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모퉁이를 돌아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보면 겨우내 외갓집이 시야에 들어온다.
스러져가는 담장의 쓸쓸한 정취, 도록도록 성기게 올라오는 돌담 아래 이름 없는 풀꽃들, 질서 없이 자라 정강이를 웃도는 무성한 풀들, 엉킨 실타래 같은 거미줄만 낯선 방문에 마중을 나온다.
이제 그곳엔 아무도 없다. 빈 집만이 덩그러니 남아 사람의 온기를 잃은 것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집을 형성하던 나무기둥이나 서까래나 마른 흙도 사람의 온기가 얼기설기 얽혀야 생명력이 있다. 평생 사람의 손을 타던 집이 온기가 없어지기 무섭게 폐허가 되었다.
외벽 모서리에 외로이 걸린 액자만이 소란했던 이곳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액자 속 외할머니의 마주 잡은 두 손만이 무언가를 잊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스러져가는 집을 받들고 끝까지 버티려는 듯 마주 잡은 두 손엔 힘이 가득하다.
멀쩡한 이름도 발음 편할 대로 부르던 외할머니는 늘 소리가 먼저 뛰어나왔다. 구수하게 한 음절 꺾이던 그 소리는 하나의 음악처럼 매번 높낮이가 같았다. 외할머니는 늘 노래를 부르듯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외갓집에 들어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친가 친척과 달리 외가의 핏줄은 한 발짝 물러난 듯한 느낌이 든다. 늘 한 발짝 뒤에서 음영처럼 소리 없이 존재했다. 감히 드러나면 안 되는 사연이라도 간직한 듯 늘 무대에 선 친가 친척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관객석에 조용히 존재했다. 그렇게 물러난 존재였어도, 특별한 날에나 마주하는 이들이었어도 엄마를 꼭 닮은 외할머니의 얼굴은 우리가 핏줄임을 늘 상기시켰고, 만남의 횟수가 무색하게 단번에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외할머니는 손이 유독 컸다. 몸에 비해 큰 손은 일복이 많다는 것 외에 그다지 좋을 일이 없었다. 아궁이에 나무를 그득 넣을 때나, 나물을 한 움큼 움켜쥘 때나, 집에서 기르던 가축들에게 배곯지 않게 먹이를 줄 때나, 과실을 따낼 때 한 번에 쥘 수 있는 양을 늘려 작업의 효율을 제공했을 뿐이지 그 외 다른 이득은 전혀 없었다. 선비 같은 모습으로 말끔히 차려입고 바깥 활동에 분주하였던 외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일에 바깥일까지 해치우는데 큰 손이 쓰일 뿐이었다. 그런 탓에 외할머니의 허리는 하루가 다르게 굽었다. 땅만 보고 걷던 외할머니가 한 번씩 규칙적으로 허리를 펴고 뒤로 젖힐 때 허리를 짓누르던 무게는 그 위에서의 균형을 맞출 뿐 사라지지 않았다.
외가는 산 하나를 넘어 위치했다.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외할머니는 휜 허리를 부여잡고 그 길을 걸어서 면 소재지에 나오곤 했다. 그래서 우연히 길을 걷다가 외할머니를 마주치는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그 큰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고는 주머니를 뒤적여 용돈을 쥐어주셨다. 어느 날엔가 내가 공무원 시험 학원을 가던 길에 외할머니를 마주쳤는데 그때에도 어김없이 용돈을 주셨다. 내게 건넨 용돈이 빠지고 가벼워진 주머니가 팔랑 뒤집히는 것을 보며 그 돈을 받아 쥔 나이 많은 손주인 내가 처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움츠려드는 내 손을 꼭 잡고, 잔 정이 느껴지는 주름 진 웃음을 지으며 외할머니는 열심히 하라고, 엄마 힘들게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다. 살다 보면 마치 사진을 찍은 듯 각인되는 생의 장면들이 있다. 내겐 그날의 그 장면이 그랬는데 수험생활에 지쳤을 때 쓰임을 다 한 줄 알았던 그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이 나며 한 번씩 일렁이는 마음을 만들었다. 할머니가 덥석 잡으며 전해주었던 주름진 온기는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그 장면에서 늘 나이 드는 것은 나일뿐, 할머니의 손은 더 늙지 않았다.
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손잡이가 없어져 펜치로 두두둑 채널을 돌려가며 보던 텔레비전 속 드라마는 낡은 외형 속에서 홀로 빛났다. 그곳에는 무수한 사람과, 다채로운 세계가 있었다. 현실과 달리 생기 넘치는 사건들이 존재했고, 티키타카가 잘 되는 대화가 주는 희열이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늘 끝이 존재했다. 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지진한 내 삶에서 늘 끝이 존재하는 드라마는 나의 도피처였다. 그 속에 존재하는 사모님들은 늘 고운 손을 가지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짙은 쉐도우와 아이라인을 그리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채 가늘고 고운 손으로 감촉 좋은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린 후 잠이 들었다. 내가 현실에서 보지 못하는 손을 가진 그들의 인생은 화려하고 빛났다.
그런 드라마를 볼 때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닮은 큰 손으로 사과를 깎거나, 그루프로 머리를 감아올리거나, 마사지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며 현실로 나를 불러들였다. 나는 드라마 속 그녀들의 손과 엄마의 손을 번갈아 보며 그 지나친 괴리감에 드라마의 현실감각을 비판하곤 했다.
엄마의 취향은 지극히 일일드라마였는데 가끔 통화를 하다가 "그런데 그 집에 갑자기 시어머니가 들이닥쳤다이가"와 같은 뜬금포를 날릴 때 가만 문맥을 더듬어 보면 엄마가 즐겨보는 일일드라마의 하이라이트 장면이곤 했다. 엄마의 드라마는 일상과 다름없었다. 그들의 삶이 곧 나의 삶이고, 내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끼어들 수 있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드라마 밖에서 유독 빛을 잃던 엄마의 손은 보지 못했다. 당신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당신의 삶 언저리인 드라마 속 그들의 삶을 오히려 위로할 뿐이었다.
그와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유독 춥고 시리던 겨울. 소란하고 부산한 커피숍이었다. 이미 우린 그 누구든 먼저 말만 꺼내면 툭 끊어질 옅어진 사이였다. 같이 쌓아온 추억과 기억을 먼저 끊어낼 용기가 누구에게도 없었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커피를 시켰고, 커피를 움켜쥔 나의 손은 커피의 온기에도 계속 떨고 있었다. 내가 꺼낼 말을 손은 먼저 짐작이라도 한 듯 좀체 끓어오르지 않았다. 내 손이 미세하게 떨리던 날 그 손으로 그의 손을 놓았다. 더워지는 가슴과 달리 손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이제 그만 단념하라는 말을 내게 건넸다.
손은 내게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엄마는 내가 당신을 닮지 않고 작은 손을 가져서 다행이라고 했다. 작은 손으로 힘들지 않고, 사무실에서 펜을 쥐고 하는 일을 하며 살라 했다. 엄마의 잦은 당부는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인생의 지침이 되기도 한다. 어느새 나는 펜을 들고 하는 일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엄마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큰 손을, 그 일복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그들은 나의 작은 손을 부여잡고 늘 말했었다. 너는 그렇게 힘들게 살지 말라고. 인생을 드라마처럼, 드라마 속 그들처럼 편히 살라고.
나는 그들의 손이 건넨 온기 가득한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언제나 힘들 때면 불쑥 찾아드는 손의 기억이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손이 먼저 알아채고 내 마음을 돌려놓기도 한다.
손에 그러쥔 것들은 늘 힘이 있었다. 늘 작은 온기로 나의 삶을 밝혔다. 늘 그들 손에 작은 꽃반지라도 되어 얹히고픈 나의 바람이 전해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 사진 출처 : 신비복숭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