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드디어 학교에 갑니다

by 골방여자



그 꽃이 피었다. 언제나 봄을 제일 먼저 알리던 꽃. 나는 이 꽃이 피면 이제 한 계절을 지나는구나 실감하곤 했다. 아직 벗지 못한 도톰한 외투를 뚫고 봄이 삐죽 고개를 내미는 느낌이었다.


오가는 길섶에도, 금이 간 담장 아래에도, 낮은 언덕에서도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봄날을 맞아 모두가 고개 들어 꽃봉오리를 바라보며 탄성을 지를 준비를 할 때 늘 풀숲을 보느라 시선을 떨군 내가 있었다. 내게 봄날은 이렇듯 작고 소소한 풀꽃이 와락 피어나는 날들이었다. 나의 봄은 늘 낮은 곳에서 서서히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 아이에 대한 글을 쓸 땐 솔직히 나의 고달픈 나날을 기록으로 남겨 아이가 컸을 때 너의 성장은 나의 희생을 딛고 이루어진 것이라며 생색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그다음엔 누군가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고, 또 누군가 비슷한 성향의 아이를 둔 사람들이 아이의 어려움을 일찍 읽고 늦지 않게 도움의 손길을 주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 이유로 내 글의 외부 유입의 대부분은 '학교 안 가는 중학생' '아이가 학교를 안 가요'를 검색하여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 나 역시 또렷한 답을 내놓기보다는 현재의 답답함을 토로하는 글에 가깝지만 그런 검색이 많은 것을 보며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결론에 이를지 모르지만 간간히 아이의 변화를 기록하려 한다.


개학날. 아이는 다행히 잘 일어나 시간 안에 챙겨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얼마 만에 버스를 타고 9시 전 등교인가. 내 차를 타고도 오전 늦게나 오후에 겨우 발걸음을 옮기던 아이였는데. 그저 학교를 제시간에 갔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학교 가기 싫다고 주문을 외듯 읊조리며 힘듦을 표하는 딸과 달리 전혀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잘 지내고 있는 듯 안심시키다가 어느 날 집을 나서지 않던 아이가 아니었던가. 아들은 그랬다. 학교에서의 생활을 잘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끊임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사인만 보냈었다. 어떤 불편함은 꾹꾹 속으로 앓다가 어느 날 한 번에 온몸으로 표현했었다. 잘하는 것만 말하고 싶고 엄마의 기대에 언제나 닿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꾹 참는 아이를 만든 것 같다. 나는 그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내고 있다.


양가 할머니들은 득달같이 전화를 해 손주의 등교 소식을 물었고 제시간에 등교를 하였다는 것만으로 만세를 부르며 좋아하셨다. 오래간만에 듣는 밝은 목소리였다. 아이는 이 사실을 알까. 자기 하나로 웃고 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아이를 자극할 것 같아 괜한 소리는 하지 않았다. 마스크가 달라지거나 신발끈이 조금만 더 죄어있어도 금방 알고 불편함을 말하는 아이니까.


아이는 분명 달라졌다. 이러다 또 어느 날 의지가 잠시 꺾이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확연히 이전과는 다르다. 그것은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 친한 친구와 같은 학교에 가게 된 것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그리고 아빠와의 적정한 거리와 엄마와의 밀접한 거리가 도움을 준 것 같다. 아이는 언제나 나와 친했고, 아빠를 어려워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가 벌이는 일이 나에겐 이해할 수 있는 일의 범위였지만 통제 성향이 강한 아빠는 자신의 틀을 벗어나는 일이라 힘들어했다. 그리고 그것을 불편한 표정으로 늘 표현했다. 예민한 아이는 아닌 척하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것을 늘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 학교에 제출하는 자신에 관한 조사서에 가족과 나와의 친밀도를 체크하는 란에 5단계 중 엄마와 동생은 '최상'을 선택하고, 아빠는 두 번째 단계인 '상'을 선택했다. 대외적 이미지를 고려하여 모두 최상을 선택할 만도 하건만 역시 절대 거짓말은 못하는 아이다. 그럼에도 '상'이라도 된 것은 엄청난 발전이다. 아빠의 잦은 여가 생활(?)로 본의 아니게 자주 부딪히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 듯하다.


반면 내가 한 것은 그나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 믿고 기다려주는 것과 이해해 주는 일이었다. 이것은 때로 양육에 있어서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의 적정한 때를 하염없이 기다리느라 푸시할 때를 놓치곤 했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일이 많았던 탓에 아이들은 힘든 일 앞에 쉽게 무너지곤 했다. 나는 늘 적정한 선을 찾느라 애를 썼지만 내가 하는 방식이 잘 버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 방법이 아이에게 유연한 검으로 쓰인 듯하다. 내가 해준 것은 믿고 기다린다는 무언의 사인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아이는 진심으로 내 마음을 느낀 듯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이 또 하나의 요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노력해서 이루어보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희망은 아이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방학 동안의 휴식이 늘어짐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될까 우려하던 것과 달리 뛰기 위해 움츠렸던 시간이 된 것 같아 한편 다행이다. 여전히 보통 아이에 비하자면 미루고 게으른 모습이지만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등교 4일째. 어제는 조금 일찍 잠든 덕에 조금 더 수월하게 일어나서 지각도 하지 않고 등교를 했다. 신랑과 친정부모님과 여동생에게 톡을 보냈다. 그들은 작년부터 매일 아이의 근황을 공유하고 있는 중이다.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걱정하고 응원하는 나날이다. 교복을 입고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는 아이를 그저 부러운 시선으로 보곤 하셨다던 우리 엄마도 좀처럼 보이지 않던 웃음을 보이셨다. 하기야 얼음 같던 엄마의 웃음을 깨운 것도 우리 아들이었으니까. 내가 아이를 낳았던 해. 그 아이 덕에 엄마의 소리 낸 웃음을 처음 보았던 것 같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이가 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작은 풀꽃. 스러질 것 같아도 어김없이 소담한 꽃을 피우던 아이. 봄이 되었으니 소도록하게 피어나기를 바라본다.



<한 달 후>


정상 등교를 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제발 학교만 잘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었기에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자꾸 그다음의 것을 바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마음이라는 것이 절로 생겨나는 것이라 그런 마음이 드는 것까지 어쩔 수는 없어 결국 곁에 두고 등지는 방법을 택했다.


아이에게 묻지는 못했다. 아주 오래도록 묻지 못할 것 같다. 나중에 자기도 답을 찾은 어느 날 꼭 한 번은 묻고 싶다. 왜 그랬었는지. 무슨 마음이었는지. 하지만 당분간은 오래도록 참아볼 생각이다.


어른들의 마음, 나의 돌봄, 신랑의 이해. 앞다투어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고 싶지만 저 멀리서 너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결국은 이렇게 될 일이었다며, 결국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다며 시간이라는 작자가 세상을 해탈한 듯한 표정으로 말할 것만 같다. 모르겠다. 결국 시간이 지나 스스로 일어날 힘이 생긴 건지. 결국은 그저 믿고 기다리는 것만인 답이었는지.


그럼에도 나는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그저 기다릴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아이의 곁에 있다는 것을 다소 과격한 방법으로 표현할 것만 같다.


허무한 것은 이렇게 먼 길을 돌아 결국 이제야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홀로 저만치 뛰어가는데 2인 3각을 하듯 아이를 끼고 끙끙대며 걸어야 하니 막막하기만 하다. 학교를 가는 것 이외에는 여전히 허점 투성이인 이 아이를 어쩌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속도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같이 걸어보려 한다. 아이는 언제나 꾸준히 걷고 있었는데 늘 이를 의심하는 쪽은 나였다.



# 그림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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