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찔이들도 떡볶이를 싫어하진 않는다
나는 매운걸 잘 못 먹는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불닭볶음면은
살면서 한입 먹어본 게 전부이며
닭발을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에서는
주먹밥만 연신 먹는다.
오징어 볶음, 낙지볶음은 향만 맡아도 땀이 난다.
신기한 건 매운걸 안 먹다 보니 점점 더 못 먹게 된다.
예전에는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진짬뽕 정도는 먹었는데
이제는 그 정도도 힘들다.
TV에서 음식이 나오면 갑자기 그게 먹고 싶어 지지만
나에게 있어서 매운 음식은 예외다.
감흥이 하나도 없고, 외려 그 매운 음식을 저렇게 잘 먹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뿐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가끔씩 유혹에 빠트리는 음식이 있다.
바로 떡볶이.
먹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엄청 매운 수준이 아닌 이상, 땀을 흘려가면서라도 먹는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 앞에 분식점이 있었는데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겠지만 거긴 정말 장사가 잘됐다.
여유 있게 먹으려면 수업이 끝난 직후가 아닌
축구한판 하고 갔어야 했고
방학 때 그곳에 가면 같은 반 친구들도 가끔 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떡볶이 집이 지금 내 입맛에 딱 맞는 수준이었다.
초등학생일 땐 분명 1인분에 천 원이었는데
중학생이 되니까 2천 원이 돼버렸다.
그 당시 나와 내 친구들은 크게 상심했다.
중간단계인 1500원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배가 되었는지..
그래서 한동안은 긴 종이컵에 담긴,
가격이 조금은 저렴한 컵떡볶이를 사 먹었던 때도 있었다.
가끔씩 엄마가 집에서 해주실 때도 있었는데
엄마는 항상 쌀떡을 사용했다.
밀떡이냐 쌀떡이냐의 논쟁은 엄마에겐 통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밀떡은 몸에 안 좋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집에서 떡볶이를 먹으면 좋은 점은
결국엔 라볶이 엔딩으로 간다는 점이다.
국물이 자작자작한 상태에서
라면과 물을 조금 더 넣고 끓이면 정말 맛있었다.
삶은 계란을 으깨서 비벼먹으면 금상첨화였고.
내가 느낀 요즘 떡볶이 트렌드는
매우 자극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학교 앞 분식점에서 파는 떡볶이도 맵다.
나 같은 사람은 설자리가 없는 건가 싶어진다.
반전은 그래서 떡볶이 집들을 예전보다 더, 자주 다닌다.
안 맵고 맛있는 떡볶이 집을 찾기 위해서
처음 보는 떡볶이 집이 있으면
일단 1인분을 주문해서 먹어본다.
함께 먹는 일행이 먼저 먹어보고 '여기 너무 달아'라고 하면
마음 놓고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만의 떡볶이 지도도 만들었다.
당연하겠지만, 떡볶이 애호가들이
선정한 식당들과 단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
그래서 한편으론
요즘 추세와 역행하는 그 떡볶이 집들이
장사가 안되어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이 고민을 들은 자칭 떡볶이 전문가인 내 주변 지인이
유명 프랜차이즈의 '국물떡볶이-순한 맛'을 권해줬다.
맵지 않고 맛있어서 좋았지만
카레향이 너무 진하게 나서 여기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놨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매워야 잘 팔리는 추세 속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떡볶이들이 만들어지는 것 또한 트렌드라는 점이다.
예전부터 있었던 기름 떡볶이,
학창 시절 급식 메뉴로도 자주 나온 간장 떡볶이,
애슐리에 가면 항상 있는 까르보나라 떡볶이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떡볶이들이 있다.
특히 로제 떡볶이를 처음 먹어봤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적절하게 느껴지는 매콤함,
그리고 고소하면서도 기분 좋은 느끼함이 남는 그 맛.
정말 맛있었다. 확 떴다가, 확 사라지는 게 유행이라지만
로제 떡볶이만큼은 오랫동안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나는 매운걸 못 먹는데 연인, 친구들, 가족 중 누군가가 떡볶이를 너무 좋아해서 고민'
이신 분들에게 또 하나 추천 드릴 게 있다.
바로 즉석 떡볶이.
즉석 떡볶이의 성지 신당동도 그렇고,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즉석 떡볶이집 몇 군데를
가본 결과 그다지 맵지 않았다.
'이 정도는 나도 먹을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맵냐 안 맵냐를 떠나서 맛이 있다.
그래서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즉석 떡볶이 집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떡볶이 안에 들어가는 재료도
취향껏 직접 골라 담을 수 있는 형태의 식당들도 생겨나면서
매운맛에 한정된 게 아닌
각자 스타일에 맞는 떡볶이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매운 음식이라면 진저리부터 치는 나조차도
가끔씩 생각나게 하는 마성의 음식 떡볶이.
다이어트의 가장 큰 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칼로리도 높고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먹으면 건강에도 치명적이겠지만
사실 매일마다 이 음식을 먹는 게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떡볶이를 이렇게 사랑하는 건
불현듯 찾아오는 강한 충동,
그리고 추억이 많이 묻은 음식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조만간 나만의 떡볶이 지도 속 가게 중 한 곳에서 사 먹어야겠다.
글을 쓰면서 너무 먹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