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소중한 내 역사

과거의 일기를 보며 추억에 잠긴다.

by 레지널드

난 일기를 쓴다.

초등학교 때 숙제용으로 썼던 일기는 모든 일과가 끝나고

하루를 복기하며 썼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틈틈이 쓴다.


일기를 틈틈이 쓴다고 하면 의아하시겠지만

늦은 저녁에 꺼내어보는 아침의 기억은 미묘하게 왜곡된다.

그래서 나는 일기에 쓸만한 일, 혹은 감정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바로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부터 해둔다.


그러고 나서 잠들기 전, 글을 가다듬는다.

오랜 시간 동안 써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과거에 썼던 일기를 보면

재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 일기장이야 말로 감독, 연출, 주연 모두 나 자신이니까

재미있을 수밖에.


일을 멋지게 해냈던 날, 오랫동안 꿈꿔왔던 여행지에 간 날,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날의 일기를 보면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화가 많이 났거나 슬펐던 날의 일기도 의외로 찾아 읽게 된다.

굳이 안 좋았던 감정을 끄집어내는 이유는

답습하지 않기 위함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갖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나도 우연히 그날의 기록을 마주하면 처음엔 주먹이 쥐어지고

몸이 뜨거워졌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요, 어떻게 되돌리지도 못하는 그날의 사건과 행동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배우고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반성을 통한

'재발방지'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다시금 마주한다.


섣불리 내뱉은 말에 후회한 날,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음에도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버렸던 그날 등등..


작년 여름에 호되게 아팠었다.

그때의 투병일지를 보면 지금도 그 기억에 소름이 돋고

온 신경이 아팠던 곳으로 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일기를 종종 보는 이유는

건강관리를 잘해야겠다는 다짐, 그리고

다 큰 남자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아팠던 그 와중에 생각났던

소중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아는 사람은 일기에다가 나쁜 기억과 사건은 적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 보더라도 좋았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기고 싶어서 그런다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고, 공감도 된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고

앞으로의 미래도 결정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부끄럽고 좋지 않은 사건과도 마주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은

국가나 민족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해당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힘들었던 그 일기 속 주인공도

나 자신이다. 그 주인공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도

오직 나뿐이고.


나는 일, 관계 등으로 인해 좌절했던 일기를 보며

진정으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네가 판단하기에 가장 최선의 선택을 했었을 거야. 그러니 자책 말고

다음에 안 그러면 돼'

이렇게 나 자신을 다독여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안을 받는다.


참으로 다행인 건 그래도 일기장을 보면 재밌고 행복했던 날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는 점이다.

행복했던 날들의 일기를 보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엔도르핀이 치솟을 때도 있다.

유명한 노래가사 '산다는 건 좋은 거지'가 떠오를 정도로

긍정적인 생각들이 뻗어나간다.


앞으로 나의 일기장엔 이런 날들이 더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기분 안 좋은 날도 있겠지만 어쩌겠나,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게 삶이라는데.


혹시 일기를 쓰지 않고 계신다면 당장 오늘부터라도 일기를 써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가장 진실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일기장에 쓰는 글은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오로지

나만 보는 글이니까.


그래서, 나는 일기를 죽을 때까지 쓸 것이다.


갑자기 본가에 있는 내 어린 시절 일기장이 생각난다.

초등학생의 시선에서 바라본 가장 큰 고민이 뭐였을까,

지금이랑 시대상이 어떻게 달랐을까,

언제 한번 가서 싹 챙겨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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