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도 불이 켜진 가게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니 새벽 1시가 다됐다.
나와 아내는 심야 공항버스를 이용해 집에 가기로 했다.
서울 시내를 다니는 심야버스는 본 적이 있지만
공항에서도 이렇게 심야버스를 운영하는지는 몰랐다. 참 좋은 제도다.
그렇게 버스는 공항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서울시내로 향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홍대입구. 젊음의 상징이다.
나도 20대 때, 몇 번가 봤지만 사람이 너무 많고 번잡스러워서 싫었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홍대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더라.
꽤 늦은 시간임에도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휴일 새벽시간임을 감안해도 내 기준으론 많아 보였다.
그다음 정류장은 광화문이었다. 홍대와 달리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대형 전광판을 통해 광고는 계속 나오고 있었다.
새벽 시간, 그 광고를 볼 사람이 없음에도 왜 그렇게 전력은 낭비되는 걸까?
런던과 도쿄보다 서울의 전력사용량이 더 많다고
지적했던 몇 년 전 뉴스가 떠올랐다.
다음 정류장은 동대문. 이곳이 가장 의외였다.
홍대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홍대는 젊은 남녀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곳은 남녀노소, 국적 불문이었다.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거리에 늘어선 포장마차들 또한 활기가 넘쳐 보였으며
이제 서울도 홍콩 같은 도시가 됐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벽 2시 30분 즈음, 버스는 종로일대를 돌아다녔다.
몇 년 전부터 큰 인기를 끌면서 하나의 문화가 된
야장 거리를 지날 때는 약간 과장해서 문화 쇼크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 시간에도 술을 마시며 음악을 크게 틀고 놀다니.. 대단하다.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저들이 신기했다.
나는 20대 때도 12시를 넘겨서 술마신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 경험상 들어간 술의 양 보다 중요한 건 시간대라고 본다.
술을 적게 마시든 많이 마시든 사람들이 이상하게
자정만 넘기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행동이 거칠어진다.
그날 내가 본 풍경도 내 경험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고개를 돌리니 조금은 다른 광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24시간 영업합니다'라는 푯말이 달린 김밥집이었다.
그곳은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었다.
한쪽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고성방가를 하고 있고
한쪽에선 직원이 TV만 바라보고 있다.
'저런 상황이면 차라리 영업을 하지 않는 게 낫지 않나? 전기세 라도 아껴야지..'
괜한 오지랖을 부려본다.
버스는 이윽고 종점인 청량리역에 도 다다랐다.
홍대와 동대문, 종로와는 다르게 여기는 차분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집까지 갈 택시를 호출했다.
택시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도
그 시각까지 영업하는 식당들이 많았다.
국밥집과 치킨집, 샌드위치 가게, 분식집 등 종류도 다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손님은 없었다.
이렇게 손님이 없음에도 장사를 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쟁이인 나로서는 자영업자들의 마음을 백 프로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이유를 추론해 본다면 절박함이 아닐까 한다.
먹고살기 힘든 요즘, 사람들이 지갑을 닫았다는 뉴스를 많이 접했다.
그리고 내가 자주 이용하는 미용실 사장님도
요즘이 코로나 시절 보다 더 힘들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단 한 명의 손님이라도 잡고 싶은
사장님들의 절박함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내가 일한 만큼 벌어가는 사업자, 그리고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줘야 하는 사람은 늘
부지런해야 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모두 잠든 새벽, 피곤함과 놀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문을 연 사장님들의 마음은 아마 그런 것 일 것이다.
연휴가 끝나고 나서는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당 말고 불 켜진 곳은 어디 있나 한번 고개를 돌려봤다.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헬스장.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띈다.
그 사람은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새벽 2시에 운동을 하는 걸까?
밤늦게 까지 일하고 퇴근하면서 운동을 하는 걸까
아니면 잠이 오질 않아서 운동을 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연휴에 사람들 만나느라
운동 시간을 놓친 프로 운동러인걸까.
어느 쪽이든 정말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에 했던 '열심히 살자'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내가 잠든 시각에도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