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들, 학교 보내기
# 이제 들쳐업고 나갈 수도 없는 나이
중학생인 아이는 학교를 안 가고, 나는 직장을 나가지 않고 있다.
아침에 깨우는 것부터 일이긴 하지만, 본 게임은 그다음부터다. 겨우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교복만 입고 나가면 되는데 그 타임이 되면 어김없이 누워버린다. 학교를 가란 독촉엔 어김없이 갈 거라고, 알았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키곤 다시 드러누워 버리는 것이다. (가겠다고 하지 뭐라 하겠냐만은) 나를 잠시나마 믿게 해 놓고, 오늘은 무사히 갈 것이라 기대하게 해 놓고 하염없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협박도 했다가, 회유도 했다가, 화를 내는 강도를 달리해보다가 협박+회유를 해보다가.
어떤 날은 협박이, 어떤 날은 강도 높은 화가 통하는가도 싶었지만 언제나 나의 원맨쇼일 뿐 결국은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지나치게 자기 주도적 성향의 이 아이는 고집스럽게도 '내가 갈 시간은 내가 정한다'는 모토로 움직였다.
학교는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고, 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본인에 대한 허용치가 높아 이 정도는 허용되는 범위라 스스로 판단해 버리는 이 아이를 설득하는 일은 벽에 대고 소리치는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등교 거부는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말 무렵부터 조금씩 지각을 하던 것이, 오전에서 오후로, 오후에서 전일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는 아니므로 큰 문제는 아닐 거라는 안심을 동시에 심어주며 서서히 우리의 생활 속에 잠식하였다.
이 증상은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더 심해졌다. 안 가는 날이 하루이던 것이 이틀, 사흘이 되기도 하며 들쑥날쑥한 등교가 계속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성향의 아이여서, 친구와의 문제, 하기 싫은 공부를 오랜 시간 해내야 하는 것이 힘든 adhd라서, 긴장과 불안이 높은 아이여서, 또는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의 여파로 학교를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라 인지하여 못하여, 혹은 감당하기 힘든 일 앞에서 두드러지는 회피 성향 때문에.
이리저리 짐작은 해보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가 없다. 아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에 압도되어 학교를 가는 것이 힘들다고만 했다. 여러 특정할 수 없는 원인들이 버무려져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하나의 결과물로 우리를 마주하게 했다. 하지만 마냥 가기 싫어서, 쉬고 싶어서 누워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의 모습은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아이의 보이는 현상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다 adhd라는 어려움을 중학교 1학년 말에서야 알게 된 어리석음이 있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보이는 모습만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말겠지, 어느 날 정신을 차리는 순간이 있겠지' 하며 기다린 것이 일 년 남짓 되던 날. 나는 하는 수 없이 휴직을 신청했다. 아이의 의사 선생님은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이 오히려 더 힘들 수도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지만, 나는 차라리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 쫓아내듯 학교로 내모는 방법을 선택했다.
휴직을 결심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과연 내가 집에 있는다고 해서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휴직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인 만큼 그만큼의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긴장과 불안이 높아 집을 나서는 것이 어려운 이 아이에게 믿고 의지할 사람이 언제나 옆에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 정서적 안정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거라도 해보자 싶었다. (사실 병원도, 상담센터도, 학교도 나에게 어떠한 방법도 제시해주지 못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행히도 내가 휴직을 하고 아이는 많이 안정된 모습을 찾아가는 듯했고, 가끔은 지각조차 않고 등교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방심했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등교가 어려운 생활로 돌아가곤 했다.
오늘은 월요일에 과외까지 있는 날이다.
일정이 하나라도 더해지는 날에는 그 부담으로 아침에 나서는 것이 더 힘든데, 수업을 따라갈 수 없으니 과외는 또 그만둘 수 없다고 한다. (과외를 받기 위해 본업인 학교 수업을 못 가는 아이러니라니)
때문에 오늘은 월요일인 데다 과외 일정이라는 부담으로 버티다 버티다 오후 2시경 등교를 했다. 티셔츠, 바지, 겉옷을 걸치는데 각 한 시간씩 소요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는데, (내심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나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 지가 사람이라면.) 오후에 돌아오더니 힘들어서 과외를 할 수 없단다. 우여곡절 끝에 오고 있던 과외 선생님을 돌려보냈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건 내 몫이다. 내 평생 남한테 미안할 일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과연 나의 육아 중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이에게 분노를 쏟은 날은 밤이 되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홀로 잠들지 못하고 아이가 16세가 되기까지의 기억을 회상하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에 이르러서야 잠이 들곤 했다.
친정 엄마는 칩거생활 중인 나를 보며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냐며 걱정을 하곤 하시는데 생각해 보니 쏟아낼 말들이 쌓이면 이렇게 글을 쓰는 일로 풀곤 했던 것 같다. 그런 연유로 어릴 때도 못써본 육아일기를 사춘기가 되어서야 써보려 한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로 결론 나든, 해피엔딩이 되든 엔딩이 있기만을 바라며.
#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