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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Jan 03. 2023

딸들은 왜 엄마하고만 통화할까?

# 유채색 인간


아빠의 비뇨의학과 조직검사가 있는 날이다. 보호자는 1인만 동행이 가능한데 엄마의 코로나 확진으로 내가 보호자로 가게 되었다. 검사는 당일 퇴원하는 입원으로 진행되었다. 입원 수속을 밟고 주사를 잡고, 오후가 되자 진통제와 항생제를 처방한 후 조직검사를 했다.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달자 멀쩡하게 걸어 들어왔던 아빠가 졸지에 환자가 되었다. 병원이란 곳의 하얀색 공기와 하얀색 환자복, 하얀색 침대 시트. 색을 띤 것이라곤 환자복에 작은 글씨로 새겨진 병원명이 전부인 이곳은 들어서자마자 온통 멀금한 형태를 띠며 색을 앗아갔다. 아빠의 그런 모습이 생경하다. 환자복이 유채색이면 환자들의 얼굴이 좀 더 생기 있어 보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4인실로 배정되었는데 그곳엔 2명의 장기 입원자가 있었다. 창틀 아래 어지럽게 놓인 생활용품이, 냉동실에 보관된 몇 뭉치 얼려놓은 밥이, 환자는 안중에도 없고 환자보다 더 편히 쉬고 있는 보호자의 모습이 오래되었음을 말해주었다.


맞은편 할아버지는 다리와 기관지가 불편해 보였는데, 나이 드신 할머니가 간호를 하고 있으니 그것도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환자만큼이나 연로하신 몸으로 한 번 설 때마다 곡 소리가 나오던 할머니는 같이 병실에 누워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대각선 건너편 할아버지는 호흡이 불편하신지 자주 앉아 계셨는데,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정열을 내뿜던 남자 보호자는 환자는 안중에도 없고 종일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마치 독서실에 상주하며 그곳이 일상이 된 독서실 총무 같은 모습이었다. 적응이 주는 안락함에 취해 본연의 목적인 공부는 잊고 형형색색 포스트잇의 배치, 공부하기에 적합한 방석의 쿠션, 커피를 음미하기에 적절한 장소 등에 더 관심을 갖던 독서실 총무 말이다.


정열의 빨간색 티셔츠는 할아버지가 앉아서 연거푸 거친 숨을 골라내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같은 이유로 열람실에 처음 들어선 신참 같은 모습으로 곁눈질을 해대는 나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늘 그렇게 왔다가 간다는 듯이.


그렇게 무심함이 몸에 밴 정열의 빨간색 티셔츠는 12시가 되기 무섭게 낡은 슬리퍼를 끌고 가더니 냉동고에서 얼린 밥을 능숙하게 꺼낸다. 눌려진 머리에서 느껴지던 나른함조차 잊힐 정도로 빨간색은 이곳에서 굉장히 압도적인 색이다. 그래도 유일하게 생명력이 느껴지는 색이라 '환자 보호자에게 적합한 TPO'라도 검색했다면 그것이 이 자가 가진 마지막 센스였지 싶다.  


처음으로 마주 보고 앉은 아빠와 나는 띄엄띄엄 대화를 이어갔다. 평소 건강 체질이라 입원은 물론이고 링거조차 처음 달아본다던 아빠는 모든 것에 어색해했다. 눕는 것조차 불편해하며 앉아서 창밖을 멍히 보곤 하셨는데 그나마 강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 자리를 배정해 준 것이 다행이다 싶다.


아빠는 아빠의 친구, 친구의 친구, 이웃 누구의 친척뻘 되는 사람 등 같은 질환을 앓고 계신다는 분들의 근황을 전하며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지금 누구보다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은 아빠다. 장기 입원 중인 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오지 앉는 잠을 계속 청하다가 가끔 앉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색채를 잃은 환자들은 시간이 흐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 듯 시계도 보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흘리듯 보내는 것 같았다. 저분들도 들어설 때는 저렇게 무력한 사람들은 아니었으리라.


엄마와는 간단하게라도 매일 통화를 했었다. 엄마는 매일 아이들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한테 전달하면 으레 아빠한테도 전해지기에 항상 통화를 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그런데 언젠가 아빠가 딸들은 죄다 엄마하고만 통화를 한다며 약간 서운해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무던하던 아빠 입에서 나온 말 같지가 않았는데, 역시 나이는 사람의 단단함을 조금씩 옅게 하나보다. 아빠의 마음도 조금씩 색을 잃어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조직검사를 위해 비뇨의학과로 이동하고, 돌아올 때는 휠체어를 이용했다. 고작 그 휠체어를 미는 것이 그날 보호자 역할의 전부였는데 아빠는 마치 내가 아빠를 업고 백 미터 달리기라도 한 듯 칭찬을 하신다.


검사가 끝나자 그간의 긴장이 녹는지 아빠는 까무룩 잠이 드셨고, 나도 그제야 조금 누워본다. 그 사이 우리 옆자리에 환자가 도착한 모양이다. 잠시 눈을 붙였나 싶었는데 옆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 커튼에 가로막혀 어른거리는 그림자와 목소리가 전부이니 이는 천막 뒤 인형극이 따로 없다. 옆에 들어온 환자는 젊은 남자였는데 걱정이 되어 자리를 뜨지 못하는 엄마에게 자꾸 그만 가보시라고 채근을 한다. 여러 번 만류하고 거절하는 소리가 들리나 싶다가 다시 잠이 들었나 보다. 그새 등장인물이 바뀌었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약간 늘어지고 애교도 섞인 걸 보니 아까 그 어무이는 아닌 듯하다. 아까 어무이와 쏘아대듯 대화할 때와는 달리 조곤조곤 말이 길어진다. (역시 아들 키워봤자 다 소용없......) 척추마취를 해보고 안되면 전신마취를 하자, 한 번 해봤으니 괜찮을 거다, 뭐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너무 귀를 쫑긋하고 듣다 보니 어느새 내적 친밀감이 높아져 나도 모르게 커튼을 확 열고 끼어들 뻔했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요? 하며.


내가 이렇게 옆 자리와 말없이 내적 친밀감을 쌓아가는 동안에도 해는 여념 없이 할 일을 했다. 창을 뚫고 들어오던 햇살이 조금 느려진다 싶더니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검사를 끝낸 아빠는 끝냈다는 안도감에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했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나도 조금 안도하게 된다. 이곳에서 색은 곧 바깥 세계와의 교류를 의미한다. 여러 색이 왔다 가는 동안 그들도 처음에는 다소의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바깥에서 온 자들에게 관심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무력한 이 공간은 그들에게서 색만 앗아간 게 아니라 세상으로 나갈 희망마저 앗아간 듯했다.  


집에 와서 설거지를 하다가 아까 아빠가 '후배들이 아직 탄탄한 나의 몸을 보고 부러워한다'는 말에 내가 대꾸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냥 추임새면 되는데 건강에 너무 자신하는 아빠가 미워 그걸 하지 못했다. 왜 자꾸 곱씹으며 미안해지는 일들이 느는지 모를 일이다.


그 와중에 아빠는 오늘 너무 고생했다며 또 지나치게 미안해하신다. 차라리 그냥 고마웠다고 말해주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안함의 감정 아래에는 내가 받으면 안 되는 것을 누렸다는 과한 자책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딸이어서 언제든 간호도 할 수 있고, 통화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일들이 왜 미안한 일들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미안한 마음이 늘어가는 것이 철이 드는 과정이라면 나는 그냥 철부지 딸로 남고 싶다. 그러니 아빠도 후배들이 부러워하는 건강한 아빠로, 어떤 색에도 흐려지지 않는 유채색 인간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



# 이미지 출처 : 겨울쿨톤 둥글빵의 성공 일상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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