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은 만남의 광장

과거와 현재,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 어우러지는 진정한 만남의 광장

by 레지널드

봄, 가을이면 나는 광화문에 종종 간다.

광화문에 위치한 대형 서점에서 책도 잠깐 구경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바뀌는 그 서점의 걸개그림 및 문구도 감상한다.


'아, 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길래 저렇게 멋진 표현이 등장할까?'


늘 같은 감탄을 내뱉게 만드는 훌륭한 문장들이다.


어딜 가나 카페는 만석이다. 그래서 구경도 할 겸, 자리가 있는 카페를 찾아다닌다.

운 좋게 들어간 카페에서는 커피 한잔과 함께 저녁은 어디서 뭘 먹을지

의논한다. 그리고 아까 본 책 목록들을 주제로 대화도 나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카페에서 나와 다시 한번 광화문 광장을 바라본다.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 멀리 뒤로 보이는 경복궁을 바라보며

조선시대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졌고

(실제로 본 적 없지만) 그 조선의 맥을 끊어놓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상상해 본다.

조금만 더 뒤로 가면 현대사의 상징과도 같은 청와대 건물이 보인다.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건축물들을 한자리에서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이곳에선 몇백 년에 걸친 역사를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스포츠와 문화에서도 광화문 광장의 역할은 꽤나 중요하다.

서울에서 펼쳐지는 권위 있는 마라톤 대회의 거의 대부분의

출발지 역할을 하는 곳이 이곳이며 아울러

자연재해, 테러 등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곳이

바로 이곳 광화문 광장이다.


이렇게 광화문광장은 시간을 초월한 상념에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광장을 둘러보면 참으로 색다르게 다가온다.


일단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커플, 친구, 가족 단위, 그리고

혼자 차를 마시며 핸드폰을 보는 사람 등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건 바로 급증한 외국인들.

이 점은 정말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외국인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 바로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많아졌고, 그래서 그다지 특별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다양한 인종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걸 보니

서울도 정말 국제적인 도시가 됐구나 싶다.


그렇게 광화문의 정취를 느끼고 있는 순간, 그 평안함을

깨트리는 날카롭고 시끄러운 기계음이 들린다.

가사도 잘 안 들리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건 덤.

무슨 소리인가 하고 쳐다보니 큼지막한 현수막과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안타깝게도 광화문 광장은 언제부턴가 시위, 집회의 메카가 되었다.

부끄럽게도 이러한 모습을 보러 일부러 시위에 맞춰 오는 외국인들도 있다고 한다.


한주는 진보단체, 또 한주는 보수단체가 시위를 벌인다.

어떨 때는 양 단체가 한데 섞이는, 이른바 '맞불 집회'가 열릴 때도 있는데

정말 '혼돈의 카오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광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앰프 소리에 얼른 자리를 피한다.

진보, 보수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한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내뱉고,

사실확인 조차 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사실인 양 마이크를 통해 전파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오른다.


서로에게 폭언과 폭력을 내뱉는 그들이 어쨌든 광화문 광장에 모인 것은 사실이다.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저들을 한데 묶은 광화문 광장은 진정한 만남의 광장이다.


어렸을 적, 월드컵 때 광화문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를 바라보며

젊음과 열정을 동경했고

광화문 연가라는 노래를 통해 낭만과 그리움에 대해 생각해 봤다.

광장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식당과 술집에서

샐러리맨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애환과 함께

대한민국 중심지는 이곳이구나 라는

생각까지 심어준 광화문 광장.

나는 이곳이 참 좋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노인들은 산책을 즐기고,

젊은 남녀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로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의 낭만과 정적을 깨트리는 소음은 더 이상 없어야 하고

관광객들이 찍은 기념사진에 깃발과 현수막 또한 등장해선 안된다.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등장했으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깊어지게 하는

광화문 광장.


날씨가 조금 선선해지고 가을이 찾아오면

난 언제나처럼 또 광화문을 갈 것이다.

책도 보고, 차도 마시고,

정처 없이 이곳저곳 다 걸어 다닐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들러 전시도 볼 것이며

좀 더 가서 청계천 물소리도 들을 것이다.


우리 모두 광화문 광장을 조금 더 아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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