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와 사춘기가 만나다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무언가 어려움이 있었다. 누군가 뭐가 어렵냐고 묻는다면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이러이러한 점 때문이 아니라 그런 점들이 뭉뚱 그려진 일상 전체가 힘들었으니까.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코로나가 같이 시작되었다. 입학하고 몇 개월 등교하지도 않았는데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었다. 그때는 내가 직장에 있던 터라 수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집에 오시는 친정엄마의 말에 의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있긴 하나 화면에 보이는 것은 게임이요, 가끔 선생님들의 과제 독촉 전화가 오더라 정도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 그래도 과제 정도는 처리하겠지 믿고 싶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때 컴퓨터 게임에 더 심취했던 것 같다. 종일 컴퓨터 앞에 있으니 게임에 빠져들기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그런 탓으로 과목별 선생님들의 독촉 전화가 계속되었고, 나중에 들으니 여러 번의 독촉에도 과제를 내지 않은 학생은 학교로 호출을 했는데 그것도 무시하고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문제는 학원 수업이었다. 게임에 빠져 있다 보면 시간에 맞춰 학원에 가지 못했다. 그럴 거면 학원 따위 당장 때려치우라고 속으로는 수없이 되뇌었지만 사실 진짜 그럴까 봐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아이이기에) 학원 수업조차 마치기 10분 전에 들어가기도 하고, 학원 주위를 배회하다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빼먹는 날에 비하면 차라리 학원을 가기 위해 나가는 날은 다행이었다. 매번 그렇게 소리를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텼다. 시간 맞춰 학원 가는 일이 이렇게 힘들 일인가?
아이는 종종 그랬다. 항상 나사 하나가 빠진 아이처럼 물건을 흘리고 다녔다. 급기야 어떤 날은 학교를 마치고 가방도 안 챙기고 쫄래쫄래 집으로 돌아온 날도 있었다. 우산, 외투를 흘리고 다니는 것은 보통이었다. 하교를 하여 가방을 뒤져보면 온갖 잡동사니가 쓰레기가 되어 나왔다. 연필을 깎는 법이 없고, 숙제를 스스로 챙기는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걱정조차 없으니 언제나 바라보는 사람만 그 불안을 떠안았다.
친정아빠는 아이가 영특해서 큰 인물이 될 것이라 하였다.(그 이후 태어난 모든 손주들이 아빠 눈엔 큰 인물이 될 상이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특히 창의적이었던 아이는 조립을 잘했고, 그림을 잘 그렸고, 책 읽기를 좋아했다. 한 번 빠지면 오랜 시간 집중을 해서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를 정도였다. 그래서 아이가 집중력이 좋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좋아하는 일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일에도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집중력이란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러한 연유로 일상의 사소한 실수들이야 남자아이니까 그런 거겠지, 크면서 차차 나아지겠지 하면서 가볍게 묵살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도 하나도 달라지지가 않았다. 아직도 연필을 깎아줘야 하는 중학생이라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제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스쳐 지나간 모든 곳에 흔적을 남겼고, 학원을 시간 맞춰 가지 못하고, 저녁이 되면 부친과 다툼이 잦고, 학교에서도 갑자기 교실 앞으로 나갔다 오는 돌발행동을 하거나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다는 피드백이 왔다. 나는 잔소리를 녹음해서 매일 같은 시간 틀어도 될 만큼 매일 똑같은 잔소리를 하며 반복되는 일상을 이어갔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를 놓고 초등학교 1학년 때 하던 걱정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사춘기라고 단정 짓기에는 사고가 고차원화 되기 위해 겪는 방황 따위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사춘기와는 또 좀 다른 맥락이다.
답답한 마음에 처음 찾아간 곳은 철학관이었다. 그곳은 내가 원하지만 나도 알고 있는 대답을 해주었다. 2년 정도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그래도 희망적이라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나에게 답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찾은 곳이 상담센터였다. 주저리주저리 나의 어려움들을 설명했지만, 말을 하면서 나도 헷갈렸다. 상담사는 그래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고집이 센 것,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 일상생활이 무언가 어긋나는 것. 어느 하나 가장 힘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상담사는 아이에 관한 adhd 진단 테스트를 해보더니 병원에 가서 진단받아 보기를 권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청소년기가 되니 오히려 어려움은 다른 곳에서 생겼다. 내가 마음을 정하고 말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당사자가 가지 않겠다고 나서니 답이 없었다. 본래 남의 의견을 쉬이 수용하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제안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라 몇 날 며칠 설득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즈음엔 특히 화가 많아져 일상적인 대화가 잘 되지 않았음에도 틈 날 때마다 이해를 시켰다.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아이는 보름 정도 지나 겨우 병원에만 가는 것에 허락을 해주었다.
이번에는 지난번 상담 때처럼 어리바리하지 않기 위해 그간 겪었던 어려움들을 두 페이지 정도 기록하여 들고 갔다. 하지만 나열한 문제점들의 빈도나 정도는 표시할 수 없으니 이 종이만 본다면 아이는 '천하의 몹쓸 녀석'이 되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부분을 간파한 것인지,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함인지 나의 종이를 아주 눈여겨보시진 않으셨다.(최대한 객관적으로 아이를 파악하고자 한 것인데 아이의 단점만 두 페이지 가득 적은 표독스러운 엄마로 보여 부끄러웠다.)
진단 결과 아이는 adhd였다. 아마도 조용한 adhd에 가까웠던 것 같다. 충동성과 주의력 부족이 두드러졌으나 눈에 띄게 난한 아이는 아니어서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그럼에도 그 일련의 행동들이 이러한 원인에서 기인되었다는 사실에 한시름 놓였다. 모든 행동이 아이의 의도가 아니었음을 알았고 어쩔 수 없이 오해를 받았던 아이의 어려움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니 우리 아이의 모습은 adhd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내가 이제까지 이걸 알아채지 못하다니. 진작 알았다면 아이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진 않았을 텐데.
친정엄마는 그런 속사정을 어디 남한테 얘기하겠냐며 그런 얘기는 동생한테나 풀라며 마치 쉬쉬해야 하는 병처럼 생각을 하셨고, 시어머니는 차라리 모르는 편을 선택하셨다. 자잘한 사연이 나올라치면 이내 화제를 전환하시곤 하셨다. 귀하디 귀한 손주에 대한 병원의 진단은 시어머니를 잠 못 드는 밤으로 이끌었고, 차라리 모르는 쪽이 잠시나마 안도를 주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가 사춘기이고, 어디까지가 adhd에서 기인한 것인지 그 경계를 알 수가 없다. 안다고 해서 각각의 처방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자꾸 무엇 때문인지가 궁금했다. 원인이 진단되어야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을 들어보면 그곳엔 언제나 묵묵히 기다려주던 마음 넓은 어미가 있던데 그런 어미가 없이도 성공할 수 있는 자녀가 있음을 우리 아이가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그림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