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서 힘을 얻은 내가, 이젠 당신을 응원한다
얼마 전, 팝 가수 빌리조엘이 뇌 질환을 진단받고 예정된
공연을 모두 취소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 심금을 울리는 멜로디와 가사를
선보였던 피아노맨도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건가 싶다.
'김기덕의 골든디스크'에서 처음 그의 음악(Honesty)을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가사는 하나도 몰랐지만 멜로디가 참 서정적이었다. 감수성 풍부했던
중학생 시절의 나는 그때부터 그의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나에게 뉴욕에 대한 로망과 여행 욕구를 깨워준 'new york state of mind' ,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꼭 들려주고 싶었던 'just the way you are',
그의 명예로운 별명이자 자전적 노래 'piano man'까지
나는 닥치는 대로 그의 명곡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가서는 용돈을 모아 그의 베스트 앨범을 구매했었다. 그때 이미
인터넷 쇼핑이 당연시 됐던 시대였음에도 굳이 용산 전자상가 음반 매장을 찾아가서 구매했다.
아마 빌리조엘의 음악은 응당 아날로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 즈음이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사연과 함께 빌리조엘의 'the stranger'를 신청했는데
배철수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그 음악을 틀어줬는데 그때는 정말 행복했다.
무척이나 더웠던 2006년의 어느 여름날이었고, 다시 돌아 수 없는 잊지 못할 여름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나는 고 3이 되었고 잘하지도 못하는 공부를 하는 척하느라 힘이 들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책 펴놓고 라디오를 켰는데 빌리조엘이 처음으로 내한공연을 한다는,
들으면서도 차마 믿지 못할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때부터 마음이 두근거렸다.
다행히도 공연일은 수능 이틀 뒤였다. 아직도 나에겐 2008년 11월은
당시 고 3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능시험이 아닌 빌리조엘의 내한공연이 있던 달로 기억된다.
올림픽 체조경기장(現 KSPO DOME)에서 열린 그의 첫 내한공연일.
나는 저녁 7시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3시부터 올림픽 공원을 서성였다.
가을이긴 해도 날씨가 쌀쌀했고 잔뜩 흐려 햇빛도 하나 없었다.
그러나 내 MP3에는 그런 기온과 황량한 풍경마저도 운치 있게 만들어주는
빌리조엘의 음악들이 흐르고 있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시작된 그의 공연.
나는 보고, 들으면서도 믿지 못했다.
2시간가량의 황홀경은 'piano man' 떼창으로 절정을 찍고 끝이 났다.
이후 성인이 되고 군대에 갔다.
자대 배치를 받고 내가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한 건 CDP와 그의 CD를 보내달라고 한 것.
힘들고 지루한 군생활 속에서도 여가 시간에 그의
음악을 듣는 걸로 나는 충분한 힘을 얻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일이 너무 힘들어 멀리 떠나고 싶을 땐
'vienna'를 들으며 대리만족 하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 때엔
'my life'를 부르며 훌훌 털고 내 갈길을 갔다.
빌리조엘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그로부터 이제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했던 나이를 넘겼고,
그는 몇 년 전에 비해 현저히 줄인 공연 스케줄 마저 중단해야 할 정도의 나이와 병을 얻었다.
세월이 참 야속하다.
나는 언제나 그의 음악을 즐기는 감수성 풍부한 청년일 줄 알았고
그는 영원히 중후하고 멋진 중년일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는 아직 젊은 편이다.
어리지 않을 뿐 아직 힘이 있다.
이제 점점 힘을 잃어갈 빌리조엘을 응원해야겠다.
그는 음악으로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중학생의 감수성을 키워줬고
힘들었던 나의 청년시절, 목소리와 노랫말로 위안을 줬었다.
이젠 내가 그의 완쾌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을 줘야 할 때가 됐다.
그가 다시 한번 무대에 올라 건반을 두드리고,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를 부르며 마이크 봉을 돌리고,
기타 치면서 땀을 닦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간절히 바라본다.
더 욕심 내자면 아직까지 한 번밖에 없었던 그의 내한공연, 그것 또한 기원해 본다.
힘을 내요, 나의 피아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