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40도의 여름도, 영하 27도의 겨울도 다 추억이었다
나는 강원도 양구에서 군생활을 했다.
입대하기 전 알고 있던 양구에 관한 정보는
워낙에 오지라서 공기가 깨끗하다는 점,
그리고 군인들에 의해 돌아가는 동네라는 점뿐이었다.
나에게 이 정보를 말해준 사람은 양구 날씨의 무서움도 이야기해 줬다.
여름엔 찜통이요, 겨울엔 아무리 껴입어도 춥다고 하면서 말이다.
자대 배치 발표 전날,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순진한 생각
(집 근처 육군사관학교에나 배치됐으면 좋겠다)을 했지만
현실은 양구였다.
양구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이등병이라는 내 신분은 너무 무거웠다.
몇 달 뒤, 군대도 사람이 살만한 곳이구나 라는걸 슬슬 깨닫고 몸이 적응될
무렵부터 내 눈에는 양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 글에서는 강릉, 속초, 양양보다 내가 더 사랑하는 양구를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우선 양구군의 어디를 가나 마주할 수 있는 슬로건부터 말씀드리면
'국토정중앙 양구'다. 한반도의 위성지도를 보면 강원도 양구가
딱 중앙이라고 해서 그런 슬로건을 붙였다고 한다.
사람 심리가 참 묘한 것이, 별것도 아닌 그 슬로건을 보면서
'한반도 중앙에서 군 복무를 하는구나'라는 자부심을 느꼈다는 점이다.
양구군민들도 그 점에 굉장한 애향심을 갖고 산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수근 화백의 고향인 양구에는
그를 기념하는 박수근 미술관도 있다.
그곳에서는 박 화백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여러 작품들이 상시 전시 되어있으니
미술사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방문해 보시길 권해드린다.
관광코스라고 하기엔 뭐 하지만 역사적인 장소도 있다.
지리적 위치가 북한과 워낙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양구 제4 땅굴'이란 곳이 있다.
이곳은 북한이 간첩을 보내거나 전쟁 시 침투에 용이하기 위해
파놓은 땅굴이다. 이 지역 학생들은 물론 병사들의 안보견학이 주로
이루어진다. 양구는 군(軍)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역이다.
양구의 특산품 중에서 나는 곰취를 가장 추천드린다.
어딜 가나 곰취 밭이 많고 축제 또한 아주 성대하게 펼쳐진다.
특히 곰취찐빵이 별미다. 곰취향도 일품이지만 식감 또한
일반 호빵보다 훌륭했다.
젊은 사람들이라곤 군인들 밖에 없고
공장이나 기업체도 없다 보니
양구는 아직까지
좋은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나에게 양구에 대해 처음 알려준 사람이 말한 것처럼
공기는 정말 깨끗하고 상쾌하다.
이건 나 또한 확실히 체감했다.
휴가 때 동서울터미널에서 내리면 탁한 공기가 대번에 느껴진다.
터미널이라서가 아니다. 서울에서 제 아무리 잘 조성돼 있다는
공원에 가더라도 양구 시내 보다 대기질이 좋지 않다.
환경이 좋다 보니 야생동물들도 아직 건재하다.
먼발치에서나마 멧돼지 무리도 보았고,
고라니는 3일 연속으로 본 적도 있다.
수박밭에서 수박을 먹고 있는 너구리를 봤을 땐
롯데월드가 떠올랐다.
날개를 펼치면 길이가 족히 1m는 될 것 같은 엄청난 크기의
까마귀도 있고, 무섭게 원을 그리며 민가 위를 날아다니는
독수리도 봤었다.
물론 그곳에 사는 분들은 상황이 다르겠지만
잠시 있었던 나로서는 동물들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방향으로 유지되었으면 한다.
만약 양구에 놀러 가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가을에 가시는 걸 추천드린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단풍이 정말 이쁘다.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공기가 깨끗하다 보니 수도권 보다 훨씬 푸르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건 당연하다.
그곳에서 보낸 첫 추석 때 부대원들과 같이 뒷산에 올라 낮잠을 잤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가을 햇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뱀에 안 물린 게 다행이다.
5월에도 눈이 내리고, 한 여름엔 40도까지 오르고
겨울엔 영하 27도까지 목격했었다.(부대 온도계 기준)
이렇게 다이내믹한 자연을 품고 있는 강원도 양구.
특출 난 무언가가 있거나 관광 코스가 개발돼 있거나 하지 않아서
관광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고장을 좋아한다.
다이내믹한 자연처럼, 뭔가 양구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을만한
다이내믹한 변화가 일어났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너무나도 악명 높은 양구의 바가지 문화부터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