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칼이 아닌, 뭉툭한 나이프

용도는 명확히, 상처는 없이

by 레지널드


나는 글을 쓰고 나면 웬만하면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지 않는다.


내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평가까지 부탁하는 건 미안하다.

상대방도 아마 깊게 고민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해 줘야 하는지

아니면 듣기 좋은 말을 해줘야 하는지.


그렇지만 아내는 예외다.

아내에게는 답을 요구한다.

고맙게도 내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고

늘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다.

전문가처럼 예리한 비평은 아니더라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아내가 내 글에서 종종 지적한 게 있다면

바로 '날카로움'이다.


평소 말투와는 다르게 글은

날카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봐도 '~~ 해야 한다', '결코', '단언컨대'와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하긴 한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람 날 가르치나?'라는

생각도 들 것 같다.

그래서 좀 가다듬어야겠다고 노력은 하지만

그간의 습관이라는 게 있어서 그런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사설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기자들 중에서도 경력 많고 실력도 뛰어난

사람들이 논설위원을 하는 것이고

그들이 쓰는 글이다 보니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쓰일 수밖에 없다.


책을 안 읽은 날은 있어도

사설은 매일 읽는 나로서는

그런 문체가 묻어날 수밖에.


내가 이러한 문체를 자주 쓰는 또 다른 이유는

나 스스로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도 한몫한다.


딱딱 떨어지듯이 끝맺음을 맺고,

글쓴이가 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이 사람은 주장이 확고하구나',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군'이라고

느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 사람은 뭘 쓴 거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결코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게

내 나름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지금까지의 글 스타일을

조금 가다듬긴 해도 전체적인 틀을

바꾸진 않을 생각이다.


물론 가다듬어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예리하다, 날카롭다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칼이다.


칼은 누구에게 주어지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나는 그 말에,

"어떤 모양이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진다"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끝이 날카로운 칼은 조금만 스쳐도 상처를 남긴다.

물론 그 칼은 물고기나 육류를

손질할 때 쓰기에는 무척 좋다.

용도는 명확하지만

악용될 소지가 있는 예기(銳器).

내 글이 그런 날카로운 글로 비치고 싶지는 않다.


저자의 의도가 명확히 보이는 글과

날카로운 글은 다르다.


내 글은 끝이 뭉툭한 테이블 나이프 같았으면 한다.

양식을 먹을 때 쓰는 테이블 나이프는

크기에 따라 애피타이저 용, 메인 요리 용이

구분되지만 사실 하나로 다 쓸 수도 있다.

버터나이프도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테이블 나이프로 충분히 빵에 버터를 바를 수 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면서

절대 사람에게 상처는 내지 않는

그런 테이블 나이프.


하지만 '음식을 먹을 때 쓰는 칼'이라는

명확한 정체성은 갖고 있는 그런 글,

내가 원하는 문체와 글은 그런 것이다.


아울러 테이블 나이프를 쓸 때의 분위기도

내 글에 녹여내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양식은

'특별한 날 기분 내기 위해서 먹는 음식,

고급 진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양식 레스토랑을 떠올리면

음악 BGM부터가 클래식으로 바뀌는 것처럼,

내 글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그랬으면 한다.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읽을수록 기분 좋아지는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글, 그런 문체.


당장에 바꾸는 건 쉽지 않아도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동시와 동요 가사도 읽고

필사도 하면서 마음을, 문체를 다듬어 나갈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월요일 아침, 덕분에 힘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