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건교사다.
초등학교 보건교사다.
교무실, 행정실, 각학년의 선생님들은 여러 명이 함께 있다.
하지만 나는 혼자다.
혼자라서 좋을 때도 많다.
하지만, 힘든 순간들이 있다.
그걸 최근 극명하게 느끼는 순간이 택배를 정리할 때다
전교생이 사용해야 하는 의약품과 비품, 방역물품을 시키면
수십 개를 넘어 수백 개의 택배박스가 온다.
나는 중앙현관에서 그 택배들을 보건실에 가져오고
택배상자를 뜯어 물건을 꺼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쌓여버린 상자들을 분리수거함에 가져다 놓는다.
다른 부서에서는 같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과정을 혼자 한다.
그러다 최근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
몸살이 나기도 하고
원래 목이 안 좋았는데, 도수치료를 받으러 다닐까 생각할 정도로 많이 좋지 않다.
그럼 다른 교사,
특히 남자 교사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지난번 방역물품을 혼자서 정리하다가 몸살이 났다.
반별 배부가 필요해
몸살 난 것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자 한 학년의 부장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달라고 했다.
그렇게 청소기 조립에 손을 한번 빌렸다.
두 명의 남교사가 내려와 도와주셨다.
그리고 무거운 박스가 있어서
마침 지나가는 교사에게 실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실어주고 30보 정도 되는 곳에 내려놓는 일은
결국 지나가는 다른 선생님을 붙잡고 같이 들어 내렸다.
마지막으로 내 몸만 한 휠체어 상자에서 휠체어를 꺼내고
부피가 크기 때문에 옆교실에 가져다 놓아야 했다.
이번에는 도움을 받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침 감염병과 관련해서 독감학생이 나왔는데 방역조치를 어떻게 해야 하냐는
쪽지가 온 상태였다.
나는 해당 쪽지에 답변을 하면서 도와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행히 그는 3,4교시 2시간이나 연강이라면서
내려오겠다고 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진행할 일은 총 3가지
휠체어와 들것 옮기기
모니터 받침대 설치하기 (원목으로 되어있고 초등학교 3학년 키만 한 긴 나무라 혼자 하기 힘들었다.)
가습기 빼내기 (스티로폼 완충제가 꽉 껴서 빠지지 않았다. 둘이 해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쉬는 시간이 끝나고
오기로 한 시간에 맞춰 왔다.
나는 미리 책상을 치워둔 상태였고,
가벼운 가습기부터 빼내고 스티로폼이 튕겨져 나가서 박스에 그냥 두라고 하고 나머지 설치와 정리는 내가 하겠다고 했다.
도움을 받는 입장인데 상대를 번거롭게 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그다음 끌치를 미리 가져다 두었다.
바로 옆교실이라 들어서 혹은 끌어서 박스를 옮겨도 되지만
힘듦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생각한 조치이다.
그렇게 휠체어와 들것을 옆 교실에 옮기고 나서
사용을 대비해 휠체어를 꺼내야 했다.
나는 "휠체어를 박스에서 꺼내는 것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이더니
"아.. 선생님 사실 제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어서요. 나이스, 생기부 마감 등등이요."라고 말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무안함과 상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와
"아, 그럼 빨리 가세요 선생님!"
그가 온 지 3분 남짓이 흘렀을 때였다.
그러자 그는 "아 이것까지만 빼드리고 갈게요."라고 하며
휠체어를 상자에서 꺼냈다.
그러고 나서하는 말
"어? 조립 안 해도 돼요?"
조립이 필요한 줄 알았나 보다.
(완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동료 남교사들끼리는 친하게 지내는 게 있어서 비교적 오래 걸렸던 청소기조립을 도와줬던 일을 전해 들은 것 같았다.)
나는 조립이 필요 없다고 말하며 서둘러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모니터 받침대를 설치하는 일이 남았다.
그렇게 3분 만에 가야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방법을 찾았겠지..
물론 누구도 나를 도와줘야 하는 의무도 없고
도움을 받았던 부분들에 한없이 감사하다.
그런데 어딘가 씁쓸하고 매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남학생들이 까불기는 하지만 많이 도와줬는데, 도와주고 고마운 마음에 간식을 쥐어주면
그거에 한없이 행복해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반면 이곳에서 도움을 받기 위에서는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사정사정한 뒤에도
빨리 발 빼고 쌩하고 가버리기 바쁜 사람들이 가득하다.
나이가 먹을수록 그런 것일까.
사실 나와 같은 특수, 사서 등 혼자 계신 선생님들이 계시다.
그 선생님들께서 부모님 뻘이셔서
가끔 기술적인 측면에서 막히시거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나에게 연락을 주신다.
그럼 나는 곧바로 달려간다.
이 역시 나도 그들을 도와줄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맞고 도움을 주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학교에서 꺼내는 것도 조심스럽긴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길게는 5년간 있어야 하는데
반년 조치 지나지 않은 이곳에서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 한동안 없었던 편두통이 생기기도 했다.
또래 교사들이 가득하기에
오히려 서로 공감대가 많고 즐거운 학교생활이 될 거라고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일까.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빨리 방학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