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은 내게, 올라오라 하네

보기만 했던 산, 오르기에 도전했다

by 레지널드

얼마 전 신문에서 눈길이 가는 기사를 접했다.

90대의 나이에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한 경영인에 관한 기사였다.


그분께서 장수와 건강의 비결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셨는데

딱 두 개가 기억에 남았다.


하나는 소식다동(小食多動),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라.

다른 하나는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아침마다 조그마한 뒷산에 오른다는 이야기였다.

그분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산에 오른다고 한다.

좋은 말씀이라 생각하여 요즘에

매일 아침마다 소식다동을 다짐한다.


그리고 산행을 매주 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산 근처에서 자랐다.

내가 살던 중계동에서 가장 가까운 산은 불암산이었다.

정상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헬기장 까지는 자주 갔었다.

도봉산과 수락산도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단, 볼 때만..

등산 자체는 너무 고역이었다.


어쩌다 한번 학교행사로

산에 가는 날은 정말 싫었다.


어른들은 대체 왜 등산이 좋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암산 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날도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단체로 등산을 했다.

힘들게 꾸역꾸역 헬기장까지 올라가면서

마음속으로

'이따위 행사를 계획한 선생님은 누군가'라고

온갖 원망을 했다.


올라와보니 어디서 본듯한 사람들이 서있었다.

현정화, 유남규, 심권호 선수였다.

막 아는 체 하기도 그런 상황이라 지켜만 봤다.

중학생 신분에 유명한 사람 볼일이 흔한 것도 아니고.

잠시 후 내가 그렇게 힘들게 걸어온 길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막 뛰어올라오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탁구와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들이었다.

태릉선수촌이 근처에 있어서

훈련차 등산을 한 것이었는데

그 높은 곳을 뛰어올라가는 선수들의 모습이 충격이었다.

몇 달 뒤 열린 아테네 올림픽,

다른 종목은 몰라도 탁구와 레슬링은

정말 좋은 성적이 나오길 응원했다.


불암산보다 산세가 더 험하다는

도봉산, 수락산, 북한산은 아예 갈 생각도 안 했다.

학교가 그 근처가 아니었음에 감사했다.

산은 볼 때가 최고다.

봄에는 파릇파릇한 초록색을 자랑하고

가을엔 붉게 물든 단풍이 멋지고,

겨울철 눈이 내렸을 때는 그림 같은

설산의 풍경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래도 직접 가는 건 정말이지 싫었다.


세월이 흘러 산속에 있는

군부대를 나오고 나서는 산과 그나마 좀 친해졌다.

결혼한 지금은 집에서 조금만 걸으면 아차산이 나온다.

앞에서 언급한 그 기사를 읽고

'등산에 도전해 볼까?' 하고

쉽게 생각했던 건 산이 근처에 있어서다.


고맙게도(?) 아차산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라 나 같은 사람이 오르기에는 딱 좋다.

하지만 말이 쉽지 평생

산 근처에 살았으면서도 산에 가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꿔먹고 등산을 하겠나.


갖가지 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나이키의 광고문구 'Just Do it'

떠올리며 몇 주 전 첫 산행에 나섰다.


정말 놀랐다.

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가 아침 6시 10분이었고,

그날은 11월 말의 찬 공기가 강했다.

당연히 동이 트기 전이라 깜깜했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시작하고 있었고 조금 가다 보니

이미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역시 내가 모르는 세계는 참으로 많다는

진리를 또 한 번 깨달았다.

아침 이슬로 인해 미끄러운 구간이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아주 무난하게 산 정상에 올라왔다.

저 멀리 구리시의 모습과 한강,

그리고 삼성동의 모습이 보였다.

얕은 산이었지만 왜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주변 경관을 바라보며 감성에 젖어있었는데

슬슬 동이 트기 시작했다.

내 생에 처음으로 산에서 일출을 바라봤다.

늘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참 뿌듯한 감정이 밀려왔다.


정상 등정이라는 목적을 달성해서 그런가

하산할 때는 정말 기분 좋게,

소풍을 즐기듯 걸어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깜깜해서 길에만 집중했다면

내려올 때는 나무와 풍경에 집중했다.


나무에서 풍기는 향,

도심에서 보기 힘든 청설모의 움직임,

아주 조금이지만 졸졸 흐르던 물까지..


집 근처에서 이렇게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음에도

귀찮다는 이유로 멀리 한 나 자신을 반성했다.

이제 한 달에 최소 두 번은 산에 갈 생각이다.


다른 산에도 오르면서 서울의 풍경을 다 훑어보고 싶다.

트랙 위를 뛸 때와는 다른 건강함을 느낄 수 있는 산행,

여러분들에게도 적극 추천드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플 때만 찾아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