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쯤. 신랑의 전화가 온다. 다짜고짜 오늘은 좀 나가서 걸으란다. 점심 식사 후 산책을 거르지 않는 신랑이 이런 전화를 한 것을 보면 오늘은 혼자 걷기 아까울 정도로 날씨가 좋은가보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당신도 좀 걸었으면 좋겠단 말을 투박하게 던져도 용케 주석을 매달아 고운결의 언어로 해석해 낸다. 걸으면서도 내 생각이 먼저 났구나 하며 진실과 무관한 해몽을 해본다.
마침 동생이 전화를 걸어왔길래 얼른 채비하여 나가 같이 걸으면서 통화를 하자고 했다. 산책용으로 사두었던 밤색 캡모자를 쓰고 패딩을 걸치고 길을 나선다. 채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그 사이에도 소소한 대화거리를 만들어 냈고, 우린 각자의 자녀가 제공한 최대치의 어려움을 먼저 토로하며 대화의 문을 연다. 동생은 잠들기 전 어김없이 울음을 내놓고 잠드는 여덟 살 아들 얘기를, 나는 머리에 동백기름이 흐르는 딸 이야기를 하고 보니 갈림길에 서 있다. 매번 똑같은 길만 걷곤 했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새로운 길로 걷고 싶어 진다.
평소 걷지 않던 반대편의 윗길로 걸음을 옮겨본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좁은 길을 가다가 두꺼운 패딩이 옆사람의 패딩과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어깨빵이라 오해할까 두려워 얼른 목례를 하고 본다. 근육질 몸매로 보이는 롱패딩 속에 근육과 무관한 살점이 있음을 얼른 알리고픈 조바심이 든다. 다행히 그는 느끼지 못했는지 무심히 지나간다.
조금 더 걸으니 짧은 횡단보도가 나온다.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에 나른한 표정의 젊은 남자가 있다. 저 순간 기다리는 시간의 공허함을 안다. 주위를 살피기엔 짧고, 하염없이 신호만 보기엔 지겨운 시간. 나는 그때 음악을 바꾸거나 브런치 알람을 확인하곤 했는데 하염없이 시선을 떨구고 있는 것을 보니 저 사람은 브런치와는 무관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밖으로 늘어뜨린 팔이 무거운 추같이 몇 번 흔들리더니 마지막 반동을 동력 삼아 차가 다시 출발한다.
엊그제 한파가 왔었는데 언제 이렇게 포근해졌는지 모를 일이다. 패딩을 벗어 한 손에 걸치고 다시 걷는데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길을 걷다가 골목길이 나오면 한 번씩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 나왔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호기심 가득 안고 들어갔다가 어떤 마음이든 채워진 기분으로 돌아 나오는 것이 좋다. 막힌 길이든, 열린 길이든 그 여정에 무언가 채워지는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
큰길보다는 작게 난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는다.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것을 알기에 내딛는 발걸음에 주저함 따윈 없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이 즐비한 길 사이에 작은 용달트럭이 보인다. 검은색 긴 수염에 긴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는 외모의 남자가 양말과 스카프를 팔고 있다. 보통의 남자와 다른 모습은 그 속에 지닌 사연을 상상하게 한다. 마치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 법한 외형으로 벌이를 하고 있다. 아니 자연인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행위인지도 모른다.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양말이 매달려 있다가 한 바퀴 주르르 돈다. 옆에 같이 매달린 스카프도 여러 번 흔들린다. 오늘 아침 싱크대 위에 매달린 고무장갑을 보고 새삼 생경한 느낌이 들었는데 저렇듯 뭔가 매달려 있는 것이 주는 아슬아슬한 위기가 있다. 바람이 조금만 더 분다면 스카프가 훨훨 날아가버릴 것 같다. 그럼 또 저 자연인 아저씨는 성긴 수염을 휘날리며, 거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이를 잡으러 뛰어가겠지. 스카프를 부여잡기 위해 온갖 흩날리는 것들을 부여잡고 뛰는 아저씨를 상상하며 혼자 웃어버린다. 동생은 아이의 수학 학원 이야기가 한창이다. 두 개의 수업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평생 한이 된 주산 수업을 더 시키고 싶단다. 공부에 한 맺힌 어미도 아니고 관두라며 손사래를 친다. 동생은 언제 고민했냐는 듯 금세 수긍하고 만다. 내 말에 크게 반박하지 않기에 우리는 오래 통화할 수 있다.
골목과 상점을 지나 오니 가로수길이 나온다. 어머. 갑자기 포근해진 날씨에 봄인 줄 착각한 꽃봉오리가 삐죽 나온 모양이다. 나오고 보니 겨울인데 도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 꽃봉오리를 보며 왜 중학생 때 그 운동장이 갑자기 생각났는지 모를 일이다. 그때 우리 반은 유일하게 남녀합반이었는데 그 반은 키순으로 남자가 1번부터 23번까지, 여자가 24번부터 48번까지였다. 마침 100미터 달리기를 하던 날이었는데 번호순으로 하고 보니 23번의 제일 큰 남자애와 24번인 제일 작은 내가 나란히 서서 달리게 되었다.
하필이면 23번 남자애는 하얗고 포동한 몸집에 한껏 여성스러운 아이여서 운동과 친하지 않은 몸이었고, 나는 작지만 다부진 아이였다. 둘이 나란히 서있는 광경 자체로 우스꽝스러운데 키만 멀대같이 큰 남자아이를 앞지르고 내가 이겨버린 것이다. 그런데 키 값을 하지 못한 남자아이 때문에 이기고도 영광스럽지 못하고우스운 모양이 된 것이다. 그 순간 겸연쩍어하던 내 표정을 오늘 저 꽃봉오리한테서 느낀다. 영광스럽게 맺히고도 자랑스럽게 드러내지 못했던 나의 승리와 비슷하다. 오늘 따뜻한 날씨가 봄의 선발대를 환대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봄기운에 조금 들뜬 사이 동생의 이야기는 시어머니로 옮겨갔다. 동생의 목소리에서도 오래간만에 생기가 느껴진다.
곧 봄꽃이 소르르 피어나고 내가 좋아하는 풀꽃들이 자라날 것이다. 나는 유독 풀꽃을 좋아한다. '풀꽃'이라는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기만 해도 소박한 정겨움이, 초록의 푸르름이 느껴져서 좋다. 요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간결하지만도 않은 그 이름이 참 마음에 든다. 풀꽃이 돋아 오르는 날 나는 또 한껏 달뜬 기분이 되어 어딘가를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