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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Feb 22. 2023

트랜스젠더 작가님


날씨가 좋아 보여 오후쯤 길을 걸었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는데 마땅한 찬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진로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데 보통은 운전을 하면서 길을 마주하였을 때와 마트에 와서 각종 식료품을 대면했을 때이다. 휘 둘러보다 우유식빵을 하나만 사서 나온다. 역시 각종 재료를 사서 맛이 보장되지 않는 요리를 하는 것보다는 전문가가 조리한 음식을 배달하여 먹는 것이 경제적이란 생각이 든다. 마트는 그런 결심을 굳히기에 마침 적당한 곳이다.


횡단보도에 서서 빨간색 신호등이 깜빡이는 것을 바라본다.

저. 초록불 아저씨는 불쌍하지 않니? 빨간불 아저씨는 그래도 계속 서 있는데 초록불 아저씨는 맨날 걸어야 하잖아. 다리 아플 것 같지 않니?


언젠가 횡단보도 앞에서 이렇게 신박한 질문이 있을 수 있나 스스로 감탄하고 있을 때 어이없어하던 아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서로 다른 표정이었지만 아무튼 둘 다 웃었다. 초록불 아저씨가 걷는다. 한 번쯤 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나왔을 것이다.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걷고 있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며 찡긋 응원의 미소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시선을 떨어뜨리고 한껏 늘어진 걸음을 걸을 때조차 알지 못하는 위로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소리 없이 응원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무적인 일인가. 내게 일어난 가끔의 행운은 저 초록불의 위로 덕분인지도 모른다. 찡긋. 긋. 초록불이 자꾸 윙크를 보낸다. 살짝 걸음을 빨리하여 건너간다.


아파트 상가에 다다르니 드라이클리닝을 맡기고 찾지 않았던 겨울옷이 생각난다. 아줌마는 나를 보시더니 묻지도 않고 찾아가지 않은 옷이 있다며 냉큼 찾아주신다. 나를 자주 보신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금세 알아채고 옷을 찾아주신다. 나를 누군가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의 온도가 조금 오른다. 비닐을 입은 세탁물을 어깨에 가볍게 걸치고 한 손엔 식빵을 들고 우편함에서 고지서를 꺼내 드는 내 모습이 마치 영화의 도입부에서 주로 인용하는 평화로운 일상의 단면인 것 같아 괜한 뿌듯함이 느껴진다.


막상 나갔더니 마스크를 벗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렇게 쓰라고 할 때는 죽자고 벗고 싶더니 그새 익숙해져서 벗지 못하는 나도 우습다. 이제 마스크를 벗고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새삼 두렵다. 마스크를 벗게 되었을 때 마주했던 얼굴이 내가 상상했던 얼굴과 달라 놀랐던 기억이 기 때문이다. 눈만 보고 그 눈에 어울리는 얼굴을 상상해 왔던 나는 눈에 어울리는 얼굴이라는 모호한 것을 맹목적으로 믿고 있었나 보다.  


마스크를 벗은 모습에 놀란 경험은 브런치를 하면서도 겪은 적이 있다. 브런치 착가에게 글이 때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마스크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린 때로 자신의 많은 것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숨기기도 한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드러내는 글에서 독자는 자신이 상상한 얼굴을 그리며 글을 읽게 되는 것이다.  


글이란 것은 내게서 벗어난 순간 독자에 의해 생명력을 갖게 마련인데 글에서 우리는 성별, 나이, 성격, 삶을 대하는 태도 등 전반적인 모습을 상상해 왔던 것 같다. 그중 나는 유독 글 속에서 남녀를 구분 지어 생각했었다. 섬세하거나 여린체의 글은 어김없이 여자의 글이라 단정 지었다. 그리고 그런 얼굴을 그리며 글을 읽었다. 그런 생각으로 글을 읽다가 너무 놀란 기억이 몇 번 있다. 한참 뒤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글을 마주한 날. 이 작가님은 트랜스젠더도 아닐진대 내 마음속에서 성별이 바뀌는 대전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성별이 바뀐 글은 의외로 전체의 느낌을 완전히 다르게 한다. 나는 활자 하나만 보고 마스크 속 얼굴을 섣불리 단정 지었던 것이다. 그렇게 단정 지었던 것이 어떤 이는 까칠한 모습이기도, 섬세한 모습이기도 또는 다정한 모습이기도 했다.


실제의 나와 글을 쓰는 내가 다르듯 그들도 다양한 모습을 지녔을 것이다. 글이 더 단호할 수도 때론 더 다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날그날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눈만 보며 그 눈에 어울리는 얼굴을 상상하는 바람에 스스로 선입견의 감옥에 갇혔던 것이다.


이제 그저 보여주는 대로, 보이는 대로 글을 읽으려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날이 좋아 마스크를 벗어던지는 날 나는 그들의 민낯을 환대하며 맞을 것이다. 그사이 아주 여러 번 초록색 신호등이 깜빡이며 조용한 응원을 보낼 것이다.



#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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