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세권 이야기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슬세권은 다 다르다

by 레지널드

슬세권(슬리퍼 신고도 다닐 정도의 접근성)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사람들의 언어적 기발함은 어디까지일까

하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도 스세권, 붕세권 등 다양한 단어들이 등장했다.

어렸을 적 신문에 나왔던 분양광고에는

역세권이라는 단어만 나왔는데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람들은

지하철 역은 기본이요, 여러 가지 생활시설과

환경을 따지게 됐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난 어렸을 적

중계동에서 살 때를 제외하곤 다 역세권에서 살았다.

하계동 살 때는 하계역이 도보로 5분도 안 걸렸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광역버스, 공항버스도 꼭 하계역에 멈췄다.


그래서 결혼준비 하며 집을 알아볼 때

가장 힘들었던 게 이 점이었다.

공인중개사가 지하철역과 걸어서 10분밖에 안 걸린다며

추천한 집들도 속으론

'걸어서 10분이면 좀 걸리는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내 걸음으로 7분이면 닿는 곳에 집을 마련했다.


쇼핑권 또한 중요하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소중함을 모르고 살던 것이었다.

하계동 집에선 도보 10분 거리에

대형마트, 아웃렛등이 있었다.

그런데 은근히 이 혜택을 못 누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전에 있던 직장 동료 한 명은 애들도 있고

살 것도 많은데 새로 이사한 집은

차로 15분은 나가야 마트가 있는 곳이라며 힘들어했다.

그 사람은 아마도 다음 거주지를 고를 땐

쇼핑권을 중요시 여길 것이다.

bridge-3024773_1280.jpg 출처: 픽사 베이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세권이 있다면 숲세권이 아닐까.

근처에 숲, 근사하게 조성된 산책로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동네 사람들의

건강이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자체는 물론 건설회사에서도

요즘 이걸 감안하여 단지 조성을 한다고 한다.

또한 숲세권이나 산책로가 잘 형성되면

부가적인 경제가치도 상당하다.

주민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다른 동네 사람들도

운동하기 위해 그곳에 유입되면서

상업지구도 같이 활기를 띌 수 있다.

예를 들면 (또 하계동 이야기지만)

월계동에서 공릉동 까지 쭉 이어지는

경춘선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크고 작은

카페와 베이커리들이 단지를 형성해 있다.

이곳은 서울 동북부 지역 데이트코스로 급부상하였고

해마다 커피축제까지 열린다.

숲길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나도 역세권 다음으로 산책, 운동여건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내 다음 거주지는 어디가 될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주변에 숲이나 대형 공원,

천(川)/강 등이 있을 것이다.

지금 사는 곳도 도보 5분 거리에 중랑천,

조금 더 가면 어린이대공원이 있어서 너무 좋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걷기는 최고의 명약'이란 말을 하지 않았나.

마트도 물론 중요하지만 매일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걷기는 매일 해야 좋다.


숲세권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

중요한 세권은 하나 더 있다.

바로 구청.

주민센터는 어딜 가나 근처에 있지만 구청은 조금 다르다.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도 많아졌고

요즘은 어딜 가나 무인발급기가 있다지만

그래도 구청에 직접 가야 하는 업무들이 아직 잔존해 있다.

모든 게 비슷한 조건이라면

구청이 조금 더 가까운 곳을 택할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 자취하는 동료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각자가 중요하는 세권이 무엇인지.

앞서 말한 것들 다 나왔다.

역세권, 마트/시장, 붕세권, 스세권.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게 하나 나왔다.

바로 빨래방.

그 직원은 '혼자 사니까 그다지 큰 집이 아니고

세탁기도 그에 맞춰서 소형으로 구매하다 보니

큰 빨래는 빨래방에서 해야 한다.

고로 빨래방이 근처에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대가 점점 변해가고 있고 사람들의 의식도

거기에 맞춰 빠르게 변한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그렇다, 사람들은 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 다르다.

예전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도

중요해질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house-4516175_1280.jpg 출처: 픽사 베이

내가 살고 싶어 하는 동네,

그것도 특정 아파트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과 같이 일한 적이 있다.

나는 웃으며

"와 그 아파트 제 로망인데.

OO도 가깝고, OO도 걸어갈 수 있잖아요" 라고 말했는데

그분은 나지막하게 말하셨다.

"주말 되면 얼마나 지옥이 되는 줄 알아?

사는 사람들은 조용한데 외지 사람들만 와서

시끄럽게 놀다 가니까 짜증나"

역시 사람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만 이해하나 보다.


내가 살고 있는 곳? 거의 만족한다.

백화점이 좀 멀어서(도보 30분) 그렇지 웬만한 건 다 있다.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면,

아주 맛있는 간짜장을 하는

중국집이 들어섰으면 한다.

여러분들은 어떤 세권을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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