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신자도 아닌 내가 절에 가는 이유
(특정 종교를 찬양하는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다.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절에 가본 경험이라곤
논산훈련소에 있을 때 가본 것 빼곤 전무하다.
당시 논산훈련소에 위치한 절은 '불교 나이트'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핫한 곳이었어서 마지막주에는 가위바위보까지 할 정도였다.
훈련소를 마치고 나서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템플스테이에 관심을 갖은 적이 있긴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우연히 절에 발을 내디딘 건 딱 서른 살이 되었을 때였다.
코엑스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나와 청담역까지 걸어가려고 했는데
불교 신자인 여자친구(현재 아내)가 봉은사에 가자고 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 내키진 않았으나
워낙에 유명한 절이기도 해서 한번 방문했다.
입구에 있는 불상이 나를 무섭게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여자친구는 "지은 죄가 많아서 그렇게 느끼나 보다"라고 웃으며
놀렸지만 뭔가 분위기에 압도당한 건 사실이었다.
대체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소리는 어디서 나온 건가
싶었던 그때, 수많은 신자들이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향 냄새, 불경 읊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 간절함이 가득한 신자들의 모습에
어색하고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저녁에 와서 그런지 곳곳에 밝혀진 등이 무척이나 이뻤다.
그러고 나서 얼마뒤, 이번엔 내가 먼저 절에 가자고 했다.
지난번엔 밤에 갔으니 이번엔 낮에 가보고 싶어졌다.
서울 시내 중심에 위치한 조계사를 찾았다.
조계사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신자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 오신 스님들도 많았다.
불전은 이미 꽉 차있어서 조계사 측에선 야외에
수많은 의자들도 설치해 놨고 우린 거기에 앉아있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향에 취해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너무나 불경스럽게도 잠이 들어버렸다.
실내도 아닌 야외에서, 사람들도 많은 종교시설에서
졸아버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내 주변 불교신자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게 뭐? 원래 부처님은 본인한테 온 사람들 다 품어주셔"
평소 그 답지 않게 그런 온화한 말을 해서 놀랐다.
그 후 나는 가끔씩 여자친구와 절을 찾았다.
봉은사와 이름이 비슷한 봉원사를 갔을 때도 기억이 난다.
산속에 위치한 그 절은 정말 자연 친화적이었다.
서대문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간, 분명 서울에 있는
절이지만 외곽으로 나들이 나온 기분이었다.
봉원사, 봉은사 두 절 모두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봄에는 푸르른 잎이 솟아나고 개나리를 비롯한 각종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우리를 맞이해 준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도 영화사, 기원정사라는 두 곳의 절이 있는데
이곳도 요즘 SNS에서 꽤 유명하다고 한다.
등산 초보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아차산에 위치해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도 오고 가다 한 번씩 들른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곳은 봄에 오시는 걸 추천드린다.
절 길을 따라 정처 없이 걷다 보면 광장동도 나오고
다른 방향으로 가면 어린이대공원도 나오는데 가는 길목마다 핀
벚꽃이 여의도, 석촌호수 급으로 이쁘다.
도쿄 여행을 갔다가 방문한 절도 기억에 남는다.
유명 수산시장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오던 중
궁궐같이 크고, 한눈에 봐도 유서 깊은 건물이 있어서 한번 들어가 봤다.
박물관인 줄 알고 들어간 그곳은 절이었다.
신기해서 이곳저곳을 살펴봤는데, 우리나라의 절과는
많이 달랐다. 우리의 절이 말 그대로 절이라면
일본의 절은 건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혼식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절에서의 결혼은 처음 본 거라 생경했다.
절을 방문하고 오면 잠자리에 들 때 마음이 가볍다.
신나는 노래와 함께 스트레스를 풀어준 논산의 '불교 나이트',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마음의 평안을 선사해 준
봉은사와 조계사, 소풍 나온 기분을 안겨준 봉원사 까지.
감사하게도 나는 모든 절에서 좋은 추억을 새겼다.
신자도 아니면서 기도를 드리는 건 왠지 마음이 걸려서
기도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뭔가 개운하다.
착해진 기분이 들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선행을 베풀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자비와 인자함을 기대하기보단
내가 남에게 먼저 행하는 게 마음 편하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 봉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