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의 교체, 느낌이 묘하다
며칠 전, 휴대폰을 새로 구입했다.
기존 휴대폰을 5년 정도 사용했는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나와 통화할 때 잘 안 들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용량도 많이 부족하고, 오래 쓰기도 했어서
교체하기로 마음먹고 판매점에 들어갔다.
어떤 기종을 살지는 미리 정해놓고 왔기에
구입 자체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제 기존 휴대폰에 있던 사진과 파일들을 새 휴대폰으로
옮길 차례. 케이스를 벗기고 새 휴대폰과 나란히 놓았다.
진행과정이 화면에 표시되는데
예상 소요시간이 44분으로 나왔다.
'옮길게 그렇게 많은가?' 했지만
지난 5년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쭉 돌이켜보니
그 정도 시간은 걸리는 게 당연하단 생각이 든다.
지갑을 깜빡하고 집에서 나온 적은 있어도
휴대폰을 놓고 나온 적은 없었다.
그만큼 이 휴대폰은 내 곁에 항상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2020년 여름, 그때도 4년 만에 교체한 휴대폰이었는데
이 친구와는 1년 더 함께 했다.
늘 사람으로 가득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5명만 바이킹을 탔던, 지금으론 상상하기 힘든
놀이공원의 풍경도 찍었고
운 좋게 만난 유명인사들과 사진도 많이 찍었다.
폭우로 인해 동부간선도로가 사라진
중랑천의 풍경을 찍으며
자연의 무서움을 느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조카를 처음으로 안았을 때 찍은 순간
또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어릴 적부터 위시 리스트였던
'도쿄돔에서 야구 보기'를 이뤘던 순간도,
로마의 콜로세움, 스위스의 알프스도
이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웨딩드레스 입은 아내의 모습도,
턱시도를 입은 어색한 내 모습도 담겨있다.
신혼집에서 처음 먹었던
저녁 메뉴를 찍었을 때의 그 기분 좋은 설렘,
내 짐이 전부 빠진 본가의 방을 찍을 때 느낀,
표현하기 힘든 그 감정도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이 휴대폰을 쓰고 나서 들인 습관 중에 하나가 바로 메모다.
전에는 필기구를 이용해 메모를 했는데 편리성 때문에
휴대폰으로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전보다 더 많은 메모를
하게 됐는데 그 메모하던 순간도 생각났다.
기뻤던 순간을 생생히 기록했고 나중에 그 메모를 다시 보며
그때의 감정을 다시금 느끼곤 했다.
나의 잘못으로 인해 내가, 그리고 남이 받았던 상처,
거기에 수반되는 뼈저린 반성과 후회가
가감 없이 담긴 메모들도 생각이 났다.
지난 5년 2개월, 이 조그마한 휴대폰은
내 가족들도 모르는 나의 모든 감정을 함께 나눴다.
휴대폰과 관련된 생각들이 차츰 가라앉자 이제는
'그동안 나는 얼마나 발전했는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아졌다.
소중한 사람도 많아졌고 우선시해야 하는
가치들도 정립 됐으며
하고 싶은 것 또한 많아지고 명확해졌다.
데이터 정리 작업이 다 끝났다.
새 휴대폰과 나란히 누워있는 구 휴대폰을 바라보니
'원래 이렇게 작았나?' 싶다.
오래 쓰고 싶어서 여러 가지 관리도 해줬다.
매일 아침 한 시간 이상씩은 전원을 끔으로써
휴식을 취하게 해 줬고
아무리 방수기능이 뛰어나다지만
물 근처에는 결코 가져가지 않았으며
'화장실 변기보다 더럽다'는 오명에서 제외시켜 주기 위해
주기적으로 알코올 소독도 해줬다.
관리 잘해줬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이렇게
비교해서 보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집에 돌아와, 마지막으로 지난 5년간 나와 함께 하면서
한 번도 고장 안나준 휴대폰에 고마움을 표하며
전에 쓰던 폰들을 모아놓은 서랍장에 넣었다.
새로 산 휴대폰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최소 3,4년은 쓸 것이다.
그 기간 동안에도 휴대폰은 늘 내 곁에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이나 글로 기록할 것이다.
부디 좋은 일들, 좋은 풍경들,
좋은 사람들로만 용량이 채워졌으면 한다.
어떤 사람들이 연락처에 추가될지도 기대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아직은 새 휴대폰의
그립감이 낯설기만 하다.
새것이 주는 설렘보다 옛것을 보내는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온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