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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Dec 16. 2022

성과급보다 인정 한 마디

# 칭찬에 목마른 인간


언제나 또래보다 몇 뼘은 작았던 아이가 있다. 대개 한 학급에 빠른 년생의 아이들이 서넛은 있었고, 그 애들은 월등히 빠른 성장을 보였기에 12월생인 그 아이와 몇 학년은 차이가 나 보였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꾸역꾸역 큰 애들 사이에 끼어 노는 탓에 그 아이가 그리는 풍경은 늘 조금은 어색하고, 균형이 맞지 않은 듯 보였다. 오늘은 그 작기만 하던 아이가 '인정'으로 인해 자랐던 이야기를 쓰려한다.


나는 언제나 교실에서 첫 번째 줄이 고정석이었다. 생일이 늦은 애들은 대체로 성장발달이 느리고, 사고력 발달도 또래에 비해 다소 처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내 짝꿍들은 대체로 고학년이 되어도 한글을 미처 깨치지 못하거나, 조금 부족한 아이들이 많았다. 특히나 시골 학교의 특성상 같은 친구들이 다음 학급으로 같이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서 한 여자 아이와는 수도 없이 짝꿍으로 만났다. 집이 학교와 멀어 오빠와 같이 입학을 시킨다고 두 살이나 일찍 입학을 했던 아이. 어린 나이 탓이었을까? 이 아이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수업을 받기는커녕 병설유치원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발견되는 일이 더 많았고, 수시로 교실을 벗어나 학교 주변 문방구나 길거리 사루비아가 핀 화단 옆에서 발견되곤 했다. 선생님은 내가 그 아이와 짝꿍이라는 이유로 그 아이를 찾아오는 일을 나에게 시키곤 했다. 나는 계속하여 그 아이와 짝꿍이 되는 일도 싫었지만, 매번 그 아이를 찾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은 더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단 앞자리, 그 찌질이 존(zone)에 소속되어 나까지 덜 성숙한 아이 취급을 받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딱히 그들과 다름을 밝힐 정도의 두각을 드러내는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그렇게 조용히 찌질이 존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이로 자랐다.


5학년 담임이 되실 분은 굉장히 무서운 데다 발바닥을 회초리로 때리는 체벌을 하는 분이라는 소문이 났다. 나는 그때도 강약약강(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모습)의 비겁함을 탑재했던지라 무서움과 공포를 온몸에 감싸고 나타난 선생님을 보고 절로 쭈구리가 되었다. 회초리라는 체벌을 피해야겠다는 필사적인 마음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눈을 부릅뜨고, 집중을 해서 수업에 참여했다. 아니 그것은 집중이라기보다는 맞는 일은 피해보겠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이 미약한 미물의 몸부림이 딱하게 여겨졌는지, 작아서 소외될까 염려되는 나를 조금 추어올리기 위한 배려였는지 예상과 달리 선생님은 나의 그런 모습을 많은 학생들 앞에서 칭찬하기 시작했다. 종례시간 반 아이들을 앉혀놓고, 수업시간 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저러한 태도로 수업에 임해야 한다는 등 매일 한 마디씩 대놓고 나를 칭찬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또 과한 인정을 받으면 미력한 몸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에 괴로워하다가도 그에 부응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선생님의 그 몇 마디의 말들은 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고, 그로 인해 나는 5학년을 기점으로 작고 미약한 찌질이 존에서 범생이 존으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의 작은 기대와 인정에 춤출 수 있는 요인을 갖고 있던 아이였는데, 그걸 알아본 선생님의 과 나의 내면의 욕구가 마침 맞아떨어져 한 인간이 깨어나는 사건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 나에게 보내는 칭찬과 인정에 춤추는 인간이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희한하게도 내가 속한 팀의 직원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간 이후에 없어지기도 하고, 내가 가려고 할 때 없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마이너스의 손'이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는데 그 말이 저주가 되었는지 내뱉고 나서부터는 그런 경우가 더 잦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묵묵히 참고 하는 것만이 미덕인 줄 알던 나는 누군가,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러한 날들을 견뎠다. 하지만 직장이란 곳은 일하는 사람 몇몇으로 인해 돌아가는, 일하는 사람만 일하는 아니던가? 일을 못하는 사람은 아예 배제가 되는 일이 많았고, 차마 배제되는 삶을 선택할 용기가 없는 일개미들은 일에서 제외된 사람의 일까지 도맡아 하게 되어 늘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A 부서에서 팀장과 나를 포함한 팀원 두 명으로 일을 하던 때였다. 팀원 중 한 명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갓 복직을 한 직원으로 아직 경력이 많지 않아 일을 배워가는 단계였다. 그런데 이 눈치 없는 직원이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달짜리 신규 교육을 간다는 것이 아닌가? 순진하게 웃으며 교육을 가겠다는 직원 앞에서 남은 일 따위를 거론하는 것은 너무 치사한 것 같아 쿨한 척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일에, 교육 간 직원의 일까지 도맡아 하며 바쁜 연말을 보냈다. 내 일만으로도 버거운데,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직원의 일까지 하는 것은 너무 고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직원이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시점, 나의 묵묵한 버팀을 알아주기는커녕 명이 빠져도 무난히 돌아가는 것을 지켜본 인사팀에서 자리를 아예 빼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는 팀장과 팀원, 2명이 한 팀을 이루어 모든 일을 했어야 했고, 유난히 모든 시선이 과장님의 동선에만 꽂힌 일 안 하는 팀장을 모시고 그 해를 버텼다.


그런 와중에 과장은 입안의 혀같이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우리 팀장을 무한 신뢰하였고, 그 팀장은 자신이 돋보이기 위해 나를 내리는 전술을 쓴 것인지 과장은 나의 묵묵함을 알아채 주지 못했다. 그해 나는 직장에 쓰임만 당한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자평을 하며 씁쓸히 한 해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B부서에서 일할 때 역시 신규발령을 받은 지 두 달 만에 그만두는 직원이 생겼고, 그 해는 팀장마저 큰 일을 앞두고 휴직을 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생겼다. 남겨진 일을 두고 나머지 팀원들과 업무를 배분하는데 나는 차마 나보다 경력이 많지 않은 다른 팀원들에게 일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해 큰 일은 내가 하겠노라며 마치 어두운 조직의 행동대장 같은 패기를 보이곤 뒤돌아 허벅지를 찔렀다. 당장의 그 체면과 의리가 뭐라고. 안 그래도 많은 일에 더 많은 일을 덮어쓰는 일을 자처했는지. 그해는 추석까지 반납하고 나와서 일을 해야 하는 고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그 부서의 과장은 나의 이런 묵묵한 희생을 알아채 주었다. 당신이 말없이 어려움을 감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이러한 당신의 능력을 인정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었다. 칭찬과 인정에 목마르던 아이가 다시 되살아나 나는 또 그 해 버거운 일임에도 능력치를 벗어나도록 일을 했다.


나는 나의 상사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곤 한다. 이렇게 단순해서 당근 몇 개면 열과 성을 다해 일할 사람인데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말이다. '인정' 그게 뭐라고. 나는 그 작은 알아챔 하나가 동력이 되어 능력 이상을 발휘하기도 하고, 한없이 기가 꺾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수의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저 알아주는 것, 칭찬 한마디, 인정 하나면 충분한 사람말이다. 한마디에 나의 모든 노력과 희생의 가치가 생기고, 존중받는 느낌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경제관념이 크게 없는 사람이라, 가령 나 같은 이라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성과급보다 한 마디의 인정이 오히려 더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상사들이여. 칭찬을, 인정을 아끼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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