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이 밝는다. 우리는 각자 연장을 들고 적절한 장소를 물색한 후 반경 60센티미터의 구덩이를 판다. 적당한 쿠션과 적당한 딱딱함으로종일 앉아있기 편한 환경을 조성한다.마치 영화관에라도 온 듯 좌우에 음료와 스낵을 비치하고 그 속에 들어가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집이 사람을 위해 내놓는 공간은 고작 구덩이 네 개에 불과하다. 지분으로 집의 주인을 가리자면 싱크대와 붙박이장, 침대가 우위를 차지하고 우린 고작 밥솥이랑 최하위를 두고 접전을 벌이지 싶다. 나중에 붙박이장이 큰소리치며 점유취득시효라도 주장한다면 끽소리 못하고 세입자 신세가 되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눈치 보며 까치발 걸음을 걷는 건 아닌가 상상해 본다.
정성껏 매만진 구덩이 속에서 아빠는 드라마를 보고, 엄마는 브런치를 탐색하고, 아들은 게임월드에 입성, 딸은 좋아하는 연예인 덕질을 한다. 아이들이 가끔 웃는다. 생사가 궁금한 부모를 위해 아이들은 시간을 달리하여 웃음소리를 들려준다. 가끔 아들의 반가운 목소리에 웬일인가 싶어 선뜻 대답을 하고 보면 게임 중인 아들이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제 것인 양 가로챈 어미가 있을 뿐이다.
유일하게 어미가 공용공간으로 걸어 나가는 때가 있다. 음식이라 이름하기엔 민망한, 후다닥 조리가 가능한 각종 프라이된 것을 세팅하여 아이들 방에 사식처럼 넣어준다. 종일 게임을 하고, 유튜브만 보는 탓에 바삐 움직이는 것이라곤 손가락밖에 없는데도 늘 배가 고픈 아이들을 보며 그래 건강하면 된 거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본다.
우리 가족을 대상으로 관찰예능이라도 찍는다면 오디오가 너무 비는 것이 아닌가 괜한 걱정이 된 어미는 사식을 든 쟁반을 들어 올리며 '아이쿠우. 허리야'라고 조용히 말해본다.
나도 방학땐 그랬다. 무료한 일상을 보냈다. 그래서 늘 일기에 쓸거리가 없어 고민이었다. 새로운 것이라곤 고작 매일 바뀌는 식단밖에 없어 동생은 주야장천 그날 먹은 메뉴를 소상히 일기에 적었다 한다. 메뉴를 일일이 나열하고 참 맛있었다로 결론짓고 보면 얼추 반페이지는 채울 수 있었다. 참 맛있었다가 식상한 어느 날은 더 먹고 싶었다로 디테일한 변화를 주기도 했단다. 그저 어쩌다 붕어빵을 먹거나, 호빵을 먹는 것이 특별한 글감이 되는 나날이었다.
그 와중에 엄마가 어린 우리 자매를 부산 이모집에 보낸 적이 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고, 엄마를 떠나본 경험이다. 내가 처음 도시에 내려 느낀 것은 밝은 네온사인이 아니라 끝도 없는 오르막길과 그 위에 위태하게 늘어선 검은 형상의 집들이었다. 윗집이 아랫집을, 또 그 윗집이 아랫집을 딛고 다정하게 붙어선 것 같지만 중간에 하나만 빠지면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연약한 연대가 느껴졌다. 두 이모가 사는 곳은 오르막길 저 끝에 있었고, 다리에 들러붙은 어둠이 자꾸 시간을 더디 가게 하는지 꽤 오래 걸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를 처음 떠나 본 시골 아이들은 그날 밤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듯한 낯선 감정을 경험한다.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잠들었을 것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첫 느낌은 마치 그네가 하강곡선을 탈 때 막연해지는 그것과 비슷했다. 우리는 이틀즈음에야 그럴 땐 울어도 된다는 것을 알고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부산에는 이모 자매가 같이 살면서 주산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방 하나와 강의실이 전부인 곳이었는데 아침이면 방에서도 수업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우리 자매는 어쩔 수 없이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방과 이어져 있는 다락방으로 피신을 해야 했다. 그곳은 아침이 밝아도 어둡고, 일어서면 머리가 닿아서 내내 엎드린 자세로 있어야 했다. 숨어있는 듯해서 괜한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런 곳에서 책을 탐닉하며 책 속에서 자아를 확장해 나가는 바람직한 아이들은 없었다. 좁은 공간에서 둘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재미를 찾다가 조금씩 서러워지기도 했다.
오후가 되어 학원생이 뜸한 시간이 되면 이모는 나를 강의실 책상에 앉히고 주산학습을 시켰다. 그저 도시의 화려함을 기대하고 온 어린아이에게 뜻하지 않은 학습이라니. 동요하는 나의 눈빛, 어미를 처음 떠나 낯선 곳에서 낯선 감정에 마음이 서걱대는 아이. 뭐 이런 감성은 지극히 이성적인 이모에게 통하지 않았다. 졸지에 학원생이 되어 매일 주판을 튕겨야 했다.
엄마와 이모 사이에 모종의 약속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방학 동안 무의미하게 보내는 조카들이 안타까워 이곳으로 보내면 내가 방학 동안 공부를 시켜 보내겠노라고. 안 그래도 시골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던 엄마에게는 솔깃한 제안이 아니었겠는가. 또한 육아에 지친 엄마에게 아이를 둘씩이나 봐준다니. 엄마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푹 쉬다 오길 바라며.
우리가 예정하고 온 기간이 얼마였는지 모르나 시골 벌판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에게 어두운 다락방 생활과 지루한 학습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부추겼다. 모든 설움을 울음으로 쏟아내던 자매는 결국 일주일 만에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도시의 삭막함과 집 떠난 자의 고생을 마음 깊이 느끼면서. 눈물겨운 시간을 보내고 겨우 일주일치 일기 쓸 글감을 얻고 돌아왔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돌아왔을 때 반가워하면서도 내심 서운한 눈빛의 엄마를 보았다.
집에서 귀 막고 살아도 누군가는 방학 동안 어학연수를 하고, 누군가는 기숙학원을 보낸다더라 뭐 이런 미담은 어떻게든 흘러들어온다. 희한하게 어제와 똑같이 구덩이를 파고 앉아있는 아이들이 달리 보이는 것이 문제다. 오늘부터라도 시간을 정하여 부족한 학습을 지도하여야 하나, 한없이 늘어진 아이들을 닦달해야 하나 내면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대치하였을 때의 그 고단함과 피로를 생각하고 단념하고 만다. 엄마가 시나리오 한 편을 쓰고 결국 똑같은 결론을 내는 시간 아이들은 그저 어제와 똑같이 열중하여 무언가를 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내 마음에서만 파도가 일었다가 잠든다.
한 편의 글을 내기 위해서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걸을 때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누워서도, 그저 늘어진 것 같은 모습이지만 머릿속에서 하염없이 글감을 생각한다.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떠올리는 일은 반드시 바른 자세를 요하는 것은 아니기에 대체로 빈백소파에 늘어져 휴대폰을 보면서, 깜빡 졸아 이마에 떨어지는 휴대폰에 맞아가며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알지 못하는 신랑은 늘어진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내 속에서 얼마나 사유가 익어가고 있는지 미처 알지 못하는 자의 서툰 단정 앞에 나는 탄식하곤 했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겉으로는 구덩이에 하반신이 묻힌 듯 미동도 없이 앉아 있지만 그 속에서 무수한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늘어짐이 마냥 늘어진 것만이 아니었던 것 같이 아이들도 그 속에서 자라고, 이겨내고, 성장할 것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