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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Dec 28. 2022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꼰대 상사였다

# 나를 스쳐간 오피스 빌런들


나의 직장생활은 다양한 인간군상과 합을 맞추는 과정이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몇 명의 상사를 떠올리면 얼추 나의 오랜 직장생활이 설명된다. 그들은 좋은 본보기로 나를 감화시키기도 했지만, '절대 저런 상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의 적확한 예시를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한 채 구현한 슬랩스틱 개그 같은 것이다. 본래 본인은 웃지 않고 치는 개그가 더 웃긴 법 아니던가.


오늘의 단단한 나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행했던 숭고한 희생을 기록해 본다. 주요 특징을 중심으로 유형을 구분했으나 현실에서 마주하는 꼰대는 이러한 모든 유형이 복합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애석한 일이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 : 미소천사형


굉장히 인상이 좋은 분이었다. 언제나 큰소리로 호탕하게 허허허 웃어서 실체를 아는 우리도 한 번씩은 그런 모습에 깜빡 속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도 되는 내부직원이 아닌 그 외의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가면 같은 모습이었다. 절대 큰 소리를 내거나, 표 나는 방식으로 직원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주말 직원들과 등산을 가자는 그분의 제안에 반기를 들었다거나, 슬쩍 흘리며 한 말일지라도 귀담아듣고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거나, 저녁에 회식을 하고 싶다는 의향을 비쳤음에도 이를 무시하였다거나. 그런 일의 끝엔 언제나 결재가 되지 않았다. 출장도, 연가도, 병가도, 급한 기안문도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


그의 최고 무기는 웃으면서 뱉어내는 비난이었다. 이런 일은 대체로 등산이라는 괴로운 제안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수용하기 위해 내면의 갈등을 하는 사이에 일어난다. 그러니까 그분이 그러한 제안을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으나 직원들이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선뜻 답을 내놓기 전 말이다. 그런 상황에 눈치 없이 결재를 올리는 직원은 꼭 있게 마련이고, 눈치 없는 죄로 그 직원은 그날의 타깃이 되어 호출을 당하는 것이다. 사람을 비참하게 괴롭히는 스킬을 어디서 배워오기라도 한 듯 그분은 나날이 발전된 기술을 구사했지만, 그에 반해 우리의 맷집은 맞는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한 시간이고 옆에 서서 침 튀기는 독설을 듣다 보면 흡사 전장에서 갑옷과 말을 잃은 패잔병이 된 몸인데 확인사살로 독침까지 맞는 기분이었다. 그 독침은 딱 죽지 않을 만큼의 공격성만 가지고 있다. 쓰러지면서도 결국 쏟아내는 말들을 온몸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험악한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백기를 든 채 '주말 등산을 너무 가고 싶어요. 몰랐는데 뒷산도 마다하던 저희가 오늘부터 산이 좋아지네요'라며 당신의 제안을 수락했음을 알리는 제스처를 취하고 나면 자연스레 결재가 이루어지고, 그 사람 좋은 웃음이 다시 흐른다. 단, 이런 경우라도 절대 그러한 제안을 그분이 먼저 하였음이 드러나면 안 된다. 우리가, 화창한 주말에 산에라도 함께 올라 화합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불현듯, 사무치게 든 나머지 이런 제안을 하였다는 뉘앙스를 풍겨야 최종 성공인 것이다. 결국 본인의 손에 피 묻히는 일 없이 본인이 의도한 바를 행하는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었다.


하얗고 넓은 얼굴로 웃으면 양볼이 다람쥐같이 볼록해지던 사람이었는데 그 볼록살이 어느 날엔가부터 심술보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가장 억울했던 것은 소수의 내부직원밖에 이 실체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널리 소문이라도 나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우리의 딱한 사정을 긍휼히 여기기라도 한다면 조금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소문의 근원지가 되고자 제일 잘 아는 직원인 우리 신랑한테 열심히 알려봤자 이 사람은 묵언수행이라도 하는지 그 소문은 훨훨 날아가지 못했다.



뭣이 중헌디 : 디테일 장인형


직급에 따라 구분된 역할이 있다. 하위직은 구체적 실행방안을 수립하고, 중간직은 이를 검토하고, 상위직은 전체를 보고 방향을 이끌어 가는 것이  역할이다. 상사는 큰 배를 이끄는 선장이 되어 보다 넓은 눈으로 큰 방향만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헌데 여기 디테일 장인이 있다. 타고난 섬세함과 조밀함으로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작은 것에 혈안이 된 자가 있다. 기안문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과 해결방안이 아닌 오탈자, 띄어쓰기, 글자크기, 들여 쓰기 등 소소한 실수를 찾아내느라 정작 숲을 보지 못한다. 너도 나도 9급 말단 직원이 되어 숨은 오탈자 찾기를 하게 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느라 일은 속도가 나지 않고, 마치 내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나를 부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큰 행사를 앞두고 창틀의 먼지를 신경 쓴다거나, 테이블보의 각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거나, 의자를 일렬로 놓고자 노끈을 들고 줄을 맞춘다거나. 봉준호의 영화에서나 봄직한 데테일함을 쓸데없이 이런 곳에 발현하여 그냥 흘려도 되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분은 회의를 통해 의견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좋아했다. 회의란 것이 건전한 방식과 절차로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식이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라 변용되는 경우 제 기능을 못하기도 한다. 매주 월요일에는 간부회의가 있는데 보통 과장들은 이때 그 부서의 주요 업무를 보고하게 된다. 이렇게 크고도 중요한 일을 아무 문제 없이 잘하고 있다며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한 보고자료를 위해 팀별 회의를 먼저 하고, 그 자료로 과장 주재하에 차석회의를 연다. 자료들은 때로 통과하지 못하여 다시 발굴하여 오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한다. 보고를 위해, 보고할만한 특별한 일을 "만들어내야 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간신히 구성한 내용으로 간부회의가 끝나고 나면 이를 갈무리하기 위하여 팀장회의가 또 열린다. 질문을 하고, 지적을 하고, 비난을 하는 일방적인 말하기가 시작된다. 이때 미움을 사지 않으려면 간혹 머리를 끄덕이거나, 눈을 한 번씩 맞춰가며 내가 당신의 주옥같은 말을 새겨듣고 있음을 어필해야 한다. 이런 형식적인 회의와 자료 준비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기한을 다투는 "진짜 일"은 시간이 없는 조금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곤 한다.


그분은 본인만큼 유능한 사람이 없다는 과한 자신감으로 미천한 직원들에게 일일이 알려주고, 코치하고 싶어 했다. 내 손을 거치치 않고서는 일이 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나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없어서 모든 걸 신경 쓰느라 늘 머리가 아팠다.


크고 중요한 내용의 포인트만 보고하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내게 이런 디테일한 유형은 특히 난감했다. 보고 범위를 당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런 분들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본인의 허락을 맡고 행하기를 원한다.) 어떠한 날은 내가 먹은 점심 메뉴까지 보고를 해야 하나 뭐 이런 고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빨간펜 선생님 마인드로 밀착 조언을 하던 그분은 정작 중요한 문제가 터지자 새삼 거리 두기를 시전 했다. 책임을 질 위치에 있으면서 일의 수습을 아래로 슬쩍 미루고, 회피하는 모습으로 나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역시 디테일형은 나와 궁합이 맞지 않다. 나는 그분과 최대한 적정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그 해 한걸음 다가오려 하면 두 걸음 물러나는 계산을 하느라 나 역시 머리가 아팠다.



YES or YES : 만사 오케이형


상사가 어떠한 지시를 내리면 아무리 부당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No를 외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요, 검토하는 흉내라도 낸 후 '다방면으로 검토해 보았으나 이는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모범답안이라는 것은 익히 알 것이다. 상사의 입장에서 아무런 고민도 없이 일언지하에 거절을 표하는 태도는 자칫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지시가 매번 아무런 고민 없이 행해지는 상명하복의 형태라면 직원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부당한 지시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그 부당함에 무조건 맞설 수는 없다. 직원 역시 어느 때고 그러한 지시가 내려올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그럴 때는 최소한 '이러한 점은 부당한 것 같으나 우리 한 번 고민해 보자.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뭐'라는 태도는 있어야 한다.


그분은 무조건 예스맨이었다. 윗분이 지시를 내리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시의 근본적인 목적도 파악하지 못한 채 듣고 온 그대로를 전달했다. 당신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지시를 말이다. 차라리 정확한 목적과 이유를 묻고라도 오면 다행이다. 그저 문구 그대로를 받아 내려주면 지시한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엉뚱하게 결론 지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그러한 일을 해야 하는 명분을 찾지 못해 일이 속도가 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정량적인 일에도 정성적인 일이 결합되어 일어난다. 그 일을 해야 할 명분이나 이유를 찾는 노력을 같이 하였다면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일었을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그 해 그분을 지시된 내용만 던져주는, 일만 무조건 받아내려오는 무능한 상사였던 것으로 기억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꼰대 유형들 모두와 한 곳에서 생활을 했다면 사무실에 꼭 한 명은 있다는 그 또라이가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늘은 나에 대한 작은 연민은 있었던 것인지 한 해 또는 두 해 걸러 한 번씩만 저런 분들을 만나게 하였다. 덕분에 나는 내면이 단단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분명 그분들 덕에 나는 성장했다. (내면은 모르겠고, 외면은 늘어난 주름과 듬성해진 머리카락을 보면 확실하다.)


그렇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꼰대 상사였던 것이다.


보통 이러한 글의 결론은 이를 헤쳐나갈 현실적인 방법이나 조언이겠지만, 그런 답을 바랐다면 정말 죄송하지만 없다. 매번 '이번은 진짜 최악이야'를 외쳤는데, 그 최악은 매번 레벨업이 되어 돌아왔다. 아. 이제 좀 견딜 만 한가? 이 정도면 감당할만한데 싶은 마음에 안도를 할라치면 어찌 알았는지, 잠시의 기회도 주지 않고 잊고 있던 꼰대기질을 발휘하여 그런 생각을 잠재웠다. 잔잔해졌나 싶어 달려갔을 때 밀려드는 파도와 같이 매번 남다른 파고를 자랑하며 밀려들었다. 그 사이 마음은 썩어 문드러졌다가 또 여미기를 반복했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또다시 저러한 빌런을 만난다면 어떻게 마음을 추슬러야 할지. 아직도 '제발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마음이 가득한 걸 보면 나는 두렵다. 닥치면 그저 나의 운 없음을 탓하며 타격감 좋은 을이 되어 그저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그때 내가 썼던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을 생각해 보자면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최면을 거는 방법이었다. 무언가 생각을 하고, 나를 납득시켜 일을 하고자 하면 어김없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럴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는 것이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딱히 이상하지도 않고, 그리 부당하지도 않다. 마치 내 일이 아닌 듯 아무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하더라도 이를 벗어날 수 없다면 생각을 잠시 마비시켜 그 순간을 회피하는 것이다.


지금 누군가 생의 길목에서 만난 꼰대로 인해 휘청이고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음의 스킬이 하루치 정도의 진통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하루가 언젠가는 지나가고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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