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갔다. 밥은 식당에 가서 사 먹자 했더니 반찬 두어 개 해서 집에서 간단히 먹자던 엄마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한 상 차려놓으셨다. 그냥 메인 음식 하나면 되는데 벌써 메인이 몇 개다. 엄마가 만들어놓은 음식을 주섬주섬 나르면서 나는 볼멘소리가 먼저 나온다. 아니 오히려 화를 내며 말하게 된다. 뭘 이렇게 많이 하셨냐고. 그냥 메인 음식 하나면 되는데. 한 번 하면 될 말을 자꾸 또 하게 된다. 별로 많지 않다던 엄마의 대답과 달리 음식은 자꾸 줄지어 나온다.
어릴 때 큰집에 가서 차례를 지낼 때면 엄마는 큰어머니가 아끼며 꼭꼭 숨겨둔 찹쌀전이나 바나나를 몰래 손에 쥐어주곤 하셨다. 그럴 때면 큰어머니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맛있는 것 앞이라 그런 염치는 냉큼 자취를 감추곤 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몰래 빨리 먹어야 하는 마음까지 같이 얹어준 엄마는 그걸 눈치챘는지 지금 계속해서 그 미안함을 갚고 있는 중이다.내가 지금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배불리 먹이는 것밖에 없다는 듯 엄마는 매번 과하게 차려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그저 맛있다고 먹으면 될 것인데 나는 또 음식을 조금 해본 티를 낸답시고 그 정성만큼 귀찮음을 거론하며 엄마의 편을 든다. 희한하게 엄마의 편을 든다고 뱉은 말인데 엄마에겐 하나도 달갑지 않은 말이 된다. 어릴 때처럼 입 안에 쏙 넣어주면 그저 좋아하며 받아먹으면 되는데 그 뒤의 수고스러움과 고됨을 어설프게 이해한 탓에 엄마는 늘 혼자서 다 차려놓고도 미안한 표정을 짓게 된다. 나는 엄마의 불필요한 수고가 싫고 엄마는 엄마의 방식이 거절당하는 게 불편하다.
국을 한 술 뜨며 어설프게 철든 마음으로 어설프게 익은 감정을 내뱉었다는 후회가 된다. 다음번엔 그저 너무 맛있었다며 감탄하며 먹어야지 다짐을 하지만 이내 꼭 기약할 수 없음을 생각하곤 다짐을 꿀꺽 삼키고 만다.
엄마의 밥상은 늘 과하게 배가 부르다. 소화도 시킬 겸 찬찬히 동네를 걸어본다. 친정 동네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 낡은 마을이 되었다. 관공서만 우뚝 솟아있다. 사적인 일은 줄고 공적인 일만 남은 곳 같다. 사적인 일들은 낮아진 지붕 아래에서 너무 사소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곧 사라질 것만 같다.
나는 길을 가다가 한 장면에 멈추어 섰다. 유흥주점 앞에 빛바랜 자판기가 기운 없이 서있다. 동전을 넣었다간 그대로 먹힐 것 같은, 시원하기보다는 데워진 음료가 나올 것만 같은, 진짜 목마른 이가 아니라면 굳이 접근조차 하지 않을 것 같은 외관을 가진 자판기다. 색이 바래고 반쯤 뜯긴 스티커 자국엔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있다. 왼편으로는 짙은 밤색의 벨벳 소파가, 오른편 앞쪽으로는 나무의자가 구도를 맞춰 자리 잡고 있다. 자판기를 약간 비켜나 놓인 주황색 고무 양동이엔 집게가 역동적으로 꽂혀있다.
그것은 나의 취향이다. 그냥 오래되고 낡은 것에 자꾸 시선이 가는 것. 익숙한 것을 빨리 털어내지 못하는 것. 누구에게든 천천히 내어 보이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 또는 그런 경향.
나는 그런 장면을 보면서 오래되기까지의 역사를 생각한다. 그렇게 낡은 빛이 되기까지 쌓인 햇살과 손길을 생각하며 괜스레 아득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된 것은 늘 짠하고 씁쓸한 마음이었다. 그것을 누군가는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거기 서 있었을 거란 착각을 하며 마침 내가 그 사람임에 취해 나만의 낡은 취향에 도취되곤 했다.
하지만 오래 서서 지켜보다가 이내 다른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오래되었을 뿐이다. 어떤 유구한 역사나 사연 없이 그냥 보이는 그대로 낡았을 뿐이다. 세월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그 자리에 계속 있었을 뿐이다. 괜한 감상을 더하고 사연을 더한 것은 오히려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습이 낡았다고 하여, 오래되었다고 하여 그것이 짠한 마음을 가져야 할 대상은 아닌데 나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오래된 것은 마땅히 위로받아야 할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역시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자주 멈추어 설수록 보는 눈이 익게 된다. 어설픈 감정을 싣지 않고 온전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문득 엄마의 밥상이 생각났다. 나는 엄마의 밥상에 괜한 심상을 끼얹었다. 그것은 미안함이나 보상 심리를 담지 않은 그저 엄마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식을 보면 그저 퍼주고 싶은 마음.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는데 정성을 다하고 싶은 그대로의 마음. 어쩌면 엄마의 밥상 앞에서 맛있게 먹는 일은 다짐 따위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괜한 것에 사연의 역사를 쓰는 나의 고루한 취향은 때로 굽어 생각하느라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정성은 그냥 그대로 읽으면 된다. 배경이나 함의나 사연을 생각할 것 없이 투명하게 읽으면 된다. 엄마가 다정한 말 대신 늘 밥은 먹었는지를 물었던 것 같이, 오늘 하루 힘들었겠다는 말 대신 늘 고슬고슬 김 나는 밥 한 공기를 내밀었듯이. 엄마에게 밥은 많은 말을 대신하며 건네는 마음이었을 뿐이다.
나는 다시금 먹는 것 앞에 염치없는 아이가 되어 엄마가 차린 밥을 기꺼이 먹을까 한다. 앞으로도 엄마의 밥상 앞에서는 쉬이 철들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