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으로 무역업도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그중에서도 한 번도 얼굴 본 적 없는 담당자와 일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와 같이 일하는 담당자가 바뀌지 않고 한 명이 오랫동안 나의 카운터 파트너가 될 수도 있지만, 매년 바뀌는 곳도 있다. 홍콩바이어의 카운터 파트너가 D이사님에서, B담당자로 바뀌었다가 C담당자가 맡게 되었다. 매년 바뀌다 보니 담당자의 선호하는 연락방법이나 연락시간, 일하는 스타일을 싹 바꿔야 했다.
코로나다가 터지자, D이사님은 본국인 캐나다로 돌아갔다. 외모는 전형적인 홍콩 중년남성인데, 한국에 출장을 왔을 때, 캐나다 여권을 손에 쥐고 있는 게 아니던가? 국적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본인은 브리티시 홍콩에서 태어나서 학창 시절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다시 말해 1.5세대 홍콩계 캐나다인이었다. D이사님의 특이점은 만다린(보통화)을 쓰지 못한 다는 점이었다. 요즘은 홍콩사람들도 흔히 보통화(북경어)를 배우고 말할 줄 안다. 홍콩이 영국령이던 당시에는 보통화를 배우지 않았었다. D이사님도 당연히 보통화는 배우지 않았다. D이사님을 처음 만났을 당시 너무 당연하게 你好, 我叫吉米認識你很高興.이라고 하면서 당연스럽게 보통화를 썼다. 물론 아주기본적인 단어라서 알아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D이사님은 본인은 보통화를 못 알아듣는다고 영어로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연히 중국계라면 보통화를 할 줄 알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을 완벽하게 박살 내준 일화이다.
사실 홍콩 첫 출장을 갔을 때, D이사님을 처음 만난 게 아니었다. 홍콩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 D이사님이 재직 중이던 홍콩바이어에 미팅을 하러 갔었다. 당시 인턴을 하고 있던 회사와 D이사님과 사업적으로 발전은 없었다. 물론 많은 Supplier들이 D이사님과 미팅을 했었으니,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던 한 방문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인턴생활에 몇 안 되는 미팅이었었기에, D이사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D이사님을 내 첫 직장에서 카운터 파트너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첫 출장을 갔을 때, 그를 처음 보았다. 그리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시 저 기억하시나요?”
“죄송한데,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낯이 많이 익네요. 어디서 만났을까요?”
“저는 이전에 홍콩에서 일하면서 당신과 미팅을 한번 했었는데…”
홍콩에서 일했었고, 살았었다고 하니, D이사님이 더 친근감 있게 대해주었다. 그 이유에였을까, 나한테 더 많은 거래의 기회를 주었다. 당연히 더 궂은일도 많이 부탁하였다. 그 덕분에 상호신뢰가 많이 쌓였다. D이사님은 캐나다에 가서도 홍콩 거래처의 모든 일을 관장하고 지시를 하고 있다. 물론 가끔 퇴사한 나에게도 연락을 주신다.
“지미 잘 지내? 할 말이 있는데…”라고 하면서 궂은일을 부탁을 할 때 연락이 온다.
그의 궂은 부탁은 나에게 새로운 사업이 되기에 기쁜 마음으로 연락을 받는다.