 고구마는 해준 적 있었다)


그중 누네띠네가 기억에 남는다.

사실 그 직전에 했던 치즈케이크가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어서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누네띠네는 정말 대성공이었다.

베이커리에서 파는 것과 매우 흡사한 맛이 났다.

누네띠네가 부풀어 오르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신기한 경험은 덤이었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에어프라이어의 제일 큰 장점은

튀김류 음식을 다시 재가공할 때,

원래 상태에 가장 근접하게 만들어 놓는다는 점이다.

눅눅한 튀김과 전은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면

금세 바삭바삭해진다.


또 다른 장점은 냄새가 현저하게 덜 난다는 점.

이건 생선요리를 할 때 여실히 느꼈다.


물론, 엄마가 지적했던 것처럼 설거지하기가

조금 번거롭고 귀찮은 건 사실이다.

아무리 포일을 깔고 조리를 해도 기름이 새어 나오고

이 기름은 곳곳에 묻는다. 한번 사용하면

망, 본체 통까지 설거지해야 하는데 이게 부피가

여간 큰 게 아니다.


그러나 에어프라이어를 통해 만들 수 있는 요리,

재생시킬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한 요리법'을 보고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저장해 놓는 게 습관이 됐다.


자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단점도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설거지하기가 굉장히 번거로운 점 말고도

기기의 크기에 비해 조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작은 점도

아쉬운 점이다. 그래서 '쓸데없이 자리만 많이 차지한다'라는

몇몇 소비자들의 의견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


그래도 에어프라이어가 일반 가정에서 널리 쓰인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이제는 발전할 일만 남았다.

특히, 내 주변에서는 혼자 살고 있음에도 에어프라이어를

구매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1인가구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이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조리 공간은 그대로 지만, 그 외의 불필요한 공간은

줄어들며 좀 더 콤팩트하게 제품이 출시될 것이다.

아울러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하면 맛있는 제품들,

예를 들면 냉동식품, 즉석식품들이 다양화될 것이고

전자레인지 못지않게 높은 보급률을 기록할 날도

올 것이라 생각한다.


내 소비철학은

'있어서 좋은 것과 있어야 하는 것은 다르다. 있어야 하는 걸 구매하자'

였다. 그런 나의 생각을 조금 바꾼 게 바로 이 에어 프라이어다.

에어프라이어는 말 그대로 나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제품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내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앞으로 이 에어프라이어를 꾸준히 사용할 것이다.


살찔 걱정 안 하냐고? 까짓 거 운동 더 하면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광화문 광장은 만남의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