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결코 나를 이길 수 없다

가끔은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어떻게 알겠어

by 레지널드

AI 시대에는 글쓰기가 쉽다고 한다.

하긴 주제를 던져주고 그와 관련된 글을 써달라고 하면

10초도 안되어 장문의 글이 나오는 세상이니 쉽긴 하지.


얼마 전 신문에는 1년에 9천 권 넘는 책을 찍어내는

한 출판사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AI로 책을 만들어 내는 이 출판사가

'책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나는 아직 책을 내보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들과 학자들이 책 한 권을 출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구를 하는지는 잘 안다.

그래서인지 과연 AI가 쓴 책이 사람이 쓴 책 보다 나을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AI 예찬론자'들이 참 많다.

Chat GPT가 상용화되고 나서부터는 더욱 그런 사람들이 늘어났다.

나도 가끔 궁금한 게 있거나 업무적으로 찾아볼 게 있으면 이용한다.

그러나 그건 언제까지나 정보와 전문지식에 한해서다.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나는 AI의 도움을 받지 않고 글을 써왔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도움을 받지 않고 글을 쓸 것이다.


글쓰기에 있어서는 내가 그것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나온 그런 자신감이냐고?


내 글에는 내 추억이, 내 감정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해마다 가을에 올림픽 공원을 찾는다.

올림픽 공원을 다녀와서의 내 감정을

글로 쓴다고 가정했을 때 AI가 쓴 글과

내가 쓴 글은 전혀 다른 글이 될 것이다.


명령어로

"가을에 올림픽 공원 다녀온 감정을 멋있게, 2000자 내외로 써줘"

하면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더 다양한 어휘를 써가면서

글을 한편 뽑아낼 것이다.


나는 그와 반대로 속도도 느리고,

쓰는 단어도 고급짐과는 좀 거리가 멀 것이다.

그래도 내 글이 더 나은 이유는 바로 독특함 때문이다.


AI는 가을의 정경, 단풍의 아름다움,

올림픽공원에 얽힌 사람들의 글들을 전부 취합해서 쓸 것이다.


하지만 내 글은? 그 어디에도 없는 글이다.

오로지 내 감정만이 담겨있다.


"2008년 11월, 빌리조엘의 첫 내한공연이 있던 날. 공연 시간은 오후 7시였으나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난 오후 4시에 이미 올림픽공원역에 도착했다. 카페에 앉아 빌리조엘의 음악을 들으며 예상 셋 리스트를 떠올려보려고 했던 나는, 지하철 역 앞에서부터 쫙 펼쳐진 단풍, 은행나무의 모습에 넋을 놓았다. 그래, 카페에 앉아있기보다는 이 정취를 느끼자. 그냥 걷자"


나는 올림픽공원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글을 시작할 것이다.

GPT에게 어떻게 질문을 해도 저런 도입부는 나올 수가 없다.

내가 쓴 글이 더 잘 썼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AI가 세상에 나온 모든 정보를 다 취합할 수 있다고 해도,

내 마음은 결코 알아낼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AI가 쓴 글이 읽기에는 무난한, 쉬운 글일 것이다.

다 어디서 본듯한 글들이니까.

하지만 내 글은 전 세계 어딜 뒤져도 없다.

내 글은 내 감정이요 내 추억이기 때문이다.


내 글은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AI가 쓴 글은 누구나 다 아는 맛이다.

읽으면서 '아 맞아. 올림픽 공원은 참 아름답지'라고 생각한다면


내 글은 모르는 맛, 생소한 맛이다.

읽으면서 '난 11월보다는 10월이 더 좋았는데',

'올림픽공원역보다는 몽촌토성역 쪽으로 올라가는 게 더 멋있는데',

'빌리조엘? 이 사람 나랑 취향 비슷하네' 등등

자신들의 생각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식, 정보와 관련된 글을 읽을 때 뇌의 반응과

에세이,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뇌의 반응은 다르다.

전자는 받아들여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목적이고

후자는 읽고 생각을 이어가면 저자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비교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 글은 AI가 쓴 글보다 더 목적에 부합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한번 여쭙고 싶다.

이 글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드셨는지.

천차만별의 답이 쏟아질 것이다.


'이 자식은 허세가 심하네' 같은 의견부터,

'오, 이 사람 진짜 글 괜찮은데?'라는 감사한 의견도 있을 수 있고,

'그래. 생각해 보니 인간이 아직 예술분야는 AI보다 더 낫지'라는

긍정적, 인류애적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반면에 이 글이 AI가 쓴 글이라면 어떤 기분이 드실는지.

아마도 '잘 썼네', '못썼네' 이렇게 두 가지 생각만 하실 것이다.

어차피 사람이 쓴 게 아닌 걸 아니까.


그래도 내가 AI를 아예 부정하고 무시하는 건 아니다.

앞서 서술했듯 나도 필요할 땐 쓴다.

AI의 정보 습득력은 무시무시할 정도다.

그런 녀석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 부지런히 내 감정과 추억을 쌓고 기록해야지.

GPT 5.0이 나와도 7.0이 나와도 내 글은 내가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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