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길러내거나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에는 무심한 내 옆에서 동생들은 늘 무엇인가를 길러내고 있었다. 학교 앞에서 무수한 얄리가 삶의 기로에 놓여있던 시절. 샛노란 유혹은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고, 동생들은 몇 안 되는 용돈을 털어 두 마리의 병아리를 집으로 데려 왔다. 한 번만 바라봐 달라고 병색 짙은 눈빛으로 나의 시선을 갈구하던 때에도 나는 그 아이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사람 이외의 생명체에는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기에. 하지만 살아있는 것을 경시한 나의 무심함은 난데없는 사건의 현장에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병아리가 추울까 봐 두툼한 이불로 터널 모양을 만들어 병아리를 그 안에 넣어두고 동생들이 잠시 옆 방에 다녀온 사이. 이불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내려앉으며 이 아이들을 덮쳐버린 것이다. 그 방에 있던 유일한 목격자 또는 용의자는 나. 그 어린것들에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나 어린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음에도 관심조차 주지 않은 죄, 한 생이 사그라드는 와중에도 그 현장을 방치한 죄로 나는 동생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동생들은 숨이 다한 그 작은 것을 손안에 감싸 쥐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슬퍼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이 때론 미안한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고 했던가. 그 아픔을 다른 병아리로 잊어가던 동생들은 이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그 이후 데려온 병아리는 절대 내 곁에 두지 않는 방법을 취했다. 그렇게 나를 피하여(?) 성장한 덕에 대부분 옅은 숨을 내뱉다 짧은 생을 마감하곤 하는 다른 얄리들에 비해 쑥쑥 자라나더니 어느새 닭장을 필요로 하는 큰 장닭이 되었다. 덩치가 너무 커져서 푸더덕 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부담스럽던 어느 날. 더 이상 집에서 키우기에는 버겁다는 생각이 들어 시장에 내다 팔기로 한 날. 이 녀석은 꽉꽉 들어찬 살과 윤택한 결을 알아본 낯선 자의 간택을 받아 장터에 가기도 전에 비싼 값을 치르고 팔려갔다.
여동생은 너무 빨리 역변하는 것에 조금 실망을 하여 작고 어린 시절을 오래 간직할 생명체를 찾게 되었고, 그 결과 이후로는 크게 자라지 않는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과하게 정들어 떼기 어려울 것을 우려한 엄마는 조금 자랐다 싶으면 동생의 동의 없이 장터에 내다 팔곤 했고, 미처 작별을 고하지 못한 동생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다가 다른 강아지로 또 슬픔을 잊곤 했다. 누군가의 자리를 누군가가 대신한다는 것은 이전의 아픔을 감수하면서 더 많은 애정을 갈구하는 자리란 것을 다시 찾아온 이들은 미처 알기도 전에 떠나곤 했다. 그렇게 우리 집엔 무수히 많은 강아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동생이 다룰 수 있는 생명체는 말 못 하고,작은 것에 국한되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명체를 기르는 일에 삶의 전반기 전부를 투자하였음에도 동생은 그 이후 생에서 마주한 두 생명체를 이해하는 일로 늘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큰 생명체인 남편은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말수가 적다. 종일 성인인간을 기다리며 대화의 한 줄기라도 건지고픈 아내의 마음을 몰라주고 퇴근 후 곧장 자신만의 굴로 들어간다. 차가운 외모에 말이 없는 남자를 외치던 동생은 결혼 후 이상순 같은 대화가 통하는 남자로 이상형이 바뀌었다. 남편의 부재 아닌 부재를 아들을 통해 만회해 보려 했으나 그 2세는 극도의 예민함을 타고났으니 사소한 몸짓, 말투에까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라 농담 하나 멋대로 던지지 못하고 모든 일에 아이의 선호를 묻는 무수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 작은 생명체와 소통하던 여린 동생의 과거를 들려준다면 조금 더 동생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싶고, 친밀한 누군가의 지지가 필요하고, 누군가의 공감을 얻고 싶은 마음을 알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릴 적 유일한 친구인 작은 생명체들과 숱한 이별을 겪으며 누군가와는 오랫동안 이어지는 마음을 품기만 바라왔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한 사람이 좀 더 이해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머니란 존재가 아들이 불리할 때 든든한 편이 되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자인지 우리 시어머니는 아들의 전세가 좀 불리하게 되었다 싶은 시점에 어김없이 나타나 이를 역전시키곤 했다. 얼마 전 술 마시는 신랑에 대한 글을 발행 후 엇갈리는 마음으로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 술 마신 다음날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보곤 이내 내 글이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미안한 기색이 단지 연이어 참석할 배드민턴 동호회장 이취임식 때문이란 것을 알았을 땐 다시 그 마음이 깡그리 사라졌다.
그런 작은 앙금이 남아있던 날. 시아버지의 생신으로 만난 자리에서 시어머니는 죽다 살아난 아들의 설화를 들려준다. 학교를 입학하기도 전. 병명도 알지 못한 채 열이 펄펄 끓어 애태우던 날들. 그 와중에도 경기에 도달하지 않던 아들의 순했던 성정. 그렇게 다 죽어가던 아들이 신우신염이라는 병명을 얻고 마침내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며 시어머니는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병약하던 어린이는 지금 온 가족이 코로나를 앓을 때에도, 독감을 앓을 때에도 비켜가는 슈퍼 항체를 가진 건장한 성인이 되었지만 시어머니에게 아들은 아직 그 어린 시절 짠한 아이인 모양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신랑에게서 어린 시절 얄리 같은 병약한 어린이가 느껴진다. 나를 만나기 위해 그 어려운 병마와 싸웠나 뭐 이런 스토리로 엮고 나니 새삼 여린 생명체가 보이는 것이다. 병약한 것이 스러져가는 현장을 방치하는 일이 또 일어나선 안되는데 뭐 이런 생각도 들면서 새삼 애처로운 눈빛이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일생이 오기에 어마어마한 일이라 했던가.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가 함께 오는 것이라 했던가. 미처 당도하지 못했던 그의 과거는 이렇게 필요한 때 마침 필요한 이를 통해 당도하곤 한다. 내가 온통 날 선 감정과 빗겨 난 마음을 한편에 안고 있을 때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와 나의 여린 벽을 무너뜨리곤 한다.
그 사람은 여전히 내게 오는 중이다. 먼저 도착한 현재와 아직 당도하지 않은 과거와 다가올 미래와 함께.
이제 미처 다가가지 못한 나의 과거를 출발시키고 이해를 구할 때인가. 우리의 여러 시점이 어느 날 모두 조우하여 서로를 이해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