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직장생활로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주말에만 데려오곤 하던 게 자그마치 7년이다. 금요일 일을 마치고 친정에 도착한 어느 날 우리를 기다리다 그만 잠이 들어버린 아이는 내가 오면 줄 거라고 가장 좋아하는 마이쭈와 과자 부스러기를 비닐팩에 담아 현관 앞에 모셔두었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 먹는 걸 내어준다는 건 찐사랑 아니던가. 그렇게 아이는 내게 넘치는 사랑을 주는 존재였다.
주말이면 피곤한 몸이지만 좋은 것을 많이 보여주며 미안한 마음을 메우려 했다. 주말을 그렇게 이벤트적으로 보내고 다시 일요일 저녁 친정에 두고 오는 발걸음은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는데 희한하게도 아이들은 따라가겠다며 보채거나 울며 매달리지 않았다. 마치 모든 걸 체념한 듯 딴청을 부리며 애써 덤덤한 척을 했다. 어느 날은 딸아이가 나가려는 내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나도 갈래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반가울 지경이었다. 차라리 울기라도 하면, 아이같이 엉엉 울기라도 하면 그만큼이라도 해소되는 마음이 있었을 것 같다. 아이들은 마음에 눈물이 차올라 가끔 넘치는 날 한 번씩 눈물을 보였다. 나는 그 마음을 알지만 곁에서 어루만져줄 수 없는 엄마였다. 오히려 냉정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져야 아이들이 마음을 추스르기 쉽다는 말에 다시 현관문을 열어보지 못하는 엄마였으니까. 현관문 밖에서 아이들의 표정을 미처 읽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아이들은 참는 것을 먼저 배워버린 듯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울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를 안심시키는 것이 아이들의 몫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내겐 그 시절이 늘 마음의 그늘이다. (하물며 첫 애는 중간에 내가 1년을 데리고 있다가 도로 외할머니집으로 가게 되었으니 그 좌절감이 어땠을까)
생에서 누구나 일정 부분 결핍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큰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밀착해서 받아야 하는 성향의 아이였다. 일곱 살이 되도록 손에는 손수건을 쥐고, 엄지 손가락을 빨며 안정을 찾곤 했는데 손을 빠는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그 이면의 불안을 읽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겐 그때 엄마의 부재가 큰 우물로 남아있는 듯하다. 나는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우물이 떠올랐다. 조금 힘들더라도 내가 데리고 있었어야 했다며 많은 후회를 했다.
아이는 방학 동안 평화로워 보였다. 방학 동안 매일 한 번씩 산책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는데 잘 되진 않았다. 그래도 마음이 내키는 날은 함께 걸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며 내 옆에 꼭 붙어 있었고 점점 대화가 많아지고 많이 웃게 되었다. 가끔 보는 사람들은 아이의 표정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배우고 싶은 것이 생겼다. 밤낮으로 게임만 하던 아이가 어느 날 게임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궁금해하다가 3D모델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단다. 좋아하던 것도 배우는 일이 되면 싫어지곤 해서 배우는 것이 망설여진다던 아이가 처음으로 3D모델링을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한테서 처음으로 하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에 나는 너무 기뻤다.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만 찾으면 몰입하여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창의력이 좋은 아이에게 이 작업은 꽤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신청하여 프로그램 수업을 들었는데 처음엔 토요일 하루 7시간의 수업을 했더니 생각했던 것만큼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각오와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수업에 늦거나 딴짓을 하곤 했다. 그렇게 지루한 모습을 보여 내심 불안했는데 방학이라 주 3회로 수업이 나뉘고 수업시간도 3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제법 유머가 있고 칭찬을 많이 하는 선생님으로 바뀌고 아이는 새삼 흥미를 보이며 아주 집중해서 작업을 한다. 역시 수업의 방식과 선생님의 영향이 큰 아이다. 배우는 것에서 처음으로 재미를 느낀다 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편하게 늘어진 상태로 근 2개월의 방학을 보냈다.
친한 친구와 같이 원하던 고등학교로 배정을 받고 아이는 조금 기대를 하는 듯하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일종의 희망을 갖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복병이 하나. 하필 독후감 3편이 숙제로 주어졌다. 많이 달라졌다 싶었지만 이 숙제로 나만 불안해하는 것을 보고 역시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라며 체념하고 있었다. 왜 걱정이 안 되냐며, 혼자만 안 내면 첫날부터 좋지 않은 이미지가 되지 않겠냐 해도 대답만 했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거의 포기하고 있던 시점 5만 원을 가불해 주면 독후감을 쓰겠다고 한다. (여전히 강력한 동기가 있어야 몸이 움직인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가불인데 옳다구나 싶어 흔쾌히 승낙을 했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반드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했겠지만 요약분 유튜브 영상으로 대신하고 독후감을 쓰도록 했다. (정석의 순서를 밟아 긴 시간이 소요되면 금방 흥미가 떨어지고 완성하지 못할 것을 안다. 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사실 숙제를 하겠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다.)
첫 번째 책은 죽은 시인의 사회였다. 아이는 독후감에서 학생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학교는 내가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며, 누군가 정해준 것이 아닌 지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적고 있었다.
이것은 책 이야기이자 자신의 이야기였다. 아이는 생각이 강요되는 학교가 힘들었었고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필요했었다.
내게 예전의 아이는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의 생각이 곧은 아이였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꿈도 없고 생각도 흐릿한 아이가 되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실망감을 온몸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자신만의 또렷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여전히 나아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자 바람은 제가 나무를 흔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무를 흔든 것은 오로지 자신이었지 나무가 바람 때문에 흔들린 적은 없었다.
개학을 앞두고 과연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그래도 이제 내가 흔든다고 될 일이 아님을 안다. 조용히 그 속에서 흔들리며 이겨내기를 바랄 뿐이다.
# 그림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